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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백수 Sep 09. 2024

조리사는 데울 뿐...못 먹을 학식

영국 음식은 왜 학교마저 이 지경인가

하교 직후, 학교 앞 잔디밭은 소풍 같은 분위기다. 남자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천연잔디에서 축구를 하고 가을엔 낙엽 위에 뒹굴며 논다. 아름다운 정경이라고? 속을 알면 그렇지가 않다. 아이들은 부모가 싸온 음식을 허겁지겁 집어먹는다. 애들은 배고프다. 한창 클 때라서? 땡! 종일 못 먹어서 그렇다.

학부모 매뉴얼에 나온 급식 정보. 아이는 분개했다.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1년 내내 같은 메뉴

'제철 음식'이라는 개념은 한국에만 있나 보다. 메뉴에 변화가 거의 없다. 길게 썬 파프리카와 콘샐러드는 샐러드바 고정 메뉴다. 참치마요가 거의 매일 있다. 신선한 양상추 같은 잎채소는 없다. 샐러드바라고 하지만 제대로 된 셀러드를 한 접시 담을 수가 없는 구조다.


메인디시는 10개가 채 안 되는 음식을 돌려가며 주구장창 제공된다. 육류나 해산물 같은 재료는 전혀 들어가지 않은 순수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순수가 들어가니까 왠지 좋은 음식 같네?)는 거의 매주 한 번은 나오는 단골 메뉴. 매주 금요일은 '무적권' 피시앤칩스가 나오는 식이다. 커리앤라이스도 자주 제공된다. 아마 대용량 레토르트 같은 걸 데워서 주는 걸로 이해한다. 메뉴가 뭐든 맛 없기는 매한가지여서 아이들은 거의 먹지 못한다.


식탁 물병에는 깡 수돗물이 담겨 있다. 생수 아니고요 정수된 물 아닙니다 깡 수돗물 맞습니다. 식사 시간 후에 남은 물은 버리지 않는다. 물병은 씻지 않는다. 다음날 그 병에 수돗물을 다시 채워서 내놓는다. 알뜰하기도 하지.


매일 귀가 직전에는 이른바 애프터눈티 시간이 있다. 이른바,라는 말을 굳이 넣은 건 '티'는 명칭에만 있어서다. 마실 거리는 아무 것도, 깡 수돗물조차 없다.


물론 학교 애프너눈티에 3층 접시에 케이크와 마카롱, 에클레어가 쌓여 있고 예쁜 도자기 티팟에 향기 좋은 차가 따뜻하게 담겨 있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 스프레드도 바르지 않은 베이글, 혹은 비스킷 두 개에 치즈 한 조각을 덜렁 내놓는 건 심하지 않나? 아이들은 거의 먹지 않고 버린다.


영양에 대한 고려가 없다

한국에서는 영양 선생님이 매일매일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함량과 열량을 계산했다. 영국에선? 언감생심.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한국의 학교 급식은 유기농 식재료를 이용하고 학교마다 영양 선생님이 상주하면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제철 식재료를 최대한 인근 지역에서 수급하기 때문에 신선하다. 조리사 선생님들은 또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시는가. (이 분들의 직업병 문제, 낮은 급여 문제는 꼭 해결되길 바란다. 싼 임금으로 사람들을 갈아넣는 구조로 유지하기엔 너무 중요한 분야 아닌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나는 아이에게 '매일 점심 시간마다 아빠도 학교에 가서 한끼 먹고 오면 안 되느냐'고 묻곤 했다.


아,  알러지에 대해서는 영국이 예민하다. 어느 음식점에 가도 알러지 있는지를 체크하더니 학교도 그렇다. 알러지 있는 아이들, 또 종교적 이유로 특정 음식 먹지 않는 아이들을 체크해서 대체식을 제공하기는 한다. 대체식은 거의 고정적으로 스파게티지만.


양이 부족하다

살려면 먹어야 한다. 공부하려면 배를 곯을 수는 없다. 억지로라도 먹자면 넉넉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부실한 식사가 그나마 부족하게 나온다. 어떤 날은 메인디시를 충분히 준비를 못했는지 늦게 급식실에 간 고학년 아이들은 먹을 게 없기도 했다고. 지난해에는 케첩 물량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는지 한동안 케첩이 귀했다. 메인디시도 아니고 기본 제공되어야 할 소스류가 부족하다니.


또 과일이고 후식이고 하나씩만 가져가야 한다고 엄격히 관리한단다. 음 소아 비만, 소아 당뇨, 소아 성인병을 막겠다는 거겠지. 절대 돈 아끼려고 그런 건 아니겠지.


심지어 지저분하다

일단, 기본 상식이라는 게 아예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자. 어느 문화권에서는 바닥에 둘러앉아 손으로 음식을 먹고, 또 어느 문화권에서는 물김치 그릇이나 찌개 냄비에 온 가족 숟가락이 드나들기도 하니까.


하지만 여기는 영국 아닌가. 정식 만찬을 즐길 때 커틀러리 사용하는 순서나 물컵과 와인잔 놓는 위치까지 세심하게 기억해야 한다는 둥 식사 예절이 어떻다는 둥 하는 곳이다. 예절 이전에 청결은 기본 아닌가?


그런데 후식을 담아주는 접시에 메인 디시 소스가 범벅이라든가(자기가 먹은 접시에 담아 먹으라는 것도 아니고 새로 접시를 받았는데 이렇다는 거다) 머리카락 같은 이물질이 엉겨 붙어 있는 경우가 지나치게 잦다고 한다. 청결하다고는 누구도 절대 믿을 수 없는 개수대 물에 잠겨 있던 그릇을 꺼내서 그대로 음식을 담아주기도 한다나.


아이는 맛 이전에 비위가 상한다고 투덜거린다. 들어보면 도저히 참고 먹으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조리사는 데울 뿐

신선 식재료를 가져다가 조리하는 한국 학교 급식과 가장 큰 차이는 여기서 난다. 영국의 학교급식에서는 요리하는 과정이 없는 것 같다. 조리사 3~4명이 학생과 교직원까지 200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구조인데 외부에서 가져온 식품을 재가열해서 주는 수준으로 이해한다.


급식 준비는 파프리카 썰고 마이크로웨이브 돌리는 수준 아닐까? 튀김을 직접 해? 그럴 리가. 피시앤칩스마저 냉동 제품을 간단히 가열해서 제공한다. 이 과정이라도 성의있게 하면 따뜻하게나마 음식을 먹을텐데. 많은 양을 한꺼번에 대충 돌리는지 냉동에 더 가까운 상태로 접시에 담기기도 한다. 학생이 아니라 찐 영국인 선생님마저 '음 이거 차갑네?'하고 쓰레기통에 바로 버리는 수준이다.


모두가 안다 급식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 아이만의 불만이 아니다. 플레이데이트 할 때 다른 아이에게 급식 이야기를 꺼내면 바로 토하는 시늉을 한다. 디스거스팅하다고. 아예 도시락을 싸오는 경우도 적잖다. 아이 학년 전체가 20명인데 그 중 5명이 매일 도시락을 가져온다. 4명에 한 명 꼴이다. 딸은 피시앤칩스는 도저히 못 먹겠다고, 금요일 만이라도 도시락을 싸달라고 간청했다. 딸이 김밥이나 유부초밥을 싸가면 아이들이 몰려들어서 나눠달라고 할 지경이다. 물론 이건 아내가 요리를 잘 해서 그런 거다.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를 만나서 물어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선생님들한테 급식 이야기를 꺼내면 반쯤 웃는 얼굴이 된다. "우리 때도 그랬죠." "제 아들 학교도 그래요." 우리가 집에서 쥐가 나왔다고 놀라며 얘기했을 때 영국인들 표정이 그랬듯이.


뭐랄까.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맛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동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제일 낫다고 할 때랑 비슷하달까? 급식 맛없다는 건 상식이고 자학개그의 소재가 될 지경이라는 뜻이다.


뭔가 하기는 하는데 해결은 안 된다

이쯤 되니까 부모들도 종종 학교에 공식적으로 조치를 요구한다. 우리도 교사와 상담할 때 급식 문제를 이야기했다. 아이가 어지러워하는 게 영양 부족 때문 아닐까 생각이 들 지경이었으니까. 이 학교에서만 지난해에 급식 업체가 두 번 바뀐 것으로 안다. 재미 있는 건 업체는 바뀌는데 조리사는 그대로라는 점. 메뉴도 변화가 없다. 아 이건 해결 안 되는 거네.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거의 식사하지 않는다. 먹어야 한다면 샐러드만 먹고 메인디시는 거의 손 대지 않는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는 걸. 노력해봐야 안 되고.


어쩌면 영국 사람들은 먹는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걸까? 점심 때 직장인들도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으로 간단히 때우고 일을 하는 것 같기는 하다. 혹은 학교는 교육 기관이지 애들 끼니 챙겨 먹이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인가? 한국인들이 먹는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한 것일까? 끼니마다 밥에 국에 반찬에, 5첩 반상을 차려서 먹어야 제대로 먹은 것 같은 우리 문화 탓에 더 부당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그냥 적응해서 살 것인가? 아니면 불편한 자가 길을 찾아야 하나. 아예 학식 전문 캐이터링 업체를 만들 것인가? "마,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핵맹(혁명) 아닙니까!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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