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사회

8

by 안온

고요한 밤이었다. 밤은 모든 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갇힌 것처럼 침묵했다. 아무리 날이 추워졌다고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없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늦은 밤 외치는 짐승의 소리도, 아직 잠들지 못한 곤충의 울음도, 심지어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조차 없었다. 이곳의 밤은 아무것도 없었다.

구구는 창문 밖을 내다봤다. 낮엔 분명 맑았는데, 밤엔 넓게 펴진 구름이 밤하늘을 가렸다. 가로등 하나 제대로 없는 동네라 온통 새까맸다. 저 어둠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손마저도 보일 것 같지 않은 칠흑 같은 어둠. 간판이 켜진 곳도 없었고, 가까이에 인가도 없었다. 밤에는 가급적 외출을 자제해 달라던 이장의 충고가 이해가 되었다. 이 동네의 밤은 다가가선 안될 위험한 어떤 것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연락 온 것도 없었다. 무무의 소식이 궁금했다. 그는 남아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인지 물어봤어야 했다고, 구구는 생각했다. 남겨진 사람이라곤 지금까지는 구구와 우, 무무 셋 뿐인데 무무 혼자만 이 일의 많은 것들을 책임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무무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무무가 건넨 명함은 건네받은 그날 그와 마주 앉았던 구구의 집 식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무서운 밤이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밀려오는 밤이었다. 달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구구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자신을 주시하는 듯한 푸른색 달은 구구를 밤마다 불안하게 만들었다.

딱히 더 할 게 없었던 그는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이부자리를 펴고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은 뒤 잠자리에 누웠다. 바닥을 통해 올라오는 따듯한 온기에 금세 몸이 풀어졌다. 구구는 눈을 감았다. 적막이 흐를 줄 알았는데 가만히 집중하니 이명처럼 단조로운 소리가 들렸다. 드물게 난방 기기가 돌아가는 묵직한 소리가 뒤섞였다가 사라졌다. 구구는 자신의 정신이 현실과 잠의 경계에 있다는 걸 인지했다. 나는 자고 있다, 그러나 소리도 분명히 듣고 있다. 이것을 명확하게 인지한 상태였다.

그는 그 상태로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했다. 과연 그는 고차원의 어떤 존재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이대로 살아야 한다면 또 무엇이 반찬 가게나 루루처럼 자신에게서 사라질 것인가. 죽는 것만이 이것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인가. 구구도 답을 내릴 순 없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외계인이 침공한 일은 없었다고 믿게 된 세상에서 구구의 주장은 미친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갑자기, 생각의 흐름을 끊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려왔다. 흡사 기차가 정차할 때 발생하는 브레이크 소리와도 같았다. 이 시간에 들어오는 기차가 있었나. 아니, 이 시간에 들어오는 기차가 있다고 한들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소리가 생생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며 구구가 눈을 떴다.




그는 아무도 없는 기차 안에 있었다. 기차는 이제 막 역에 진입해 멈추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가동하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다시 한번 객실 내에 울렸다. 꿈을 이어 꿔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토록 생생하게 이어 꾼 적은 구구도 처음이었다.

기차가 완전히 멈추고, 아무런 안내도 없이 문이 열렸다. 기차에는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없었다. 창문을 통해 역을 보니 현실의 구구가 도착했던 종점역과 같은 곳이었다. 기차는 구구가 내리길 기다리는 것처럼 아무런 미동도 없다. 그저 문을 열어놓고 있을 뿐이었다.

구구가 짐을 챙겨 내렸다. 기차는 기다렸다는 듯 문이 닫히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역을 빠져나오자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렸던 식당, 동네에 비해 조금 큰 마트까지. 구구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식당으로 향했다.


"계십니까?"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사람이 없었다. 모든 것을 내팽개쳐두고 야반도주를 한 장소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사람만 없었다.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고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식당 특유의 음식 냄새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구구는 식당을 나와 마트로 향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 질서 정연하게 놓인 물건들 뿐이었다. 행사나 광고 방송도 없고 일하는 직원도 없었다. 정적만이 흐르는 마트는 꽤나 으스스했다.

현실에서 구매했던 마실 물과 레토르트 식품,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식재료 몇 가지를 카트에 담아 계산대로 향했으나 계산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냥 가져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어찌할 줄 몰라하고 있을 때 마트 입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가져가시면 돼요."


마트 입구에, 루루가 서 있었다.


"빈 물건은 내일 채워놓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가져가셔도 돼요."

"하지만 계산을 하지 않고 가져가는 건 범죄이지 않나요?"

"여기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루루의 말은 단호했다. 더 물어볼 새도 없이 루루가 마트 밖으로 나갔다. 구구는 허겁지겁 짐을 챙기고 루루가 나간 방면으로 따라 나갔다. 루루는 마트를 돌아 칠이 벗겨진 노란색 대문 앞에 섰다.


"여기서 머무르면 돼요."


루루가 대문을 밀며 말했다. 대문은 쉽게 밀렸으나 경첩은 크게 쇳소리를 냈다.


"루루 아닌가요?"


구구가 계속해서 궁금해하던 것을 물었다. 루루가 구구를 응시한다. 그런 것을 왜 묻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표정. 그 시선을 오래 마주할 수 없어서 구구는 눈을 피했다.


"이 동네에서 머물 곳은 여기뿐이에요."


루루는 앞장서서 집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큰 방의 벽지에 그어진 볼펜 자국, 전등 스위치 근처의 손때까지 집의 구조는 구구가 세세한 부분까지 현실의 그곳과 일치했다. 딱 하나 다른 건 이곳의 공기였다. 현실의 안방은 사람들이 머물며 발생한 삶의 흔적 같은 게 있었다. 뒤섞인 사람의 체취, 사용 중인 물건들,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흔적들. 같은 방인데 여기엔 그런 것들이 부재했다. 이 방에 있는 것이라고는 공허함 뿐이었다. 드라마 세트장처럼 인위적으로 공간을 꾸민 뒤 삶의 흔적을 녹여보려 했지만 실패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그런 공간.

루루가 보일러를 작동시켰는지 작동음이 크게 울렸다. 정적 속에서 울리는 그 울림이 왠지 모르게 불길했다.


"곧 따듯해질 거예요."


루루는 자신이 전달할 것은 다 전달했다는 듯 현관으로 돌아가 신발을 신었다.


"어디로 가요?"

"내일 다시 올게요."


구구가 그녀를 붙잡기 위해 황급히 물었으나 그녀는 자신이 할 말만 짧게 더지고 현관을 나가버렸다. 황급히 마당으로 따라 나가봤지만 루루는 사라지고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지는 신기루처럼, 그녀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이것이 실제로 일어날 수 일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씻어내려는 듯 두 눈덩이를 문지르고 마른세수를 했다. 그 순간 갑자기 자신의 몸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웃옷을 걷어 올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차가운 감촉이었다. 어떤 차가운 물건이 아닌, 차가워진 누군가의 손길이 분명했다. 하지만 걷어올린 옷 안으로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가 아이의 배를 문질러주듯 차갑지만 부드러운 손길-이라고 추측되는-에 졸린 게 아닌데도 눈앞이 점점 페이드아웃 되어간다. 구구는 눈을 감았다. 의식이 어떤 통로를 통과해 빠르게 현실로 이동하는 느낌이 드는 것과 거의 동시에 현실의 잠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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