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사회

6

by 안온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일찍 기차역에 도착했다. 출근 시간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오전의 기차역은 인파로 붐볐다. 모두가 하나같이 바쁜 듯 걸음을 재촉하고,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시선은 그것에 고정하고 있다.

구구가 시간보다 일찍 왔음에도 우는 이미 매표소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까지 오는 커다란 캐리어를 옆에 세워둔 채로 다가오는 구구를 바라봤다. 폭이 넓은 갈색 울 스커트에 얇은 베이지색 반폴라 니트, 그 위에 걸친 흰색 카디건은 멀리 떠나려는 사람이라기보다 업무차 출장을 떠나려는 커리어우먼처럼 보였다.

둘 다 목적지를 정하고 오지 않아서, 빨리 출발하는 것 중에 가장 먼 곳까지 가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20분 뒤 출발하는 기차는 종점까지 5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남쪽땅 끝까지 내려갔다.


"우리가 정말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기차가 출발하고 10분쯤 지났을 때, 우가 물었다. 우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했고 조금 떨리기까지 했다. 우의 질문에 구구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가능성의 영역뿐이었다.


"그러길 바라야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구구 또한 내심 회의적이었다. 고차원적 존재의 감시는 구구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무무의 말처럼 우리는 어항 속의 물고기인지도 모른다. 반대쪽 유리벽에 바짝 붙어도, 바위틈에 숨어도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그래도,라고 구구는 생각한다. 만약 어항이 우리가 생각하는 사이즈가 아니라 아쿠아리움 속 거대한 수족관 사이즈라면 어떨까. 한눈에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수족관이라면 그들에게 포획되어 있지만 그들의 감시를 벗어날 수 있는 숨을 장소 정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단지 가설일 뿐이다. 구구는 출발한 지점에서 5시간가량 떨어진 남쪽 지역이 수족관 속의 이웃한 바위 수준으로 가까운 거리인지 수족관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에 해당하는 거리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기차는 사람을 싣고 내리는 것과 무관하게 모든 역에 정직하게 정차하고 출발하기를 반복했다. 우는 잠들지 않기 위해 뺨을 두드리고 손등을 꼬집기를 반복하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기차 밖 풍경은 수확이 끝나 휑한 논과 끝없이 물고 늘어진 산, 저 멀리 구도심의 한 부분이 보이는 것이 무작위로 반복되었다. 평화롭다,는 마음이 구구의 몸속에 자리 잡았다. 그날로부터 한 순간도 편안했던 적이 없었다. 우도 아마 같은 마음에 긴장이 풀려 잠이 들었음이 분명했다.

기차가 터널을 통과한다. 기차 내부의 조명도 모두 꺼져있고, 터널에도 조명이 없어서 기차는 순식간에 어둠에 잠긴다. 밝음에 적응해 있던 눈은 어둠 속에서 완전히 헤매었다. 보일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어둠. 구구가 자신의 눈앞으로 손을 휘저어본다. 어둠 속에서 조금 더 짙은 어두운 덩어리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손이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인지, 정말로 손이 있는 곳이 조금 더 어두운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구구는 눈을 감았다. 일렁이던 어둠이 잠잠한 어둠으로 바뀌었다.

기차는 일정한 속도로 터널을 통과했다. 타닥, 타닥하고 기차가 내는 일정한 소리와 그 소리들 사이를 메워주는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굴러가는 바퀴소리가 구구의 정신을 아늑히 먼 곳으로 천천히 끌어당겼다.




터널을 나오면서 눈꺼풀이 밝아졌을 때 구구는 몽롱했던 정신을 되찾았다. 꽤 긴 터널이었다고 구구는 생각했다. 터널 밖으로 나오면 그때 눈을 떠야지 했던 것이 겉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터널 밖으로 나오자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고 구구는 느꼈다. 더 정확하게는 공간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자신이 계속 앉아 있던 열차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른 좌석의 웅성거림, 바스락거리는 인기척도 마치 그곳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다. 눈을 떴을 때 열차 객실엔 아무도 없었다. 옆에 잠들어 있던 우도, 복도를 오가며 좌석을 확인하는 승무원도 사라졌다. 구구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객실 끝에 달린 작은 모니터에서 이 열차의 종점과 다음에 정차할 역을 안내하는 약식 이미지가 띄워져 있었다. 열차는 구구가 처음 가고자 했던 종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구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객실을 둘러봤다. 어림 잡아서 절반은 타고 있었던 객실에 단 한 명도 없었다. 터널을 통과하기 전 거쳤던 역에서 모두 하차한 게 아닐까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터널 통과 직전까지 옆에 앉아 있었던 우가 사라진 게 설명이 되지 않았다.

열차가 서서히 속력을 줄였다. 다음 역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열차는 정해진 자리에 섰고, 정해진 시간만큼 문을 열어두었다. 역 승강장에도 사람은 없었다. 마침 이 기차를 타려는 사람이 없던 역이 아니라, 처음부터 운영하지 않은 역처럼 보였다. 사람이 드나들며 생긴 자연적인 닳음이 이 역에 부재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문이 닫히고 열차가 서서히 출발한다. 구구는 열차의 다른 객실을 둘러보기로 했다. 열차가 나아가는 방향의 객실 문을 열었다. 2호실이라고 적힌 객실에도 사람은 없었다. 다음 객실인 1호실도 마찬가지였다. 1호실과 연결된 운전석은 문이 단단히 닫혀 있었다. 작게 뚫린 유리창 너머로 운전석 안을 보려 했으나 문 너머에 있는 다른 문에 시야가 막혀 볼 수 없었다.

구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정해져 있었다. 다음 역에 내리거나, 자리로 돌아가 원래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기다리거나. 구구는 후자를 택했다. 중간에 내린다고 해서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였다. 우선은 정해진 목적지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자리로 돌아가 창밖을 보았다. 그 새 다음 역에 도착했는지 열차의 속도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직전에 정차했던 역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구구는 눈을 감고 얼마 남지 않은 종점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기차는 몇 번을 더 서고 가길 반복했다.




그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우가 내려야 한다고 그의 몸을 흔들었을 때였다.


"많이 피곤했나 봐요.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에도 일어나지 않길래 깨웠어요."


공간의 분위기가 이전의 그것으로 다시 되돌아와 있었다. 종점에 도착한 기차의 객실엔 구구와 우 단 둘뿐이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우는 구구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좌석 위 짐칸에 올려 둔 캐리어를 내리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꿈을 꾸셨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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