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포대기

by 김선희

언제부터인지 내겐 기이한 능력이 하나 생겼다. 근원도 알 수 없는 내 안의 능력은 엄마가 떠나고 나서 발현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엄마가 떠나고 난 후에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그건 바로, 길 가다가 포대기를 두른 할머니들을 보면 친할머니인지, 외할머니인지 귀신같이 알아맞히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 시어머니에게 애를 맡겼는지, 친정엄마에게 맡겼는지 단번에 알아낸다는 것이다. 사실, 직접 가서 외손주 맞죠?라고 물은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예감을 거의 확신한다. 손주를 업고 있는 친정엄마에게는 시어머니와는 대척되는 표정이 있다.

내가 펄벅의 어머니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소설 속에 신산스러운 어머니의 삶 때문만은 아니다. 눈먼 딸, 처형당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이 읽혔기 때문이다. 비극을 맞이할 때뿐만이 아닌, 담담하거나 심지어 기쁠 때도 그녀들의 표정엔 애연함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웃음이 쩌렁한 초등학교 운동장, 작고 단조로운 오래된 아파트의 놀이터, 반경이 짧은 골목길 보도를 엄마는 터벅터벅 선회하곤 했다. 외손녀를 업고, 그 뒤로 팔 년 후에는 외손자를 업고(나의 딸과 아들은 팔 년의 터울이 있다). 녀석들을 등에 바짝 끌어당겨 업으면 할머니 등에서 씨근대며 잘 자던 아이들.

파마약이 태아에게 좋지 않다고 임신기간 내내 참다가 아기 낳고 나서 육 개월쯤 되었을 땐가, 엄마에게 딸을 맡기고 미용실에 간 적이 있었다. 약을 바르고 머리를 함빡 싸매고 앉아 잡지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아기를 업고 미용실을 찾아왔다. 근데 그게 왜 그렇게 짜증이 나던지, 조금만 있으면 끝나는데 그 새를 못 참고 오면 어떡하냐고 날 선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슬픈 건, 내가 짜증을 내도 엄만 단 한 번도 맞대응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새끼 봐주는 엄마한테 왜 그렇게 쏘아대냐고 한마디 했더라면 그때의 일은 쉬이 잊혔을지도 모른다. 이렇게까지 심지가 박혀서 시도 때도 없이 불을 붙일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아이가 울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오히려 유약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바로 알게 되었지만 나는 번복하지 않았다.

친정 지근거리로 이사를 가서 시도 때도 없이 아이를 맡기면 엄만 늘 손주 녀석들을 포대기로 업고 동네방네 다녔다. 그러다가 아이가 커서 아장아장 걸으면 행여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뒤꽁무니 바짝 쫓아다니며 종종 대던 모습이 선연하다.


어느 날 친정에 갔더니 음식냄새보다 진한 파스냄새가 집안을 부유했다. 한 손으로 허리를 짚고 꾸부정하게 일어나는, 피곤이 응축된 엄마를 보면서도 나는 아이를 맡겼다.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새끼들을 맡기면서도 난 늘 뻔뻔했다. 필요불가결한 낯짝조차 없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 엄마가 곁에 없는 건지, 아니면 엄마가 없으니 그걸 깨닫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결론은 이젠 부질없다는 것이다.

가끔 엄마와 살던 동네를 거닐 때면 "선희야."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하울링 친다. 등엔 아이를 둘러업고 출렁거리며 부르는 목소리는 간간이 리듬을 타고 꿀렁거린다.


요즘 부쩍 꿈에 엄마가 자주 나온다. 곰돌이가 그려진 포대기를 두르고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엄마 살아생전 불효를 꿈속에서도 응당 똑같이 저지른다. 밝게 웃으며 대답하지 괜스레 짜증을 부려댄다. 고마움의 표현, 고마운 눈빛, 고마운 웃음을 흘리지 못한다. 꿈속에서도 여전히 나는 후회를 한다. 나는 또 미안하다는 공동이 크고 부질없는 말을 수십 번 되뇐다. 내가 세상을 남기고 떠나는 날까지 그 말을 몇 번을 더 되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불효녀이다. 지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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