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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의 종점은 작은 마을이었다. 역 밖의 건물들 중 멀리 있는 산 능선보다 높은 것은 없었다. 단층 건물들이 잘못 뿌린 씨앗처럼 몇 군데 모여있고 그 사이 비어있는 곳 대부분은 차로와 농지였다.
"여기에 저희가 묵을 곳이 있을까요?"
우가 구구 옆에 나란히 서서 마을을 보며 물었다. 구구도 이 마을을 와본 적이 없었고, 이 마을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본 적도 없어서 마땅히 돌려줄 대답이 없어 침묵했다.
둘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작은 마을이지만 은행, 우체국, 식당, 마을 규모에 비해서 꽤 커 보이는 마트까지 있을 건 다 있었다. 아직 한 끼도 먹지 못한 둘은 우선 식당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외지인의 입장에 식당 주인의 인사에 다소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식당 주인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물수건을 가져다주며 물었다. 조금 멀리서 왔어요,라고 대답한 뒤 구구가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우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구구와 같은 메뉴를 선택했다. 주문을 받고 나서도 식당 주인은 주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외지인이 너무 오랜만이라서요. 사실 여기가 관광지도 아니고, 도시도 아니고, 그저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작은 마을이잖아요. 어떻게 찾아오셨대요?"
"딱히 장소를 정하고 온 게 아닙니다. 가장 빨리 탈 수 있는 기차를 타고 종점까지 와보니 여기였어요. 여기서 2주 정도 머무르려 하는데, 숙박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아까도 말했지만 여긴 외지인이 거의 안 와요. 그러니 숙박 시설이 될 리가 있나. 있던 것도 오래전에 다 문 닫았어요."
묵을 곳이 없다는 대답에 구구는 고민했다. 적당한 곳을 정하고 다시 움직일 것인지, 아니면 출발지로 되돌아갈 것인지. 식당 주인은 고민하는 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여기 마트 끼고 안쪽 골목으로 쭉 들어가면 페인트가 벗겨진 황색 대문 집이 나올 거예요. 이 동네 박 씨가 사는 집인데, 거의 집을 거의 비워둬요. 특히 날이 추워지면 어디로 나가는지 휙 떠났다가 따듯해지면 돌아온다니까. 내가 이 동네에서 식당만 20년 넘게 하고 있어서 이 마을 들고 나는 사람은 죄다 알고 있으니까요. 박 씨 집은 이 동네 사람들이 날 추우면 노인들이 종종 마을회관처럼 이용하고 있어요. 조금 있다가 마을 이장님이 점심 먹으러 오시니까 내가 손님들 거기서 묵는 게 어떠냐고 물어볼게요. 그러니 거기서 쉬었다 가는 건 어때요?"
고민할 것도 없이 좋은 제안이었다.
"저희가 그럼 숙박비라 생각하고 따로 사례를 하겠습니다."
"그건 나중에 이장 님하고 이야기해 봐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이장 님한테 한 번 가 보라고 할게요."
식사를 마치고, 둘은 곧바로 박 씨가 산다던 집으로 향했다. 식당 주인이 말한 황색 대문 집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마트 오른쪽으로 난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떡하니 황색 대문이 달린 집이 나타났다. 페인트가 벗겨진 부분들이 빗물에 검붉게 녹이 슬어 표범무늬처럼 보이기도 했다.
손잡이를 잡고 대문을 밀었다. 별다른 저항 없이 쉽게 밀리는 것과 달리 경첩은 쇳소리를 고통스럽게 내뱉었다. 시멘트 바닥의 마당 중앙에 감나무 하나, 대문과 가장 먼 코너 담벼락에 다른 감나무 하나가 심겨 있었다. 중앙의 감나무 옆에는 무릎 높이의 수도관이 하나 툭 튀어나와 있었고 수도관과 연결된 고무호스가 사용감이 있어 보이는 옥색 세숫대야 속으로 뻗어 있었다. 집 옆에는 드럼통을 뜯어 만든 간이 화로가 있었고 그 옆으로 땔감으로 쓸 수 있는 마른 낙엽과 적당한 크기로 손질된 나뭇가지들이 구구의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현관문은 교체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집의 다른 것들과 어울리지 않게 새하얬다. 구구가 문고리를 잡아당겨 보았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사람이 없을 때는 잠가두는 모양이었다.
"문이 잠겼어요."
마당을 둘러보는 우에게 말했다. 그제야 현관문으로 다가와 손잡이를 잡아 본다. 손잡이는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움직였다가 단단한 무언가에 걸린 소리를 내며 멈췄다.
"조금 기다려 보죠. 노인들이 이용하던 곳이라 했으니 아직 저희가 묵는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분이 오실 수도 있고, 식당에서 소식을 전해 들은 이장님이 오실 수도 있으니까요."
구구는 화로로 걸어갔다. 화로 옆에 파벽돌 위에 라이터가 놓여 있었다. 누구든 화로를 쓸 수 있게 두고 간 모양이었다. 재를 조금 긁어내고 잔 나뭇가지와 낙엽을 섞어 넣었다. 그런 뒤 여행용 티슈를 몇 장 뭉쳐 불을 붙인 뒤 화로에 넣었다. 티슈를 집어삼킬 듯 불씨가 난폭해졌다가 낙엽과 나뭇가지에 정착하면서 적당해졌다. 구구는 입김을 불어 불을 키운 뒤 그 위에 조금 더 두꺼운 나뭇가지를 올렸다. 화로 주변이 금세 따듯해졌다.
"여긴 밤에 돌아다니기 힘들겠어요."
담장 주변을 둘러보고 온 우가 구구 옆에 앉으며 말했다.
"가로등 하나 없더라고요. 이 마을 사람들은 해가 지면 밖으로 나오지 않나 봐요."
구구는 담장 너머 밖을 쳐다봤다. 하늘을 향해 몇 개 솟아오른 기둥들은 모두 전신주였다. 빛을 낼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불이 약해져 두 번째로 두꺼운 나뭇가지를 넣었을 때 대문의 경첩이 울었다. 키가 크고 체격이 다부진 30대 남자가 대문을 밀고 들어왔다. 누가 봐도 미남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화로에 나란히 앉아 있는 구구와 우를 보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 이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작은 마을의 이장을 맡기엔 너무 젊고 세련되어서 그가 정말로 이장인지 의심이 들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마당으로 들어와 중앙 감나무 주변에 놓인 돌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돌 아래에 지퍼백이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속엔 열쇠 하나가 아무런 장식도 없이 들어 있었다. 이장은 능숙하게 열쇠를 꺼내어 현관문의 열쇠구멍에 넣었다. 열쇠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탁-하고 둔탁한 금속음이 들렸다. 이장이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매끄럽게 돌아가며 현관문이 열렸다.
"저희 마을은 외지인의 방문이 거의 없다 보니 숙박 시설이랄 게 없습니다. 그래서 종종 사람들이 찾아오면 여기서 머물길 권하고 있습니다. 특히 11월부터는 집주인이 아예 오질 않아요. 몇 달 방치가 되는 거죠. 어르신들이 종종 들려서 사랑방처럼 이용하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사람이 거쳐가는 것과 머무는 것은 다르니까요. 겨울 동안은 원하시는 만큼 머물다 가셔도 됩니다. 동네 어르신들께는 손님이 왔으니 당분간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내부는 민박과 가정집 그 사이였다. 살림이 거의 없어 민박집으로 보였다가도 분명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어떤 흔적들을 발견했을 땐 확실히 가정집이었다.
"오면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동네는 어둠을 밝혀줄 것들이 거의 없어 밤이 많이 어둡습니다. 치안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만 밤에는 가급적 외출을 삼가시는 걸 권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땅히 나갈 일도 없을 것 같고요. 저희도 조용히 있다가 가고 싶거든요."
"좋습니다. 저쪽 오래된 문을 열어보시면 보일러실과 겸하고 있는 창고가 있습니다. 어지간한 건 저쪽에 다 있을 겁니다. 식재료나 소모품은 오시는 길에 봤던 마트에 웬만큼 다 있고요."
이장은 거기까지 말하고 돌아갈 분위기를 풍겼다.
"이장님 치고는 상당히 젊네요."
구구도 궁금했지만 실례가 될까 묻지 못했던 것을 우가 물었다. 우는 별 것 아닌 것을 묻듯 무던한 뉘앙스였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 일을 해결해야 할 때가 많다 보니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힘쓰는 거야 저보다 농사일로 일 근육이 다져진 어르신들이 더 잘하십니다만 시대가 변하면서 아무래도 온라인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도 많이 늘었거든요. 그런 것들을 대신해 드리다가 작년에 이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말이 이장이지 그저 젊은 일꾼이지요."
그는 얘기하면서도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도시에 살았다면 여자깨나 홀리고 다녔을 미소였다. 우도 그런 이장의 미소에 반한 건지 눈을 떼지 못했다.
"종종 불편한 건 없는지 확인하러 들리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마을에 계신 동안 편히 머물다 가십시오."
이장은 불러도 돌아보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몸을 돌려 현관을 나섰다.
집은 방 두 개와 작은 거실 하나, 주방 하나, 세탁실을 겸한 화장실, 그리고 보일러실이 하나였다. 구구는 상대적으로 큰 방에 우는 작은 방에 지내기로 했다. 스마트폰 시계를 확인하니 3시 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저녁 먹거리를 구해와야 했다.
"당분간 두고 먹을 것 좀 사 오겠습니다."
"저도 같이 가요."
우가 짐을 정리하다 말고 허겁지겁 따라나섰다. 아무래도 아직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해서는 불안한 모양이었다.
마트에서 마실 물과 레토르트 식품,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식재료 몇 가지를 구매해서 돌아왔다. 저녁 식사는 즉석 밥에 데운 카레를 부어 먹었다. 해가 진 뒤에는 각자의 방에서, 완전히 닫지 않고 살짝 열어 둔 문틈만큼만 서로를 연결해 두었다.
그리고, 밤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