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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ul 25. 2023

좋은 사람

본격적인 한파가 몰아닥친 어느 겨울이었다. 이럴 땐 옷을 입는다기 보다뒤집어쓴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움직임이 둔할 정도로 잔뜩 싸매고 나갔는데도 주차장에서부터 오싹한 냉기에 진저리가 쳐졌다. 그러나 잠시뒤 이마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겉옷을 집어던졌야 했다.


'이대론 안 되겠어.'

30 분가 자동차와 씨름을 하다 보니 온몸이 달아올랐다. 얼마 전에 구입한 중고차가 연식이 오래돼서인지 간격을 두고 갖가지 증상을 보였고 그날은 키를 넣고 돌리면 끄륵끄륵 숨이 끊어질듯한 소리만 내다가 멈춰버리기를 반복했다. 서서히 키를 돌리는 손에  들어가고 조여 오는 시간에 마음만 급해져 다.

급할수록 침착해야 한다는데 그것 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자꾸만 손에서 빠져나가는 자동차키를 줍느라 허리를 굽히는데 결국 입에서 육두문자까지 터져 나왔다. 


애꿎은 핸들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있던 그때,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에 문제 있으세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카센터 사장님이었다.

"아...... 네...... 출근하시는 길이세요? 차에 시동이 안 걸려서요. 전에도 이런 적 있었는데 몇 번 하다 보면 됐었거든요. 그래서 보험회사도 안 불렀는데 오늘은 말을 안 듣네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 증상을 속사포 쏘듯이 내뱉었다.

"제가 좀 봐드릴게요."

"아이코. 감사합니다. "

"별말씀을요. 저한테 전화를 하시지 그랬어요. 그때 명함 드렸잖아요."

"그게...... 너무 이른 아침이라서요."

그의 손을 탄 차는 신기하게도 잠시뒤 경쾌한 시동소리를 냈고 내 입에선 덩달아 안도의 한숨이 시원스레 터져 나왔다.

"이게 가스 차라겨울엔 이런 일이 잦아요. 언제 한번 들러주세요. 제가 전체적으로 한번 봐드릴게요."

사람 좋다는 평판이 자자한 사장님의 착한 얼굴에 너그러운 미소가 어렸다.


며칠이 지나 엔진오일도 갈 겸 카센터를 방문했다.

"추운데 안에 들어가셔서 커피 한잔 하시고 계세요. 먼저 온 차가 있어서요. 끝나면 금방 봐드릴게요."

사무실 안은 화력 좋은 난로 덕분에 훈훈했고 은은하게 기름냄새가 맴돌고 있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믹스커피를 타서 들고는 작은 사무실 안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쪽 구석에 택배상자가 잔뜩 쌓여있는 게 보였다. 얼핏 보아 족히 30개는 넘어 보였다.

'와! 카센터에 택배 시킬 일이 많은가 보네.'


"운전하시면서 차에 문제없으셨어요?" 

"글쎄요. 요새 안 나던 소리가 좀 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참!! 사장님, 사무실에 택배들은 다 사장님이 주문한 거예요? 양이 꽤 많던데......"

"아! 그거 이 동네 사람들 거예요."

"네?"

"제 사무실이 경비실이나 다름없어요. 낮에 직장들 다니느라 집에 사람없잖아요. 그래서 배달을 죄다 이리로 시키는 거죠. 그럼 제가 전달해주고 있어요."

"어머. 그거 쉬운 일 아닐 텐데......"

"괜찮아요. 저는 전달만 해주면 되는걸요 뭐. 엔진오일 갈고 차 다 손 봤습니다.

이제 차에서 소리 안 날 거예요."

보닛 뚜껑을 닫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려 퍼졌다.

"사장님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셨나 봐요. 아니, 어떻게 이 복잡한 차 엔진을 척 보면 척 아세요? 저는 백 날 공부해도 모를 것 같은데......"

"아녜요. 저 공부 못했어요. 그래서 이거 하는 건데......"

멋쩍은 웃음소리에 회답을 하듯 나도 꺽꺽 소리를 내며 같이 웃어댔다.

"오늘은 엔진오일값만 받을게요. "


얼마 후에 이사를 하게 된 나는 그 동네를 떠나고 나서도 차에 문제가 있을 때면 언제나 카센터만을 찾았다. 그러다가 신차를 구입한 후부터 자연스레 카센터 가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고 그렇게 한동안 잊고 살고 있었는데 얼마 전 동생의 전화를 받고  후에 뒤통수를 가격 당하는듯한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누나가 전에 살던 동네에  카센터 있었잖아. 기억나? 누나 단골 말이야."

"당연하지, 그 사장님 엄청 좋으시잖아."

"사장님이 얼마 전에 세상을 뜨셨대."

"뭐? 왜? 지병이 있으셨대? 아님 교통사고?"

"자살......"

"뭐? 자살? 아니 왜......"

"자세히는 모르겠고 사기를 크게 당했었나 봐. 사람들한테 이용만 당하다가 그리 되신 것 같다고 수군대는 소리 들었어. 사장님 사람들한테 외상도 잘 주고, 그러고 나서 받지 못하는 일도 부지기수였잖아. 그렇게 사람이 좋았는데 너무 안 됐어. 사기를 얼마나 크게 당했으면..... 얼마나 힘들었었으면......"

"어머, 어떡해. 내가 그때 얘기 좀 해 줄걸 하다가 월권인 것 같아 말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라도 조언을 좀 해줬어야 했어."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거절 못하고 착하게만 살다 간 호구 잡힐지도 모른다고. 사무실 유리에 '외상사절'이라고 써붙여 되는 거 아니냐는 농담까지 했었는데 직접 써서 붙여줄걸 그랬나? 그랬으면 이미지가 달라 보였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약속이 있던 어느 날, 나는 생각 없이 목적지와는 반대방향인 전에 살던 동네 핸들을 돌리게 되었다.

터가 굳게 내려진 카센터 앞은 대낮의 밝은 햇살을 외면한 채 침울하고 어두워 보였다. 시동을 끄고 한참을 서 있는데 사장님의 착한 미소가 주변을 둥둥 떠다니는 같았다.


월권이었어도 말해줄걸 그랬다. 가끔은 이기적이어괜찮다고. 내 얘기에 바뀌는 건 없다 해도 그래도 말해줄걸 그랬다. 너무 착하게만 살아선 안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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