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사회

10

by 안온

두 번째 밤이 찾아왔다. 밤은 어제와 동일하게 고요했다. 어떤 짐승의 울음소리도,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도 없었다.


"여기,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구구로부터 두 뼘쯤 떨어진 곳에 깐 이부자리 위에 우가 양 무릎을 껴안은 채 앉아 있었다. 화장을 지워 낮보다는 생기가 부족해 보였지만 충분히 귀여운 얼굴이었다. 마주하는 사람이라곤 구구밖에 없는데 왜 화장을 하느냐 물었더니 '전쟁이 나지 않아도 군인이 군복을 입고 총을 챙기듯이, 여자도 누굴 만나지 않아도 늘 준비태세를 갖추는 거예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창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낮에는 맑은 날씨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구름 몇 점 없는 파란 하늘이었는데 밤이 되니 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검은 잉크로 밤하늘을 붓칠 한 것처럼 옅은 구름이 별빛을 모두 가렸다. 달은 뜨면 보일 것 같았으나 그러려면 아직 네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밤이 아니라 거대한 박스 안에 갇힌 것 같아요."


우의 말에 구구도 동의했다. 거대한 박스 속으로 들어가 이음새가 딱 맞아떨어지도록 박스 날개를 접어 별도 보이지 않고, 어떠한 생명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어둠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먼저 주무세요."


구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요?"


구구는 밖에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이장님이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요."

"창고에 손전등이 있더군요. 앞에 마당까지만 나갔다 오겠습니다."


우는 말리려다 포기한 듯 뻗던 손을 다시 무릎 안쪽으로 감아 넣었다. 마당이라면 조금만 소리를 질러도 알아차릴 수 있을 테니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구구는 방을 나와 거실을 통과해 현관 앞에 섰다. 현관문에서 열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이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기분 탓이라 여기고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냉동실에서 갓 꺼낸 쇳덩어리처럼 시리도록 차가웠다. 그 차가움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동시에 손에 힘이 들어가 손잡이가 돌아갔다. 경첩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문을 바깥쪽으로 밀어냈다.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곳이 감나무가 있던 곳이었다. 지금은 그 감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거실을 통해 뻗어나간 형광등 빛이 감나무에 충분히 닿아야 했음에도 빛은 현관문 바로 앞 반계단쯤 낮게 있는 넓적한 디딤돌까지만 닿아 있었다.

디딤돌로 왼발을 먼저 내디뎠다. 신발과 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오른쪽 발도 마저 내디뎠다. 구구는 칠흑색의 거대한 바위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시커먼 허공이 아니라 거대하고 단단한, 통과할 수 없는 것 앞에 마주한 기분. 그의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보일러와 냉장고가 작동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만 들려왔다. 눈앞의 어둠은 어떠한 소리도 허락하지 않았다.

구구가 들고 있던 손전등의 버튼을 누르고 현관문 너머를 비췄다. 빛은 한 점에서 시작해 깔때기모양으로 퍼져나가는가 싶더니 곧바로 어둠에 집어삼켜졌다. 정면으로 손전등을 비추면 마당 가운데의 감나무, 그 너머의 담장, 그 옆의 페인트 칠이 벗겨진 노란색 대문이 보여야 했다. 마당까지만 나가보겠다고 마음먹었었지만,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한 걸음도 더 뗄 수가 없었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손을 뻗어 현관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문이 닫히고 어둠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를 짓누르던 기이한 기운도 사라졌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손잡이를 잡았던 손바닥에도 땀이 흥건했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에 우가 방문을 열고 얼굴의 반쪽만 틈 사이로 내밀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구구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시간에 운동이라도 하신 거예요?"


구구는 대답 없이 화장실로 곧장 갔다. 자신을 무시한 구구의 등짝에 대고 우가 구시렁거렸지만 구구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안방으로 들어가자 우가 얼굴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었다. 아무런 대꾸도 해주지 않은 것에 삐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먼저 굳이 말 걸지는 않았다. 구구는 전등불을 끄고 우로부터 두 뼘 떨어진 자신의 이부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으니 현관 앞에서 마주한 어둠과는 다른 평온한 어둠이 그를 맞이했다. 구구는 빨리 잠들고 싶었다. 밤이 물러가고 나서 눈을 뜨고 싶었다.



나흘이 더 흘렀다. 아침엔 가볍게 운동을 하고, 마트에서 사 온 식재료들로 요리를 해 먹었으며 점심은 가끔 식당에서 밥을 사 먹었다. 처음 만났을 땐 불안한 표정이었던 우에게서도 더는 그런 기운은 보이지 않았다. 이장은 이틀 전에 한 번 더 찾아와 책을 네 권 더 건네주었다.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몰라 고전문학으로만 골라왔다고 했다. 구구는 딱히 책을 가려 읽는 타입은 아니어서 감사히 받았다.

나흘 전 밤, 어둠 속에서 정체 모를 거대한 공포와 마주한 뒤로 밤에는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우는 애초부터 이장의 말을 잘 듣기로 한 것인지 해가 질 때쯤부터는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었다. 혹은 원래 외출을 즐기지 않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가장 최근 이장이 찾아왔을 때 날 그는 구구에게 안부 인사를 하듯 물었다.


"밤에 나가보려고 한 적은 없으시죠?"


구구는 단호하게 없다고 말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단단한 어둠을 마주했던 밤이 떠올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것만 잘 지킨다면 여기서 지내는 데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구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인 뒤 대문을 나섰다.




나흘 째 점심은 혼자 식당에 갔다. 우는 배가 아파서 아무것도 먹기 싫다고 했다. 화장실을 가지 않는 걸로 봐서 배탈은 아닌 듯했다. 구구는 생리인지 물어보고 위생용품을 사다 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런 걸 물어보고 부탁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늘은 처음으로 식당 내에 자리가 없었다. 인근 관공서에서 주로 점심을 이곳에서 해결하는데 종종 사람이 몰릴 때가 있다고 식당 주인이 얘기했다.


"자리가 생기려면 좀 기다려야 하는데 괜찮으면 저쪽 혼자 먹는 김 할머니 앞에 앉아요."


식당 아주머니가 고갯짓으로 구석에 혼자 식사 중인 할머니를 가리켰다. 귀가 어두운지 합석이 대수롭지 않은지 할머니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구구는 하는 수 없이 할머니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할머니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음식을 먹는데만 집중했다.

주문한 김치찌개백반이 나오자 구구는 밥을 한술 떠 넣었다. 갓 지은 밥의 찰기가 닿자 기분이 좋아졌다. 마주 앉아서 묵묵히 밥만 먹는 것은 어색했지만, 할머니도 딱히 대화를 할 의지는 없어 보였다.

할머니의 밥이 절반쯤 남았을 때 구구의 음식이 나왔었는데, 절묘하게도 그릇을 비우는 시점은 같았다. 할머니는 맞은편에 아무도 없는 양 트림을 뱉었다. 김치와 절임반찬 냄새가 구구의 코끝에 닿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구구는 생각하며 일어서려는데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못 보던 총각이구만."


구구가 손등으로 자신의 코를 막으며 인사를 건넸다. 이제 와서 인사를 하는 게 맞는지 싶었지만 다른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여긴 외지인들이 거의 오지 않는 곳인데, 사고라도 쳐서 도망쳐 왔는가?"

"사고를 당한 것 같긴 합니다만, 도망쳐 온 건 맞는 것 같네요."

"사고를 당했다면서 왜 도망쳤어."

"이제 제 힘으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라서요. 설명하려면 좀 복잡합니다."


할머니는 딱히 알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얼마나 머물 생각이야?"


구구는 여기 온 지 엿새가 지났으니 일주일쯤 더 머무를 예정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오래 있으려고? 여긴 오래 있을 만한 곳이 못 돼."

"동네가 작고 조용하긴 합니다만, 오히려 적응하기 시작하니 좋더라고요. 휴가를 2주일이나 받아 버려서 휴가 내내 여기에 머무르고 싶습니다."

"젊은것들은 밤에 나가서 노는 걸 좋아하지 않나? 여긴 밤에 아무것도 없잖아."

"제가 딱히 술을 마시거나 하는 밤 활동을 좋아하지 않아서 괜찮습니다."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이곳의 밤은 정말로 아무것도 없으니까."


할머니는 이곳의 밤에 대해 뭔가 아는 눈치였다. 구구가 무슨 말이냐고 더 캐물으려는데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이장과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말아. 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 달고 다녀도 속은 여기 밤만큼 시커먼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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