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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ul 04. 2022

한 번도 갑이 된 적이 없는 여자

2. 이체하고 불리세요

나는 기러기다.

싱가포르에서 코로나 때문에 발이 묶여있다가 1년 7개월 만에 한국을 찾았다.

해외에 있으면서 가장 그리운 것 중의 하나는 한국의 목욕탕이었다.

그리고 사무치게 그리운 세신아주머니.


나는 당연히 오자마자 동네 목욕탕부터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목마른 강아지처럼  "세신아주머니 계시죠?"

 물었고 옷을 입은 채로 목욕탕 안에 세신아주머니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어디에도 계시지 않았다.

'아! 현금을 안 가지고 왔구나!'

간신히 그들만의 공간에서 쉬고 계시는 세신 아주머니를 찾아 여쭤보았다.

"현금을 안 가지고 왔는데 이체도 되나요? 저 미니 마사지 건데요."

"네. 이체하고 불리세요."

아주머니의 대답은 굉장히 간단명료했다.

나는 단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네?"

"돈 이체하시고 몸을 불리라고요."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딱히 불친절하지도 않은 아주머니께 조금이라도 친밀하게 다가가보고 싶었던 나는 일부러 더 오버하며 웃어 보였다.

아주머니도 같이 웃으실 줄 알았는데 나만 뻘쭘해져 버렸다. 이런...

열쇠를 베드 위에 올려놓고 내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지루했다.

온탕을 들어갔다 나왔다를 몇 번을 반복해도 내 차례는 오지 않았고 슬슬 짜증이 밀려와 차라리 셀프로 때를 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아주머니가 내 키 번호를 부르셨다.

그렇게 어렵게 아주머니에게 몸을 맡긴 나는 생각했다.

오늘도 나는 철저한 을이 되겠구나.

조금만 부주위하면 미끄러져 떨어질 것만 같은 베드에 누워 천장을 보니 누군가 잡고 몸을 지탱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튼튼한 바가 보였다.

언젠가 본 것 같다. 세신아주머니가 그 바를 잡고 서서 고객의 등을 꾹꾹 밟는 모습을.

오늘 저 코스가 나한테도 해당되려나?

그러면 그건 그냥 건너뛰어달라고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못했다. 쭈뼛거리다가 타이밍을 놓쳐 할 말을 하지 못하는 것도 내가 많은 순간 을로 사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러다 내 등이 으스러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만큼 강도가 센 마사지였다.

뭐가 미니 마사지라는 거지? 그럼 7만 5천 원짜리 전신 마사지는 이 보다 더 강하다는 건가? 난 이미 전신을 다 마사지받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등을 히는 동안 요것만 지나가면 시원한 단계가 오겠지라는 생각만 한 것 같다.

아주머니는 왼쪽, 오른쪽. 엎드리세요. 를 말로 하지 않으시고 베드를 손으로 툭툭 치는 것으로 대신했다.

나는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다음 단계는 무언가 거친 돌 같은 걸로 내 등과 목을 박박 긁어대기 시작했다.

조금 아팠지만 나는 이번에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미니 마사지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마사지를 받은 게 아니라 뭔가 고된 훈련을 끝낸 기분이었다.

그리고 등이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딸에게 등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해서 보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등이 온통 피멍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딸이 놀라며 다시 가서 이건 좀 심한 거 아니냐고 따져 물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종용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세신아주머니대답은 정해져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만 이렇지 몇 번 하다 보면 시원해요."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따지는 걸 잘했다면 이렇게 많은 부분 을로 살진 않았을 것이다.


그 날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은 통증을 미련하게 참아가며 생각했다.

'아~나도 이제는 당당한 갑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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