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그런 상황에 체념한 채로, 그 모든 일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고통스러웠지만 살아졌고, 그녀는 살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살아진다. 그러다보면 사라진다. 고통이, 견디는 시간이 사라진다. 어느 순간 그녀는 더이상 겉돌지 않았고, 그들의 세계에 나름대로 진입했다. 모든 건 변하고 사람들은 변덕스러우니까. 그러나 그후에도 그녀는 잠들지 못하거나 질이 낮은 잠을 끊어 자며 아침을 맞았다. 가끔씩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폭음을 하고는 환한 대낮의 사무실에서 사람들과 웃으며 대화했다.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사람들은 때로 잔인하다. 대체로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고 무관심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의 상처를 헤집어놓고는 해맑게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깜짝 놀라 표정이 일그러지는 당신이 문제라는 듯이.
동시에 사람은 강인하다. 합리화의 귀재다. 인간의 뇌는 생존 비법을 알고 있다. 스스로를 속이는 한이 있더라도 일이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기어이 찾아낸다.
폭풍우 치는 바다를 표류하다 끝내 합리화라는 항구에 다다르지 못해도 상관없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폭풍우 자체가 영원할 수 없으니까.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다.
물론 긁어 파고 뒤집어 흩어진 상처에는 흉터가 남지만. 아물더라도 결코 상처 받기 전과 완벽히 같아질 수 없지만. 새벽에 종종, 불을 켜지 못하고 희부윰하게 밝아오는 창 밖을 뻑뻑한 눈으로 바라보더라도. 사라진다, 하여 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