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사회

13

by 안온

이곳에 온 지 이주일이 되는 날이었다. 구구는 아침 일찍 찾아온 이장과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약속한 날이 되어 어떻게 할 건지 묻기 위해 찾아왔다고 했다. 어느새 이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던지라 벌써 이 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쯤 이장이 본론을 꺼냈다. 구구는 딱히 생각해 둔 것이 없었다. 사실 그가 찾아와 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이 주나 흘렀는지조차 몰랐다. 일을 하지 않으니 평일과 휴일의 생활 패턴 경계가 무너지면서 날짜 개념도 흐려진 것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생각해 둔 것이 없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저는 살던 곳으로 돌아가 다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겠죠. 아침에 먹을 것을 사러 가고 출근을 위한 옷을 다림질하고요."


구구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지금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개인적인 상황으로 인해 현실과 마주하며 살기가 좀 힘들어졌다고 할까요. 아무튼,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유가 있습니다."


구구는 외계인에 대한 말은 꺼내지 않았다. 이장은 이유는 들어보지도 않았지만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시 생활이라는 게 공황장애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요. 매 순간 수많은 것들을 신경쓰다보면 어느 순간 예민해져 버리니까요. 어차피 겨울 동안은 계속 그 집을 쓸 일은 사람은 없으니 더 머물다 가셔도 좋습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겨울 이불을 좀 가져다 드리죠. 거긴 주인이 늘 겨울을 비워놓다 보니 겨울 이불이 없거든요."


구구는 고개 숙여 감사함을 전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구구는 차가운 공기에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2주 전에 비하면 상당히 추워진 날씨였다. 곧 겨울이 오겠다 싶을 정도였다. 구구는 이장이 입고 있는 검은색의 두툼한 패딩 코트가 부러웠다. 이장은 구구가 옆에서 그런 시선을 주는지도 모르는지 자신의 부른 배를 툭툭 치며 만족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가씨는 괜찮습니까? 이름이 뭐였던가요. 우라고 했던가요."

"안 그래도 무슨 마술이라고 부린 게 아니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그날 이장님이 왔다 간 뒤에 신기하게도 말끔히 나았습니다. 잠을 좀 오래 자긴 하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습니다. 아무래도 긴장이 풀리면서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지요."

"잠을 오래 잔다라……."


이장이 앞을 보고 걸으며 묘한 미소를 띠었다가 곧바로 숨겼다. 구구가 마침 그의 얼굴을 보고 있었기에 그 표정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나올 법한 성취의 미소였다. 그녀의 수면시간과 이장의 이익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도통 짐작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마음 편하신가 봅니다. 그래서 푹 주무시는 걸지도요."


그가 시선을 멀리 던지며 말했다. 건물도 하늘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시선이 머물렀다. 구구도 이장의 시선을 따라 그곳을 쳐다봤지만 먼 곳의 산 능선뿐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녹색과 갈색이 적당히 어우러진 완만한 곡선.

구구와 이장은 마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겨울 이불은 모레 갖다 드리겠습니다. 마침 그날 보일러 수리공도 마을에 들른다고 했거든요. 큰 방의 배관 수리도 하고, 데려 온 김에 마을 어르신들 집들도 한 번씩 둘러볼 참입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마을 어르신들의 난방 점검을 해드리는 것도 이장의 할 일이죠."


구구는 개인 보일러까지 이장이 일일이 점검을 해줘야 하나 싶었지만, 마을이 워낙 작고 마을마다 사정이라는 게 있을 테니 구태여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끝마치고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가지러 방에 들어갔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처음엔 그것이 전화벨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무무에게 연락이 오지 않은 것을 확인한 날로부터 단 한 건의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기에 전화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구구의 스마트폰은 그날 밤 충전기에 꽂은 상태 그대로 바닥에 놓여있었다. 관심밖으로 멀어진 물건이 점차 구석으로 내몰리듯, 스마트폰은 붙을 수 있을 만큼 벽에 바짝 붙어있었다. 전화기를 받아 들자 구구가 이미 알고 있던 무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인사도 없이 본론부터 꺼냈다.


"썩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우 씨가 최근에 많이 아프지 않았던가요? 그녀의 꿈을 제가 엿보게 되었거든요. 아무래고 우 씨는 현실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있는 듯합니다."


구구는 무무의 말을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가 어떤 능력으로 인해 우리 주변이 편집되는 과정을 마주할 수 있다고 했지만, 지금 그의 설명은 너무 비약적이었다.


"당신도 비슷한 꿈을 꾸고 있겠지요. 루루와 함께하는 꿈이요. 모든 감시에서 벗어난 곳에서, 가장 함께 있었으면 하는 사람과 머무는 꿈 말입니다. 우 씨는 지금 그 꿈에 매몰되고 있어요."


구구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무무는 이 정도 기다려줬으면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말을 이었다.


"그녀가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꿈속은 천국이 아니라 감옥이에요. 우리를 제거하지 못한 존재가 우리를 아예 현실 밖으로 고립시키려는 겁니다. 그곳엔 당신의 꿈속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바라는 모든 것이 있어요. 단 하나 없는 것이라고는 현실일 뿐입니다. 이해하기 힘드시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드릴 수 있는 말은 그곳에서 벗어나 일단 저와 만나는 게 좋을 것이라는 말뿐입니다. 그곳은 위험해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위험한 사람이 있어요."


구구는 그 사람이 누군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장. 외지인에게 지나치게 진철한 남자. 우의 아픔을 사라지게 만든 남자.


"누군지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

"그 의심이 맞을 겁니다. 서둘러 그곳에서 벗어나세요."


구구는 그러겠다고 말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스마트폰으로 이곳 역에서 내일 떠날 수 있는 열차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10시 15분에 구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첫 기차가 있었다. 구구는 두 좌석을 예매했다. 내일 오전 이장을 만나면 그가 가져올 친절이 더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마지막일 거라 생각한 밤이 찾아왔다.





다음주는 매장 행사로 인해 한 주만 쉬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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