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다채롭기도 하다

by 김선희

벽난로 히터 위에 액자처럼 붙어있는 티브이,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 화면을 꽉 채운 이병헌의 표정에 사로잡혀 눈을 깜빡이는 방법을 잊은 사람처럼 진지해져 있었다. 그때 눈앞에서 뭔가가 아른거렸다. 집중을 방해하는 움직임, 생김새. 보일 듯 안 보일 듯 옅은 거미줄을 타고 슬금슬금 내려오는, 그렇다, 거미였다. 그것은 자신이 타고 내려온 외줄만큼이나 가느다랗고 길쭉한 다리를 흔들며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화면을 잠시 멈추게 한 뒤 티테이블에 올려놓았던 양장본을 들고 휘저었다. 땅바닥에 떨어져 꼼짝도 않고 있는 그것을 나는 사정없이 내리쳤다. 납작해진 몸, 그 옆에 끊어져 낭자해 있는 다리 조각들, 시크하게 물티슈로 닦아낸 후 멈춤 버튼을 해제하고 화면에 집중했다. 이병헌이 다시 바둑판에 무겁고 세련되게 흑돌을 내려놓았다.


어느 비 오는 날, 집 벽을 타고 느물 느물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길이, 짙은 갈색 몸뚱이. 조금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분명 달팽이를 닮아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민달팽이. 몸을 가려줄 집이 없는 민달팽이는 알몸을 고스란히 내놓고 있었다. 벌거벗은 몸은 내 안의 세포들을 모두 깨울 만큼 징그러웠다. 쓰레기를 버리고 와서 문을 열고 있는데 그놈이 내 등을 타고 꾸물꾸물 올라올 것만 같아 뒤가 움찔거렸다. 도어록의 비번을 누르는 손가락이 자꾸 미끄러졌다.


믹스커피를 탔다. 구수하고 달달한 향기를 킁킁거리며 소파에 앉으려는데 무언가가 휙! 재빠르게 움직였다. 악! 소리와 함께 잔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커피가 나무바닥 위에 쏟아졌다. 바닥이 공갈빵처럼 가벼워서인지 컵은 깨지지 않았다. 아까 뭐였지? 쿠션 속으로 몸을 숨긴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려 조심히 쿠션을 집어 들었다. 혀를 날름거리고 날씬한 몸을 꿈틀거리는 그것은 도마뱀임에 틀림없었다. 죽여서도 안될 것 같고 그럴 용기는 더욱 없었다. 재빨리 쿠션을 문밖으로 집어던졌다. 조금 있다가 쿠션만 들고 들어오면 도마뱀을 내쫓는 데는 성공한 것이다. 어떤 종류의 도마뱀이었을까? 대충 생김새와 색깔, 뉴질랜드에 사는 도마뱀의 종류를 검색해 보았다. '영원'이란 답도 나왔지만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한강작가의 '노랑무늬영원'이 퍼뜩 떠올랐다. 몇 달 전에 읽은 책의 여운이 아직 남아서일까, 밖으로 집어던져버린 그것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참 다채롭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 날파리가 극성이더니 귀뚜라미, 사마귀, 이름 모를 다족류 벌레들까지 이따금씩 집안으로 들어온다. 아 참! 개미군단들도 빼놓을 수 없다. 자연과 공생의 관계를 이룬다는 사상 때문인지 아니면 늘 도처에서 출몰하는 벌레들에게 이력이 나서인지 뉴질랜드 사람들이 벌레를 대하는 태도는 덤덤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여보세요. 여기 Hernebay인데요, 방역 좀 하려고요."

너희들과 절대 같이 살 수가 없다고 부르짖기라도 하듯 방역이란 단어에 힘을 싣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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