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사 굼벵이가 몸을 잔뜩 웅크린 모습과 같다. 스마트폰 속에 머리를 동그랗게 파묻는 아이들을 보며 저러다 목이 활처럼 구부러져 버리는 게 아닐까, 어이없는 걱정을 한다. 나 또한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도 얻고 재미도 한껏 뽑아내고 있지만 가끔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씁쓸할 때가 있다.
내 유년엔 즐길거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진하고 아린 추억이 많다.
그때의 나는 잠시간 짬이 날 때면 낙서를 즐겼다. 좋아하는 시 구절을 써보거나, 한참 빠져있던 가수의 이름을 흰 종이 가득 채워보거나, 조악한 실력으로 흠모하는 선생님의 캐리커쳐를 그려보기도 했다. 학교 쉬는 시간에 종이만 보였다 하면 그렇게나 낙서를 해댔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누군가 내 등을 톡톡 건드리면서 메모지 한 장을 건넸다.
"이거 네 거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아이가 내민 종이에는 내 글씨가 빼곡했다. 좋아하던 가수의 노래 가사를 써 내려간 종이를 내가 떨어뜨렸던 모양이다. 그 가사는 미치게 와닿았다, 사랑이란 걸 해본 적도 없으면서 그토록 저리고 아플 수가 없었다. 하나뿐인 그대, 제목부터가 절절해서 코피가 날 지경이었다. <사랑하지만 하나뿐인 그대 이제 잊기로 해요> 그 보다 아픈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작사가의 경험이라면, 그 마음이 어땠을까를 혼자 그려보고 상상했다.
종이를 주워준 친구의 이름은 연희였고 연희 역시 그 노래, 그 가수를 좋아한다고 했다. 이후로 우리는 고등학교 삼 년 내내 유일무이한 친구가 되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연희에게 듣자 하니, 나랑 친구가 되고 싶어서 좋아하지도 않는 가수를 좋아한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뭐, 어찌 됐든 친구가 된 계기가 낭만적이라서 그런지 연희를 떠올리면 아련한 향기가 난다.
만약 그때 내손에 휴대폰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랬다면 그 노래가 그렇게까지 마음을 때릴 수 있었을까, 나는 낙서라는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취미를 가진, 틈만 나면 음악 감상을 하고 시집을 읽는 여고생이 될 수 있었을까, 이만큼이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을까, 그 의문이 종내는 딸에게 머문다. 딸은 어떤 추억을 머금고 살아갈까, 디지털 시대에서 유년을 보내고 있는 딸에게 나만큼 뭉클한 감성이 있을까, 나는 종이의 여백을 찾아가면서 한 줄, 한 줄 노래가사를 쓰고,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품고 다니며, 좋아하는 음악을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던 그때를 짙게 추억하는데 말이다.
얼마 전, 낙서종이를 주워주었던 연희와 SNS를 통해 이십 년 만에 조우하게 되었다. 연희가 대뜸 내게 물었다.
"너 아직도 조정현 좋아해? 하나뿐인 그대, 아직도 그 노래 좋아해?"
부지불식간에 고등학교 때 기억들이 포말처럼 밀려와서 가슴을 철썩철썩 사정없이 내리쳤다.
모나미 볼펜, 누리끼리한 종이, 트랜지스터 라디오, 카세트테이프. 아날로그 파일을 하나씩 마음에 첨부하게 했다. 그러면서 나는 SNS로 연희를 만나고 있고, 내 손은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다. 유튜브영상을 뒤적거리고 있고, 순식간에 조정현의 노래를 찾는다. 음질 좋은 에어팟을 통해 <하나뿐인 그대>를 듣는다.
부쩍 바뀐 세상을 살고 있는 딸의 감성을 걱정하면서도 나는 아날로그 추억을 꺼내 디지털로 재생하고 있다. 휴대폰이 없다면, 나는 추억을 어찌 달래고 있을까, 그때처럼 흰 종이에 가사를 써 내려가고 있을까, 연희와 만날 수도 없었을 테고, <하나뿐인 그대>를 찾아들을 수도 없었겠지? 하지만 머리와 가슴으로만 재생하는 추억도 나쁠 것 같진 않다. 어차피 추억은 아련한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