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 백수 Sep 21. 2024

혜자로운 멤버십의 세계

찬란한 런던 생활을 위한 소소한(?) 플렉스

마냥 고독해지지 않으려면 런던의 삶을 100배 즐겨야 한다. 즐기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다. 우리의 선택은 '멤버십의 세계'였다. 단기 체류자나 여행자라면 계산에 넣을 수 없는 카드겠으나 1년살기를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니 남는 장사다.


전시 보겠다고 비 맞으며 줄 설 필요가 없다. 전시를 보려고 예약도 안 해도 된다. 아무 때나 가서 카드만 제시하면 프리패스다. 각종 유료 특별전을 내킨다면 여러 번 봐도 된다. 무료니까. 일반 관람객은 예매조차 힘든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서 몇 번이고 볼 수 있으니 대이득이다. 식음료와 기념품은 할인도 해준다. 유명 아티스트의 공연을 일반인들이 예매사이트에 몰려들기 전에 선점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안 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영국박물관, 테이트, 내셔널 갤러리, 위그모어홀, 바비칸센터, V&A뮤지엄, 사이언스뮤지엄의 회원이다. 쓰고 보니 좀 과하다 싶기도 하고... 그렇다 우리 가족은 멤버십 중독자다. 문화 예술 공연 전시 올인. 백수 주제에 런던에 와서 캔싱턴에 둥지를 틀고 지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V&A 뮤지엄(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

우리 집 앞 피난처부터. V&A는 1851년 열린 만국박람회 성공을 기념하고 성과를 계승하기 위해 조성한 박물관이다. 순수미술과 장식 미술, 공간적으로는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망라한 폭넓은 컬렉션은 500만 점에 이른다.


월화수목토일요일은 오후 6시까지, 매주 금요일은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조촐하게나마 한국 관련 전시실도 마련되어 있다. 핵심 전시물을 설명하는 무료 투어, 박물관의 건축을 설명하는 무료 투어가 아마도 매일 제공된다. 물론 모두 영어로 진행한다.


회원이 되려면 연회비 87파운드를 내면 된다. 자동이체 등록하면 10파운드를 할인해준다. 당신은 26세 미만인가? 그렇다면 연회비는 60파운드, 자동이체 등록을 하면 50파운드다.


우리는 주로 부부가 함께 다니거나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으므로 '플러스 게스트' 옵션으로 가입했다. 연회비는 122파운드, 우린 자동이체 등록을 해서 112파운드, 대략 20만 원 냈다. 백수에겐 적지 않은 부담이지만 혜택이 더 크다.

https://www.vam.ac.uk/info/join-support#become-a-member

일단 모든 전시회에 무료 입장할 수 있다. 회원 본인 뿐 아니라 어린이는 4명까지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 박물관 자체가 무료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맞다. 하지만 그라운드 플로어의 대형 특별전시실에서 늘 유료 전시가 열린다. 최근에는 테일러 스위프트 관련 특별전이 청소년 관람객을 끌어들였고, 샤넬 전시회도 열기가 엄청났다.


대개 20파운드 안팎인 이런 유료 전시 입장료를 안 내도 된다. 특별전만 몇 번 가도 연회비는 뽑는 셈이다. 이런 특별전을 회원들을 대상으로 선공개하는 행사도 좋다.


박물관 매거진을 집으로 보내준다. 웰메이드다. 또 박물관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에 우선 예약권을 준다. 박물관 내 카페와 기념품 가게에서는 10% 할인도 제공한다.


특히 V&A의 자랑, 멤버스룸에 무제한 입장할 수 있다. 음식 맛 없기로 유명한 런던에서 보기 드문 훌륭한 식사와 음료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 천창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아름다운 공간에는 400석 넘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우리 가족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 중 한 곳이다.


영국박물관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박물관.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여행자, 그리고 영국과 유럽의 학생들로 항상 북적인다. 예약을 해도 장사진을 친 입장 대기줄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이 회원이라면? 프리 패스다. 곧바로 입구로 가면 스태프가 환하게 웃으며 환영할 것이다.

멤버십 혜택은 기본적으로 V&A와 같다. 유료 전시를 포함해 모든 전시에 무제한 입장, 멤버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 프로그램에 참여할 권리가 주어진다. 박물관 소식지도 집으로 보내주고(연 3회) 식음료와 기념품 할인폭도 10%로 같다. 자동이체 등록을 하면 10파운드씩 할인해주는 개념도 똑같다.


개인 회원 연회비는 74파운드, 같은 주소에 사는 가족 혹은 파트너에게도 멤버십 카드를 한 장 더 발급해주면 98파운드다. 그밖에도 멤버가 게스트 한 명을 동반할 수 있는 형태(104파운드), 멤버십 카드를 두 장 발급하고 게스트도 두 명 동반할 수 있는 형태(158파운드)도 있다.https://www.britishmuseum.org/membership


26세 미만에게는 연회비가 싸다. 개인 회원은 54파운드, 추가 카드를 발급 받아도 78파운드면 된다. 영국은 젊은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가르치고 싶은 유산이 많다.


영국박물관 역시 회원이면 자주 갈수록 이득이다. 지금 진행되는 실크로드 특별전만 해도 성인 1인 입장료가 22파운드다. 11월부터 대중에게 공개되는 피카소 판화 컬렉션 특별전은 성인 한 사람당 9파운드씩이다. 두 전시 모두 부부가 한 번씩만 봐도 62파운드.


우리 가족이 사랑하는 멤버스룸은 Sainsbury Exhibition Gallery 위에 있다. 주요 전시 공간에 빠르고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반대로 전시를 보다가 지치면 언제든 빠르게 올라가서 재충전할 수 있다. 카페에서 제공하는 음식도 준수하다. 무료 와이파이 신호도 빵빵하다. 복층 구조인데, 위층에는 공부를 하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큰 테이블도 배치해뒀다.

멤버스룸에서 2에이커 규모의 Great Court 공간을 내려다보는 전망은 웅장하다. 지나다니는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것만 해도 즐겁다. 또 창 밖으로 Norman Foster가 디자인한 지붕이 보인다. 엽서에 단골 사진으로 나오는 지붕 아래는 원래 야외 공간이었다고 한다. 2000년에 지붕을 얹어서 거대한 실내 공간이 열렸다. 그 공간에는 관람객들이 쉴 수 있도록 테이블과 벤치가 마련됐다. 거기서 쉬던 중년 여성 런더너는 지붕 없을 때 그곳 바닥은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되곤 했다며 웃었다.


테이트

설탕 사업으로 큰 돈을 번 헨리 테이트의 기부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1897년에 테이트 브리튼 개관으로 이어졌다. 테이트모던은 2000년에 발전소 건물을 개축해서 문을 연 근현대 작품 중심의 미술관이다. 런던의 3대 관광 명소 중 하나로 꼽힌다.


높이 35미터, 길이는 150미터가 넘는 거대한 터빈홀은 공간감을 준다. 발전소의 굴뚝도 그대로 남겨서 런던 스카이라인의 일부가 됐다. 테이트모던 방문자는 지금까지 4천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매년 1억 파운드, 1800억 원 이상의 경제 유발 효과가 있다고 하니 대단하다.

테이트모던 공식 홈페이지

개인회원은 연간 78파운드, 게스트 한 명을 데리고 갈 수 있는 형태는 120파운드다. 세 명까지 동반할 수 있고 카드도 한 장 더 주는 옵션은 연회비 162파운드다. 목돈을 내기가 부담스러우면 매달 회비를 낼 수도 있다. 더 싼 편은? 물론 연회비를 한꺼번에 내는 게 12파운드씩 싸다. 회원이 되면 테이트브리튼, 테이트모던, 리버풀과 세인트아이브스 미술관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https://shop.tate.org.uk/christmas-gift-membership

멤버스룸의 전망은 최고다. 흙빛 템즈강과 밀레니엄 브리지, 강 건너편의 세인트폴 대성당을 바라보며 애프터눈티를 즐길 수 있다.

공식 홍보 책자인 Tate Etc.를 보내주고 식음료와 기념품 할인 혜택도 물론 있다. 10% 디스카운트. 유료 전시도 무료로 볼 수 있다. 예매조차 필요 없다. 그냥 가서 멤버스 카드만 제시하면 된다. 칸딘스키 작품 등이 걸려 있는 익스프레셔니스트 전의 경우 입장료가 성인 1인 22파운드씩이다. 두 번 세 번 가자.


내셔널갤러리

1824년에 문을 연 영국 최대 미술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고흐, 렘브란트, 루벤스, 모네, 세잔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즐비하다. https://www.nationalgallery.org.uk/paintings/must-sees


올해로 개관 200주년을 맞아서 고흐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다. https://www.nationalgallery.org.uk/exhibitions/van-gogh-poets-and-lovers

9월 20일 현재 내셔널 갤러리 고흐 특별전은 10월 14일까지 매진이다

개인 멤버십은 연간 78파운드(자동이체시 68파운드). 게스트 한 명을 동반할 수 있는 옵션은 연 122파운드(자동이체는 112파운드)다. https://www.nationalgallery.org.uk/membership


가장 좋은 혜택은 프리뷰 초대. 일반 관객에게 공개하기 전에 회원들을 대상으로 선공개하는 행사다. 지금 진행되는 고흐 특별전에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고흐의 명작 진품들이 61점 모여들었다. 필라델피아와 런던에 각각 소장되어 있던 해바라기 두 점이 나란히 걸린 벽 앞에 관람객들이 오래 머물렀다.


고흐의 작품들을 붐비지 않는 환경에서 호젓하게 바라보는 기회는 귀하다.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박 이벤트랄까. 인파에 치이지 않고 작품에 빠져든다는 건 어쩌면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경험일 수도.


선공개 때 못 가더라도 상관 없다. 일반 관람객은 표 구하기도 어려운 지경이지만 회원은 멤버십 카드만 제시하면 프리패스다. 타임슬롯을 예약할 필요조차 없다. 고흐전은 평일 오전에 비교적 여유로울 때 두어 번 더 가볼 생각이다.


또 가방이나 두꺼운 외투를 맡아주는 서비스도 무료다. 겨울에도 몸도 마음도 편하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물론 식음료와 기념품숍 10% 할인 혜택은 기본이다.


다른 곳들의 멤버십은 또 따로 정리하자.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이전 09화 쥐잡이는 왜 오지 않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