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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백수 Sep 26. 2024

안락한 멤버십의 세계

멤버십의 세계는 안락하다. 초기 비용은 들지만 일단 회원이 되면 박물관이나 공연장에서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특히 아이가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느끼며 성장하길 바란다면 멤버십은 좋은 선택이라 확신한다. 단순 기술은 나중에 배워도 된다. 일단 눈을 높여라. 어딘가에 스며든 취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싼 건 못 사주지만 좋은 것들을 함께 보자. 아빠의 (아마도) 한시적 백수 기간,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 쌓자.


인류 모두의 성취인 문화 예술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 빛나는 성취를 대부분 무료로 공유하는 영국에 대한 존중을 담아 기부하겠다는 마음으로 가입한다면 더 좋겠다.


사이언스뮤지엄 원더랩

역시 집 앞 시설부터 살펴보자. 1851년* 박람회가 대성공하면서 벌어들인 돈으로 1857년 캔싱턴에는 사우스캔싱턴박물관이 건설되었다. 예술품과 과학 관련 전시물이 함께 전시되다가 전문 전시 공간을 예술 따로 과학기술 따로 마련하고, 공식적으로 과학박물관이라는 명칭을 쓴 게 1909년부터라고 한다. 


지금도 이곳 길 이름이 아예 엑시비션로드다. 과학박물관, 자연사박물관, V&A 박물관이 모여 있다. 이 길을 걸을 때마다 부럽다. 이 좋은 것들은 늘 무료로 누리는 런더너들은 소중함을 알기는 할까. 아름다움도 질려서 그저 그러려니 할까.


무료라고 얕잡아보면 안 된다. 과학박물관에 들어가면 산업혁명을 선도한 나라답게 일찍부터 발달한 증기기관, 초대형 기계들, 우주 발사체와 탐사 차량, 우주인들이 쓰는 물건, 심지어 의학과 약학 관련 전시까지 거를 게 없다. 입이 떡 벌어진다.

이미지 출처 flickr

그래도 무료 박물관에 왜 굳이 돈을 내고 회원 가입까지 했느냐. 유료 전시를 충분히 누리기 위해서다. 원더랩이라는 시설이 박물관 내에 따로 마련되어 있다. 전시물을 단순 관람하는 다른 방과 같은 시스템이 아니다. 직접 실험을 하고 기기를 조작해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스태프가 각종 원소들의 성질을 설명하며 불쇼 비슷한 장면을 연출해주기도 한다. 어른이 봐도 재미있다.


원더랩 하루 입장권은 15파운드. 연간회원권은 24파운드다. 가족 회원권으로 하면  그나마도 연회비가 4파운드 할인된다. 그냥 하는 게 이득이다. https://www.sciencemuseum.org.uk/see-and-do/wonderlab


과학박물관은 무료지만 입장 시간은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원더랩도 마찬가지. 원더랩에 들어가려면 박물관 입장+원더랩 입장 두 개 따로 예약을 해야 한다.


위그모어홀

1901년에 문을 연 콘서트홀. 독일 피아노 회사의 의뢰를 받은 영국 건축가가 설계했다. 당시에는 피아노 전시장도 바로 옆에 있었다고 한다. 피아노 회사가 마음먹고 지은 만큼 이 공연장은 특히 음향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막귀인 내가 들어봐도 확실히 다르다. 음향이 엉망인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조성진 님의 연주를 들을 때는 참 마음이 아팠는데... 위그모어홀에서 들을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2024년 9월 25일 커튼콜. O/Modernt Chamber Orchestra는 익숙한 곡들을 멋지게 재해석해냈다. 앙코르 곡 비틀즈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까지 완벽했다

멤버십 명칭은 '위그모어홀의 친구들'이다. 4단계가 있다. 멤버, 서포터, 베네펙터, 파트론. (https://www.wigmore-hall.org.uk/support-us/memberships)


멤버는 연회비 60파운드면 가입할 수 있다. 자동이체 등록을 하면 한 달을 추가로 줘서 13개월간 회원 자격을 누린다. 멤버만 되도 연주회 우선 예매 권리가 생긴다. 이미 내년 봄 시즌(1월~3월) 예매가 열려 있다. 2월 6일에는 미샤 마이스키의 첼로, 3월 17일과 19일엔 리차드 용재 오닐이 참여하는 타카치 콰르텟 연주가 예정돼 있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정말 훌륭한 연주자들이 줄을 서 있다. 매일 가고 싶은 지경이다.


연간 600파운드를 내는 후원자가 되면 웹사이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후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 행사에 초청된다. 공개 리허설에 1년에 두 번 초대 받는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다. 기왕이면 이걸 하고 싶다...


바비칸 센터

센트럴 런던에 있는 대규모 공연 예술 복합 센터. 1982년에 문을 열었으니까 40년 조금 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규모 공습으로 거의 완전히 파괴된 지역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런던시의회 자금으로 대규모 문화 시설을 지었다. 극장과 갤러리, 콘서트홀, 영화관, 대형 온실, 도서관, 음식점과 바가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다.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가 상주한다. 명성에 비해 콘서트홀의 음향은 다소 아쉽다는 평가가 있다.

이미지 출처 flickr

건축 양식이 독특하고 대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까이서 벽과 기둥을 보면 울퉁불퉁하게 마감 되어 있다. 노동자들이 일일이 쪼아내는 방식으로 질감을 만들었는데 워낙 많은 건설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호소해서 이후에는 이런 방식은 금지되었다고도 한다. 기념품숍에서는 '브루탈리즘' 관련 기념품도 판매하고 있다.


바비칸 센터 바로 옆에는 학교들이 있다. City of London Shhool for Girls, 한국어로는 런던시립여자중고등학교 쯤 될까. 세계적인 공연 음악 전문 학교인 The Guildhall School of Music and Drama도 있다.


집도 있는데 매우 독특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음악도서관에서는 음반을 대출할 수 있고, 누구나 연습할 수 있는 피아노도 두 대 마련되어 있다. 어린이도서관에서는 수시로 행사가 열린다. 남녀노소 불문, 인종과 국적, 언어나 정체성과 무관하게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엄청난 복합 시설이다.

 

멤버십은 일반 회원과 플러스 회원, 두 가지가 있다. https://www.barbican.org.uk/join-support/membership#benefits 일반 회원은 연회비 59파운드, 플러스 회원은 114파운드다. 회원이 되면 우선 예매 권리가 주어지고 모든 전시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물론 멤버스 라운지도 이용할 수 있다. 라운지에는 친구를 데려갈 수도 있다.

멤버들만을 위한 행사도 종종 열린다

공연을 예매할 때는 무려 20%씩 할인을 해 준다. 일반 관객은 예매할 때 수수료 4파운드를 따로 내는데 회원은 면제다. 할인폭이 꽤 크기 때문에 공연을 많이 보는 경우 무조건 남는 장사가 된다. 우리는 회원 가입 하는 날 공연 몇 개를 함께 예매했는데 그날 할인받은 금액만 25파운드 가량 됐다. 인기 공연 표를 쉽게 미리 구하면서 싸게 살 수 있으니 공연을 자주 볼 거라면 회원 가입 하는 게 득이다.



*내가 흥미로워하는 포인트 중 하나는 서양의 어떤 사건이 있었던 시점에 한반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찾아보는 일이다. 1850년대 한반도는 조선 시대. 철종이 왕이었다. 우리역사넷(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n312200&code=kc_age_30)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제목이 '세도정치의 꼭두각시가 된 강화도령'이다.

"1851년(철종 2)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마치자 철종이 친히 정무를 보면서, 철종은 효를 바탕으로 하여 순조와 순원왕후, 헌종과 익종(翼宗) (효명세자), 사도세자(思悼世子)와 영조(英祖)에 대한 존숭을 강화해 나간다. 1857년(철종 8) 순원왕후가 승하하자 철종은 지극히 슬퍼하며 친히 순원왕후의 애책·행록을 지었고, 발인할 때 대여를 직접 수행하겠다고 까지 하였다. 신료들의 강력한 반대로 시행되지는 못하였으나 철종은 시신을 묘소에 모시는 하현궁(下玄宮)에 친림하겠다는 뜻을 관철하여 결국 산릉에 나가 직접 참여하였다.

철종은 순원왕후가 강화도에서 어렵게 살고 있던 자신에게 왕업을 이어주고, 수렴청정을 하여 자신을 도와 왕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하면서, 자신을 아들로서 보살펴 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효를 다하려 하였는데 돌아가셨다면서 슬퍼하였다. 결국 철종은 자신을 왕으로 삼아준 순원왕후에 대한 보은을 효를 통해 다하려고 했던 것이다."


1909년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 즉위 3년째 되는 해였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게 10월 26일이다. 한편에선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 일진회가 한일합방을 요구하는 등 대한제국 말기의 살풍경이 이어지던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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