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의 팬(Fan)

1. 우리

by 안온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새하얀 대형 카페. 두 층으로 된 그 카페는 한쪽 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 유리를 통해 바다가 보였다. 넓게 펼쳐진 고운 모래사장과 바다도 아니고 잿빛 암벽에 파보다 부딪히는 모습이 장관인 바다도 아니었다. 잔잔하고 볼품없는, 이쪽 육지와 저쪽 육지 사이에 어쩌다 흘러들어와 고여버린 그런 바다였다.

그럼에도 이 카페에는 늘 사람이 붐볐다. 평일 낮에는 아이를 학교에 보낸 뒤 시간이 남은 엄마들의 모임장소로, 해가 진 뒤에는 여러 형태의 커플들로 북적거렸다. 근처 다른 카페보다 음식이 맛있는 것도 아니고, 음료나 디저트가 예쁜 것도 아니고, 좌석이 편한 것도 아닌데 유독 이 카페만 사람이 몰렸다.

화요일의 점심시간, 유나도 그 카페의 2층 창가에 앉아 있었다. 화요일은 일주일에 한 번 '제이'를 좋아하는 엄마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유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캡처해 둔 제이의 사진을 넘겨봤다. 이런 취미를 들키는 것이 부끄러워서,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주변을 흘끔거리는 시선의 횟수도 늘었다.

여섯 장째 사진을 보고 옆을 흘끔거렸을 때, 계단을 올라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어깨 선에서 에지 있게 말려 들어간 헤어스타일을 보자마자 유나는 지선임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지선이 알아보게끔 손을 흔들었다. 유나를 알아본 지선이 밝게 웃으며 자리로 다가갔다. 지선은 유나는 엄두도 못 낼 수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에코백 놓듯이 무심하게 테이블 위에 툭 올려두고는 유나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아휴, 아직 5월 중순인데 날씨가 여름이야."


지선은 여기 카페 사장은 돈도 잘 벌면서 왜 아직 에어컨도 켜지 않느냐 불평했다. 주문한 음료는 수다를 떨 틈도 없이 직원이 갖다주었다. 지선은 망고큐브가 가득 올라간 스무디를 받자마자 입안 가득 빨아 마셨다.


"이제야 살 것 같네. 유리 엄마는 또 제이 보고 있었던 거야?"


유나는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선이 자신의 전화기를 몇 번 터치하더니 지난번에도 보여준 사진을 내밀었다.


"이제는 '아몬'이 대세라니까. 이것 봐. 누가 스물셋으로 보겠어, 스물도 안 되어 보이는구먼."


아몬은 저번 주 갓 데뷔한 멤버였는데, 아기 같은 얼굴에 괴물(monster) 같은 몸을 가졌다고 해서, 줄여서 아몬이라는 활동명을 지었다고 들었다. 유나가 보기에도 10대 소년처럼 보이는 뽀얀 피부에 해맑고 순수한 미소와 대비되는 잔근육으로 꽉 채워진 탄탄한 몸매는 절로 시선을 끌었다.


"제이도 잘생기고 키도 훤칠하지만 뭐랄까, 너무 다정한 동생 같다고나 할까."

"이런 남동생이라도 있으면 좋겠네요."

"그거 위험한 발언이다?"


지선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유나를 쳐다봤다. 남자친구든 남동생이든 제이를 한 번이라도 만나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유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둘이 떠드는 사이 회색 레깅스에 딱 붙는 반팔 셔츠를 입은 민정과 늘 단정한 검은색 정장 스커트에 카라 끝에 진주 장식이 달린 연베이지 블라우스를 입은 효진이 나타났다. 여덟 살 난 아들이 있는데도 여전히 대학생 같은 앳된 얼굴에 필라테스로 다져진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민정과 열두 살 맏딸과 두 살 터울이 있는 둘째 딸, 아직 일곱 살인 막내아들까지 낳았는데도 골드미스처럼 농염한 매력을 풍기는 효진의 등장에 주변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돈이 많아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는 지선과 자기 관리의 끝판인 민정, 진짜 대기업의 변호인단에 다니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로 아는 게 많은 효진 사이에서 유나는 내세울 게 없었다. 단지 제이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그녀는 이 무리에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지선 언니는 아몬으로 환승한 거야?"


민정이 지선의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한 남자만 사랑하기엔 시간이 아깝잖니. 이 남자 저 남자 다 사랑해 봐야지. 진짜 만나서 하는 사랑도 아닌데 좀 갈아타면 어때."


지선이 민정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나도 요즘 다른 멤버가 눈에 들어오긴 하는데, 아직까지는 제이만큼인지 모르겠어. 생긴 것에 비해 매력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보고 있으면 자꾸 어딘가 아쉬운데 콕 집어 말하려니 또 이걸 뭐라 표현해야 될지를 모르겠네."

"작잖아."


효진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유라는 효진의 말에 곧바로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렸다. 본명인지는 모르겠으나 유일하게 한국 이름으로 활동하는 '해성'은 왜소했다. 평균을 웃도는 아몬과 제이에 비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왜소했다.

유나는 이때다 싶어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그냥 같이 제이만 좋아하자."

"우리 유라는 아주 그냥 순정녀야, 순정녀."


지선이 유나를 놀리듯 말했다. 지선이 그런 능글맞은 농담을 던져도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이 모임의 물주였다. 민정과 효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유라의 눈치를 살핀다. 정작 유나는 그런 농담에 내성이라도 생긴 듯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이제 유나 놀리는 재미가 없어. 예전에는 이런 말 하면 얼굴이 새빨개지는 게 완전 소녀 같았는데."


지선도 김이 샜는지 더는 놀리지 않았다.

넷은 음료를 다 마실 때까지 한담을 나눴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30분쯤 더 지나서야 손님이 많이 빠졌다. 민정이 자신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과 맞닿은 자리가 모두 빈 것을 확인한 뒤 지선에게 몸을 내밀어 목 다른 테이블에 들리지 않게끔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그래서 이번엔 뭐야?"


유나도 효진도 지선에게 시선을 모았다. 지선은 그런 시선에 부응하는 것을 준비하지 못했는지 자신의 얼굴 앞으로 손을 흔들면서 몸을 뒤로 살짝 뺐다.


"내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런 것에 막무가내로 쓸 수 있을 만큼 자유롭진 않아서. 나중에 남편이 어디에 썼냐고 묻기라도 하면 곤란하거든. 눈치 보지 않을 만큼 쓰려다 보니 이번엔 내 취향대로만 질렀네?"


민정과 효진, 유나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나왔다. 이번 주도 지선은 아몬의 미공개 영상만 가지고 왔다. 우리의 모임은 분명 제이를 중심으로 모였었는데, 지선은 저번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아몬의 영상만 가지고 왔다. 그러나 불평할 수 없었다. 그녀가 구해오는 영상은 여기 모인 다른 사람들이 수시로 결제하기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가끔 자신들의 취미를 '이런 것'이라고 비하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취미보다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지선의 말투는 자신이 이 모임의 리더라는 것을 더욱 공고하게 했다. 지선의 심기를 긁는 순간 나머지 셋은 제이와도 멀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지선이 보여주는 아몬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고, 단체방에 전체 영상을 공유받았다. 지선을 제외한 셋은 영상을 보는 내내 이런 것을 보는 것이 부끄러워서 몇 번이고 누가 자신들의 취미를 훔쳐보나 싶어 주변을 흘끔거렸다.


"너네들이 그러니까 더 궁금해서라도 우리 쳐다보겠다."


셋의 그런 행동에 지선이 큰 소리로 말하자 민정이 다급히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대며 "진짜 쳐다보면 어쩌려고 그래!"하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나이 먹는 것도 슬픈데 이런 거 보는 재미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니."


동영상 전송이 완료되자마자 지선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방에 담았다. 모임은 여기까지였다. 이번 주도 제이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아몬드 나쁘지 않았다. 유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카페를 나섰다.




유나와 그 일행들이 화요일에 모이게 된 것은 월요일에 제이의 개인 방송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한 제이는 매주 월요일 개인방송을 켰다. 지난주에도 아몬의 영상만 본 지라 제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이미 다운로드하였던 영상들을 몇 번이고 돌려봤지만, 이미 봤던 영상 말고 새로운 영상이 주는 자극이 필요했다.

제이의 일상을 보고 난 다음 프로다운 모습을 보면 매력이 더욱 돋보였다. 스위치가 켜지듯 눈빛과 몸짓이 바뀐다. 상대방을 빨아들이는 듯한 눈빛, 웃을 때 얇게 퍼지는 입술, 훤칠한 키에 탄탄한 몸매까지 제이는 밸런스가 좋았다. 그쪽으로 재능도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심취하게 만들기도 했다.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제이가 방송을 시작했다는 알림이었다. 유나는 보던 SNS를 닫고 제이의 개인방송을 켰다. 깔끔한 베이지색 후드티만 걸친 모습이었다.


- 안녕하세요, 누나들.


일할 때와 달리 조금은 상기된 하이톤의 목소리가 나오자 채팅방은 난리가 났다. 유나도 그에 질세라 너무 보고 싶었다고 채팅을 남겼다.


- 유나 누나는 매주 보니까 더 좋네.


제이가 팬들의 닉네임을 하나하나 불러주면서 인사를 하다가 불쑥 유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유나는 온라인상에서도 유나라는 닉네임을 그대로 썼다. 유나라는 이름을 가명으로 활동하는 연예인들도 많고, 온라인상에서도 닉네임으로 쓰는 사람들이 많아서 유나를 본명으로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나는 제이의 방송에서 '제이♥유나'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다. 평소에는 '유나 누나도 안녕.'과 같은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인사로 넘어갔는데, 오늘은 조금 더 친근하게 인사를 걸어주었다. 심지어 자신이 매주 오는 사실마저도 알아봐 주었다. 유나는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는 유나를 볼 수 없음에도, 마치 나를 보고 있다는 듯이 카메라를 응시했다. 저 눈 속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채팅방을 보니 왜 유나 님만 살갑게 반겨주냐고 난리가 났다. 유나는 자신이 남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받았다는 것에 우쭐해져서 10만 원의 후원금을 보냈다. 난리난 채팅방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와, 유나 누나. 나 오늘 낮에 촬영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누나의 마음 덕분에 힘든 게 녹아내리네.


유나는 남자답게 보이려고 목에 힘을 주어 목소리를 깔고 말하는 제이가 너무 귀여웠다. 제이는 말 끝에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카메라 앞에 내밀며 윙크를 해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나를 질투하던 채팅이 제이의 애교 한 번에 다들 쓰러질 만큼 좋아 죽겠다는 채팅으로 도배되었다.

제이의 개인방송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다. 좋아하는 음식, 요즘 즐겨 듣는 음악, 후원금을 보내는 사람들이 묻는 알맹이 없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거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했다. 팬들은 제이의 입에서 자신의 닉네임이 불리길 기대하며 그의 관심을 끌만한 채팅을 쉴 새 없이 퍼부었지만 질문이 너무 많기도 하고, 너무 많아 순식간에 채팅창 위로 넘어가버려서 대부분은 묻혀버리기 일쑤였다. 물론 후원금을 보내주는 팬의 이야기는 꼼꼼하게 읽어주는 것으로 보아 그가 돈을 벌기 위해 일부러 읽어주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나를 포함한 팬들은 제이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의 인기가 얼마나 높은데, 그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얼만데, 고작 몇 만 원의 후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채팅을 읽지 않을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방송은 두 시간가량 이어졌다. 제이는 이날 유나의 채팅을 꽤 많이 읽어주고 그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유나는 이날 방송에서 자신의 위치가 다른 팬들과는 조금 다른 곳에 있다고 느꼈다. 물론 몇십만 원, 몇 백만 원을 툭툭 내던지는 열혈 팬과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그 아래 일반 팬들 사이에서는 나름 상단에 위치한다고 여겼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누나들과 얘기하다 보면 정말 두 시간은 순삭이라니까. 이번 주는 촬영이 없어서 다음 주 이 시간에도 방송 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누나들 다음 주에 또 봐요.


제이가 양손을 들어 손끝을 정수리에 대고 큰 하트를 그렸다. 곧이어 방송이 종료되었다는 검은 화면이 나왔다. 채팅방은 나가는 팬들과 아쉬움에 서로 채팅을 주고받는 팬들로 채팅방이 어지러웠다. 채팅 내용 중에는 오늘 언급이 많이 된 유나를 부러워하는 글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유나는 그저 우연히 오늘 많이 언급되었을 뿐이라며 겸손의 채팅을 남기고 방송을 나왔다.

이번 주 촬영이 없으면 내일 모임도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단체채팅방에 지선의 채팅이 올라왔다.


'제이 촬영 스케줄이 없으나, 아몬의 새 영상을 구했음. 다들 시간 되면 그 카페에서 보자고.'


채팅방에 읽었음을 확인하는 숫자가 하나둘씩 줄어들고, 다들 마지못해 대답하는 듯 '네, 언니'하고 답장이 올라왔다. 유나도 그 흐름에 거역할 수 없었다. 자신도 가겠다는 답장을 보내고 침대에 누워 3주 전 지선에게서 받았던 제이의 영상 정주행 하며 다음 주에는 제이의 영상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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