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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ul 03. 2022

한 번도 갑이 된 적이 없는 여자

1.프롤로그

나는 늘 을로 사는 여자인 것 같다.

세입자가 되었을 때도, 집주인이 되었을 때도. 선생님이 되었을 때도, 학부형이 되었을 때도.

장사꾼이 되었을 때도, 고객이 되었을 때도.


근간 꽤나 자주 뉴스를 뜨겁게 달구는 갑질 논란을 접하면서 나도 남들과 다름없이 손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분노하고 격분한다.

그러고 나 나는 한 가지 의아함을 떨칠 수가 없다. 

어떻게 경비원 아저씨에게 갑질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택배 아저씨에게 갑질을?

나에게 있경비원 아저씨도 택배 아저씨도 모두 을이 아닌 갑이기 때문이다.

경비아저씨께 택배보관을 부탁할 때도 나는 아저씨의 심기를 살펴야 하고 주차라도 삐딱하게 하면 또 얼마나 혼이 나는지... 연신 [죄송합니다]말하고 있는 나는 당연히 을이고

그렇게 우리 아파트를 지켜주시는 경비아저씨는 진정한 갑이시다.

택배 아저씨 또한 그렇다.

내 소중한 택배를 내 집에 가져다주시는 분. 그걸 안전하게 받으려면 난 당연히 을이 될 수밖에 없다.


큰 애가 어릴 때 나는 방문 선생님과 문화센터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철저한 을로써 학부형들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그런데 내가 학부형의 입장이 되었을 때, 내가 방문 선생님과 문화센터 선생님의 고객이 되었을 때, 분명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는데도  이번에는 내가 선생님들의 비위를 맞추는, 그렇게 나는 또 을이 되었다.


백화점에 가서도 나는 갑이 아니다. 

내가 남의 영업장에서 원하는 물건을 맘껏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입어보면서 고르기 위해서 나는

을이 될 수밖에 없다.

백화점 직원분들은 그냥 친절한 갑으로 느껴질 뿐이다.


누구나 갑이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

항상 갑이 될 수도 없고 언제나 을이 되는 사람도 없다.

어마어마한 기업의 대표도 그 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이용하는 고객에게는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내가 갑일 때는 을이 되었을 때를 생각할 줄 알고 내가 을이 되었을 때는 갑을 대우해주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갑과 을의 관계가 사라질 수 없다면 양쪽이 모두 당당해져서 갑과 을의 관계가 모호해지는 사회는 어떨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을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다.

갑일 때도 을이 되고 을일 때는 철저한 을이 되어 살아가는 내 모습,

그렇게 을로 살아가면서 내가 만났던 갑들의 모습들을 기록해보고 싶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박하지만 공감과 몰입지수가 높은, 무릎을 칠 정도의 기록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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