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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백수 Sep 10. 2024

한국이 좋아? 영국이 좋아?

봄 가을 겨울은 서울, 여름은 런던?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도 아니고 이게 뭐냐 싶지만 오늘은 한영 비교. 두 나라의 장점만 써보려고 한다. 채 1년도 안 된 런던 뉴비의 철저한 주관적 평가니 감안하고 읽으시라. 반론이나 의견, 구독과 응원 모두 환영.


다 정리하고 보니 아이가 어릴 때는 한국에서 지내다가 교육은 영국에서 시키고, 아이가 대학생 되는 시점 쯤 되면 슬슬 영국 생활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은퇴하고 나면 한국에서 주로 지내면서 해외를 오가는 게 가장 좋을 것도 같다. 혹은 가을 겨울 봄은 한국에서 지내고 여름에만 런던에 와서 지내다가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딱 요맘때, 9월 초에 돌아가거나. 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지만.


한국이 좋다

늦은 밤이고 이른 새벽이고 어디든 비교적 싼 값에 먹을 만한 음식이 있다. 심지어 24시간 편의점에만 가도 준수한 도시락과 삼각김밥이 있다.


공공요금이 싸다. 전기 요금 가스 요금이 많이 올랐다지만 아직 싸다. 아 수도 요금도.


안전하다. 총기 사고는 경찰이나 군대에서나 나는 일이지 적어도 거리에서 걱정할 일은 없다. 카페 자리에 전화기와 노트북을 펴놓고 화장실에 가도 문제 없다. 오밤중에 거리를 걸어도 괜찮다. 잃어버린 물건이 곧잘 돌아온다.


봄과 가을이 아름답다. 벚꽃엔딩 시기, 그리고 단풍으로 물든 가을산의 아름다움은 자랑할 만하다. 물론 여름의 바다와 겨울철 스키장도 매력적이다.


관계 중심, 공동체 지향적이다.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폭발적이다(경제가 어려워진다 싶으니까 금모으기 운동 했던 거 봐). 물론 개인의 자유가 제약되고 지나치게 눈치보게 만드는 측면은 있다.


성취 지향적이다. 스스로를 끝까지 밀어붙이더라도 뭔가 성과를 내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성향이라면, 당신은 한국이 딱이다.


빨리빨리의 나라. 모든 게 빠르다. 총알배송 새벽배송이 일상이다. 인터넷 속도 최고. 버스에서도 최고 사양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재생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최고 수준의 의료마저 싸고 빠르다. 특히 어린 아이를 기르고 있거나 연로하신 어른을 모시는 경우는 더욱 느낄 거라 생각한다. 보건소를 통한 사회적 관리망도 더디게나마 나아지고 있고 응급 상황이 생겨도 곧장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서 최고 수준의 처치를 받기가 어렵지 않다. 최근 상황은 적잖이 걱정스러운데, 해법을 찾기를 바란다.


양질의 서비스. 한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일을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빠르고 정확하다. 소비자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처에도 큰 실수가 드물다.


불편하다고 문제 제기하면 시정되는 편이고, 적어도 책임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소비자 천국인 나라다.


음식이 맛있다. 바다에서 논밭에서 산에서 나는 다양한 제철 식재료를 기가 막히게 조리하는 능력을 지녔다. 특히 회 구이 찜 조림 건어물 해조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산물을 먹는다. 그 맛있는 음식을 새벽에도 배달해준다. 24시간 식당도 널렸다.


그 맛있는 음식이 싸다. 외식 물가는 물론 계속 오르고 있지만 영국과 비교하면 반값이나 될까 말까다.


안전하고 싸고 정확한 대중교통.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 같은 대중교통은 없다. 특히 서울지하철 만세. 정말 깨끗하게 관리되고 운행도 매우 안정적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심각하게 지연되거나 운행을 아예 멈추는 일이 없다. 


정이 많다. 특히 전통시장이나 지방도시에서, 주로 아주머니들이 내키면 막 퍼주신다. 밥집이든 술집이든 단골집이 생기면 좋다.


집이 따뜻하다. 한국의 온돌은 최고다. 툭하면 건물을 부숴버리고 새로 짓기 때문에 낡은 건물이 적어서 단열이 잘 되는 편이다. 2중창 3중창으로는 바람 한점 못 들어온다.


이제는 많이 없어졌다지만 목욕탕, 사우나, 찜질방이 있다. 뜨끈하게 지지고 나서 요구르트 한 줄 마시면 딱이다. 그립다. 런던은 9월부터 추워지기 시작한다. 9월 13일엔 아침 최저기온이 5도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깨끗한 길거리. 쓰레기 쌓인 거리 볼 일이 거의 없다. 청소노동자들이 새벽부터 얼마나 열심히 일 하시는지, 그리고 사람들은 쓰레기를 얼마나 잘 분류해서 정해진 대로만 버리는지. 감탄이 나오는 청결함이다. 


영국이 낫다

녹지가 많다. 하이드파크가 전부가 아니다. 곳곳에 공원과 가든이 있어서 다람쥐와 여우, 갖가지 새 등 야생 동물이 도심에도 흔하다.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밀려들기 때문에 늘 집이 부족한 런던인데 아파트나 좀 더 짓지 싶기도 하지만.


아름답다. 건축물들도, 하다못해 가로등마저 한껏 꾸몄다. 투박할 수밖에 없는 기차역마저 기둥 하나하나 장식적이다. 오래된 건물들의 외관을 유지하고 막무가내로 개발하지 못하도록 관리한다. 세계적 브랜드라도 건물의 외관을 해치는 간판을 달지 않는다(못한다?). 덕분에 열효율은 엉망진창이고 사는 게 다소 불편하지만.


걷기 좋다. 녹지가 많아서도 그렇고 인도가 훨씬 넓게 만들어져 있다. 인도에서 뛰어도 걷는 사람들과 부딪힐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수준이다. 횡단보도 근처에만 가도 차들이 다 멈춘다. 영국은 보행자 교통사고율이 굉장히 낮은 편이라고 들었다.


세계적 수준의 공연이 매일 무대에 오른다. 사우스뱅크센터, 바비컨센터, 위그모어홀, 카도간홀 등 이름난 공연장이 즐비하다. 웨스트엔드에는 마틸다, 백투더퓨처, 레미제라블, 라이온킹 같은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뮤지컬이 매일 상연된다. 로열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오페라와 발레 공연을 즐길 수 있다. 그밖에도 코벤트가든이나 도심 피카디리 서커스 거리에서도 퍼포머들이나 연주자들이 행인들의 시선을 붙든다.


무료 보편의 정신, 박물관들만 둘러봐도 좋다. 영국박물관, 테이트모던, V&A, 자연사박물관, 내셔널갤러리, 초상화갤러리, 월레스컬렉션, 교통박물관, 소머셋하우스, RA의 뮤지엄 등에는 거장의 작품이 아무렇지도 않게 걸려 있다.


물론 세계사를 이들의 언어로 기록하고 공부하는 덕택이기도 하겠으나 문학의 나라이기도 하다. 어디서나 책 읽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서점에 따로 매대를 만들어둘 정도로 영국의 자랑이고 필독서다. 버지니아 울프,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도, 가깝게는 JK롤링, 로알드 달도 있다. 런던 근교의 소도시인 바스에 여행을 갔더니 무료 워킹 투어를 안내하던 할배는 제인 오스틴 이야기를 한참 했다. 해리포터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또한 비틀즈의 나라이고, 최근 재결합을 공식화한 오아시스의 나라다. 축구는 거의 종교 수준이다. 그 안마당을 호령하는 손흥민 선수 멋짐!


맥주가 맛있다. 펍에서 여러 종류의 맥주를 즐기기만 해도 좋다. 안주는 안 시켜도 된다. 만취하지 않도록 조절할 수만 있다면. 또 스카치 위스키는 세계적인 상품이다. 


장바구니 물가는 싸다. 고기, 채소류, 1차가공만 한 식품들(우유 같은)은 한국과 비교해도 싸다. 레디메이드밀, 밀키트 같은 건 약간 비싸지지만 여전히 합리적이다. 다만, 마트에서 완전히 조리해서 파는 핫푸드는 싸다고 할 수는 없다. 인건비와 임대료를 계산에 넣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무엇보다, 개인이 중요하다. 자유가 최고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피부색도 머리카락 색깔도 눈동자 색깔도 각양각색이라 일일이 신경 쓰는 게 더 피곤하겠다. 난 런던에 와서 염색을 하지 않고 있다. 정말 편하다.

내가 어떤 브랜드 옷을 입든, 브라를 입든 말든, 타이즈를 입고 다니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내색은 안 한다. 거리에서 반소매 민소매와 패딩을 동시에 볼 수 있다. 각자 느끼는 온도가 다른데 뭐 어떤가. 더운 나라에서 온 사람은 추우니까 패딩 입었겠지. 조깅하고 더우니까 웃통 벗었나보지.


친절하다. 다음 사람 위해서 문을 잡아주는 건 너무 당연하다. 좁은 길에서 상대와 부딪힐 것만 같아도 일단 쏘리부터 하고 본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만나는 환한 웃음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몸에 밴 친절과 배려가 있다.


여름이 좋다, 짧아서 그렇지... 많이 덥지 않다. 최근엔 30도 넘는 날도 종종 있지만 그런 날도 습도가 높지 않아서 견딜 만하다. 에어컨 없는 집이 대부분이지만 크게 힘들지 않다. 나무 그늘에 앉아서 시원한 맥주 한잔 하면 그만이다.


병원비가 무료다. 일상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질환(당뇨나 고혈압 같은)이 있다면, 혹은 어떤 수술을 해야 한다 해도 영국에선 적어도 돈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제 때 병원에 갈 수만 있다면.


외국 여행이 쉽다. 자동차로 기차로 프랑스로 바로 넘어갈 수 있다. 저가 항공으로 유럽 곳곳으로 넘어가기 쉽다. 심지어 여권 체크도 제대로 안 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 온 게 맞나 싶을 지경이다.


여유 있다. 서두르는 법이 없다. 실수에 대해, 늦어지는 것에 대해 너그럽다. 답답해도, 비용을 치르더라도, 사람을 좀더 우선시한다고 느낀다.


아이들이 행복하다. 경쟁적이지 않고 각자의 성장을 중시하는 교육이라서 그렇다. 고등학생만 되도 각자 좋아하는 과목을 골라서 더 깊게 공부하고 그걸로 대학입시를 치르더라. 각자 장기를 개발해서 공동체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공부벌레보다는 참여형 인간을 더 높게 치는 것 같다. 개인의 장점을 발견해주고, 공동체 안에서 더 성장하도록 격려하는 방식이랄까. 일단 영국 교육에 적응한 아이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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