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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근주 Oct 02. 2024

상실된 사람들

말(4)

 장례는 조촐하게 치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고개 숙여 묵례를 한 뒤, 마을 한편에 마련된 자그마한 화장터에서 시신을 태우고 남은 뼛조각은 주머니에 담아 다른 뼈들이 묻혀 있는 곳에 한데 묻었다. 1시간 도 채 걸리지 않은 장례였다.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미야는 내 옆에 서서 두 손을 감싸 쥐고 계속해서 기도를 올렸다. 잘 알던 사람이었을까, 묻고 싶었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은 분위기에 차마 물을 수 없었다.

 도로시와 미야, 그리고 나는 장례가 끝나고 미야의 집에 모였다. 내일 오전에 약재를 구해 다듬고, 오후에는 오늘 돌아보지 못한 곳을 들러보는, 오늘 그랬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정을 공유했다. 미야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도 따라가고 싶다는 의사를 내보였다.


 "넌 그냥 집에 있는 게 어때?"


 도로시의 말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부드럽고 친절하지만 상대의 기분은 배려하지 않은 목소리. 나는 이때가 되어서야 미야가 도로시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미야는 자신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마을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싫은데 도로시는 미야가 무언가 하려고 하면 모조리 반대했던 것이었다. 도로시는 미야가 동행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이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데, 너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시간을 허투루 쓸 순 없잖아."


 미야는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도로시는 미야가 무엇을 적는지 훤히 꿰뚫어 본 것처럼 말을 이었다.


 "옆에서 가만히 있을 거라는 말을 적고 있다면 종이를 아끼는 게 어때? 옆에 가만히 있을 거면, 집에 가만히 있어도 되잖아."


 미야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종이를 구기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하고 문 닫는 소리와 함께 정적이 흘렀다. 나는 방문 너머로 사라진 미야와 맞은편에 앉은 도로시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얌전히 있겠다는데 데려가도 되지 않을까?"

 "이건 외부인이 끼어들 일이 아니야."


 도로시가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내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버렸다. 둘 사이를 중재해 주려다가 겨우 좁혀놓은 사이가 다시 어색해져 버린 듯 듯했다. 나는 한참을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다가 도로시의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미야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도로시는 주방에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일주일째 마을 진료가 마무리되었다. 두세 번 방문한 집도 있었고, 길을 오가다 마주하는 것도 늘어나면서 안면을 트고 익숙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는 틈틈이 도로시에게 약초와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저 식물이면 심고 보는 사막 생존자들의 성향 덕분에 마을엔 약초로 쓸만한 것들이 다양하게 많았다. 도로시는 내가 알려준 것들을 자신의 노트에 빠짐없이 적었다. 모래바람을 맞아 누렇게 변한 손바닥 크기의 노트는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 모서리가 너덜너덜해져서 건들기만 해도 바스러질 것 같았다.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읽을 수 없을 만큼 깨알같이 쓴 글자였지만 단정한 글씨 덕분에 알아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즈음 나는 다음 마을로 떠날 채비를 했다.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고 거리가 익숙해지면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점차 커졌기 때문이었다. 어수선한 마음이 이 마을에 자리 잡지 않도록 해야만 했다. 마을이 하나둘씩 사막화되면서 과거의 물건들을 구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다행히도 이 마을에서 나침반을 구할 수 있었다. 나흘은 버틸 수 있는 물과 마을 사람들을 치료해 주며 받은 말린 음식들로 가방은 어느새 두둑해졌다. 치료해 주고 남은 약재 가루들도 두 봉지에 각각 주먹만큼 들어 있다. 다음 마을에서 이걸 이용해 환자를 치료해 주고 물과 음식을 얻을 생각이다.

 나는 가 말했던 장소에 가고 싶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터널. 이것은 내 의지와 의 의지의 결합이었다. 도로시가 아쉬워했지만 억지로 붙잡진 않았다. 미야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마을에 남는 것이 좋겠다고 도로시가 말했다. 나는 그 편이 좋겠다고 했다. 미야 덕분에 이곳에 온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녀를 데리고 다른 마을을 전전하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이었다.

 열흘 째 되는 날 마을을 떠나기로 했다. 전날 저녁, 미야의 집에 도로시와 셋이서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 미야는 여전히 삐친 얼굴로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아' 소리나 '에'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려 애쓰고 몸짓으로 표현하기 힘든 것은 종이에 써가며 대화를 시도하던 미야였는데 그녀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식사만 집중했다.


 "네 덕분에 여기에 올 수 있었고, 살 수 있었어. 그 점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아직 못 했었네. 진심으로 고마워."


 나는 미야를 바라보며 고마움을 전했다. 미야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만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식사에 집중한다. 도로시에게 혹 궁금한 것은 더 없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마지막 식사를 마쳤다. 도로시도 나도 마지막 식사에서 만큼은 불편함이 녹은 분위기를 바랐지만 미야의 묵직한 침묵은 끝내 깨지지 않았다.




 이 마을에서 마지막 밤이었다. 나는 가방의 짐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익숙해진 곳을 벗어난다는 것은 늘 마음 한구석에 아쉬운 미련을 남겼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결국 이불을 걷어차고 거실로 나왔다. 창밖으로 무수히 많은 별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먼 옛날에는 하늘보다 마을이 이만큼 밝았다고 가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초를 아무리 많이 켜도, 발전기로 전구를 아무리 많이 켜도 지금 보는 밤하늘만큼 밝으리라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번의 별똥별이 지나갔을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 늦은 시간에 누가 몰래 남의 집에 들어온단 말인가. 하지만 갑작스러운 소리에 나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현관 쪽으로 고개만 돌릴 수밖에 없었다. 미야가 까치발을 한 채 거실에 앉아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여기서 마주할 것이라곤 본인도 생각지 못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이미 들켜버렸으니 하는 수 없다는 듯 뒤꿈치를 내려놓고 내게 당당히 걸어왔다. 그리고는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내밀었다.


- 나도 당신과 떠나고 싶어요. 이 마을에 남아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당신에게도 짐이 되진 않을 거예요. 나는 사막을 잘 알아요. 분명 내가 도움이 될 거예요.


 별빛에 비춰 본 그녀의 글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내게 보여주기 위해 종이 가장자리를 꼭 쥔 두 손에서도 그 간절함이 보였다.


 "도로시와 마을 사람들이 미야가 떠나는 걸 반대할 것 같은데."


 나는 다른 사람들을 핑계로 완곡히 거절했다. 하지만 미야는 가지고 온 종이에 다시 필사적으로 적어 내게 내밀었다.


- 그들에겐 내가 필요 없어요. 나도 그들이 필요하지 않아요.


 미야는 당장이라도 떠날 기세였다. 실제로 어둠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가방이 그녀의 등에 메여 있었다. 그녀는 모두가 잠든 지금, 떠날 작정으로 날 찾아온 것이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창밖을 보며 답을 찾으려 애썼다. 별똥별 하나가 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마치 별똥별이 불을 붙인 듯 저 먼 곳 지평선 부근의 하늘이 밝아졌다. 그런데 하늘이 다시 어두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밝은 부분이 넓어졌다.

 마을 곳곳에서 각기 다른 호각이 울렸다. 그 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오니 밭과 집 몇 곳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이미 밖에 나와있던 도로시가 우리를 보고 소리쳤다.


 "필요한 짐만 챙겨서 나와!"


 나는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와 함께 머물렀던 마을에서도 벌어졌던 일이었다. 황색 두건을 두른 무장 단체가 칼과 활을 들고 마을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가방을 메고 나왔다. 도로시가 이쪽으로 오라 소리치며 손짓하는 게 보였다. 나와 미야는 그녀가 손짓하는 쪽으로 뛰었다.

 등 뒤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마을의 남자들이 자경단을 꾸리고 있었지만, 상대는 살육이 익숙한 집단이었다. 사람을 다치게 해 본 적도 몇 번 없는 마을 사람들이 상대가 될 리가 만무했다. 계속되는 비명에 미야가 뒤를 돌아봤다가 끔찍한 참상에 그만 주저앉고 만다.

 도로시가 놀라 뛰어와 미야를 일으켰다. 그 사이 저 멀리 칼을 든 남자가 이쪽을 발견하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빨리 와!"


 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도로시가 미야에게 노트 하나와 주먹만 한 꾸러미를 하나 내밀었다.


 "이건 내가 그동안 기록한 것들이고, 이건 조금씩 모아둔 금화야. 필요할 때가 올 거니까 단단히 챙겨."

 "아에아!"


 미야가 도로시를 보며 소리쳤다.


 "언니가 너한테 했던 행동들은 다 네가 다치지 않길 마음에 그랬던 거야. 네가 다친 것도 내 탓이 크니까. 네가 또 다칠까 봐 두려웠었나 봐. 미안해. 자, 어서 가. 저들이 쫓아오면 셋 다 살기 힘들지 몰라."


 도로시가 낡은 식칼 하나를 품에서 꺼냈다. 미야가 같이 가자고 울부짖으면서 도로시를 붙잡았다.


 "빨리 미야를 데려가!"


 도로시의 외침에 정신이 든 나는 미야를 억지로 떼어내 팔을 붙잡고 마을 뒷문 방향으로 뛰었다. 미야가 뛰면서 몇 번을 뒤돌아 봤다. 도로시는 싸움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내가 봐도 엉성한 자세로 칼을 들고 있었다. 황색 두건을 두른 남자가 이쪽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그녀가 양손 힘껏 쥔 식칼을 적에게 내밀었으나 남자는 잽싸게 옆으로 피하고는 들고 있던 검으로 도로시의 복부를 단번에 관통했다. 그녀가 쥐고 있던 식칼을 떨어뜨렸다. 남자가 검을 뽑고 이쪽으로 오려했으나 도로시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를 꽉 붙잡아 안았다. 검 끝이 한 뼘 더 등 뒤로 밀려 나왔다.


 "아아아아!"


 미야가 걸음을 멈추고 울부짖었다. 도로시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서 가.'


 그녀의 입모양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있는 힘껏 미야를 잡아당겨 달렸다. 오로지 출구를 향해 달리는 나도, 끝없이 뒤돌아보는 미야도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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