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아닌 다른 행성 같다고도 한다. 황량하고 넓고 생명의 흔적이 드문드문하다. 인간들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의 광막한 아름다움. 인간세 이전의 지구가 어땠는지 궁금하다면 가야 한다. 장모님을 모시고 하는 유럽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 아이슬란드로 간다.
7월 25일 오후. 케플라비크 공항에 네 식구가 내렸다. 그날 공항 근처 기온은 15도쯤 되었던가. 비가 오락가락 했다. 40대 부부와 10살 딸, 그리고 60대 외할머니. 7월 6일에 시작한 유럽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다. 일단 짐을 챙기자. 여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짐이 늘어난다. 신기한 일이다. 대형 가방이 두 개, 중형 가방 2개, 각자 백팩 하나씩. 거기에 기내 가방이 하나 더 있는데...실종?
허둥지둥의 연속. 비행기에 다시 가봤지만 선반에는 없었다. 승무원에게 물으니 일단 수하물 찾는 곳으로 가면 직원이 있을 거라고 했다. "누군가 실수로 가져갔다가 돌려준 짐이 모이는 공간이 있어. 찾아봐." 가보니 엄청나게 많은 가방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세 바퀴를 돌아봤으나, 없다.
아 어느 순간 누군가 우리 가방을 돌려준 모양이다. 위층 출국장 카운터로 가라고 한다. 노년에 가까워보이는 항공사 직원은 웃으며 설명한다. "다행히 니 가방이 나타났어. 비행기 청소와 정비, 다음 승객들 수속까지 모두 마친 뒤에야 돌려줄 수 있을 것 같아. 여기 앞에 의자들 많으니까 좀 앉아서 쉬고 있어."
비행기가 내린 뒤 두 시간이 지나서야 가방을 받았다. "정말 고마워. 당신이 나를 살렸어." 들어보일 엄지가 다섯 개쯤 더 있으면 좋겠다.
힘들다. 일단 숙소로 가야겠다. 자동차로 50분 거리. 밀라노 공항에서 숙소까지 택시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던 경험이 있는지라 택시 타기는 꺼려졌다. 한 사람에 27유로씩 하는 버스가 있기는 있는데 이 짐을 다 끌고 다닐 수는 없다. 일행 중에는 다리가 불편한 어른과 10살 여자 아이까지 있다. 아이슬란드 여행은 어차피 차가 있어야 할 것 같으니 차라리 차를 빌려서 편하게 가자.
렌터카 업체 부스 몇 곳에서 견적을 받아보고 europcar로 결정했다. 빌린 차는 기아 CEED라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 5만 킬로미터 가량 주행한 차로, 나쁘지 않았다. 하이브리드니까 연비도 좋겠지. 반납 예정일은 런던으로 돌아가는 28일. 카운터 직원이 15% 할인을 적용해주겠다고 했다. 보험료 포함 79,566크로나를 결재했다. 영국 돈으로 448파운드 정도다. 미리 렌트를 했으면 300파운드면 충분했을까? 이제 와 후회해봐야 소용 없다.
차를 빌리고 숙소로 가는 길, 무지개가 떴다. 마음이 부풀어오른다. 액땜을 세게 했으니 이번 여행은 분명 아름다울 거야.
비앤비는 베이스먼트, 한국식으로는 지층이다. 지상인데 지하 같은 느낌. 아니 지하인데 지상 같은 쾌적함이라고 하자. 엘리베이터? 물론 없다. 다시 낑낑대며 짐을 내린다. 그런데 숙소에 들어가니까 웬 냄새가 이리 나는지. 분명 하수구 냄새 같다. 난감.
우린 바닥 깔개로 하수구를 덮었다가, 소독을 한다고 물을 끓여서 내렸다가 한동안 법석을 떨었다. 비앤비 주인은 은퇴한 파일럿이라는 할아버지. 꽤 괜찮은 분 같았는데 이런 집을 빌려주다니? 숙박비도 3박에 500달러니까 적지도 않구먼.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음. 이건 온천에서 나는 냄새다. 아이슬란드는 지금도 화산 활동이 활발하다. 난방도 발전도 지열 의존이 상당하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수도꼭지에서는 펄펄 끓는 온수가 콸콸 나왔다. 그래 이건 이상한 게 아니라 좋은, 적어도 자연스러운 냄새다. 하지만 적응은 잘 되지 않는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여전히 반가운 냄새는 아니다.
다음날 아침, 우리 여정의 테마는 폭포와 빙하다. 아이슬란드 해안을 도는 이른바 '링로드', 1번 도로를 타는 일정이다. 화산 빙하에서 녹은 물이 해안 절벽으로 떨어지면서 곳곳에 폭포가 장관을 이룬다.
첫 행선지는 셀야란즈포스(셀랴란드? 셀에란즈? 표기가 워낙 다양하다. 여기선 구글맵에 제시된 표기를 썼다). 폭포가 셀 수 없이 많은 아이슬란드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아름다운 곳이다. https://maps.app.goo.gl/YG3ftxc6GXtJ81Ec9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따라가는 1번 도로 바로 옆에 있다. 폭포 앞 주차장은 유료다. 컨택리스 카드로도 결제할 수 있었다. 탐방로를 따라 조금만 걸어들어가면 폭포가 보인다. 와! 탄성이 절로 나온다. 폭포 정상부터 바닥까지는 60미터가 넘는다. 폭포 가까이 접근하면 물따귀를 맞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폭포의 백미는 폭포수 너머 안쪽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다는 점. 다리가 불편한 60대도 접근이 어렵지 않았다. 다양한 각도에서 폭포를 보고, 물보라를 맞고 물줄기에 젖고, 손을 물에 담글 수 있다. 한참을 머물렀다. 방수 되는 옷과 카메라 커버를 갖춰서 들어가는 편이 안전하다.
갈 길이 멀다. 다음 장소는 스코가 폭포. https://maps.app.goo.gl/A7YSQC5uQEcBKuD8A
역시 해안에 있는 폭포로 60미터 높이에서 시원하게 떨어져내리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스코가 폭포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위에서 폭포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린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폭포 주변만 둘러보고 돌아 나왔다.
우리가 갔을 때는 진입로 공사를 하느라 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주차비는 받지 않았다.
폭포의 폭이 셀야란즈보다 넓어서 그런지 물보라가 말도 못하게 거셌다. 가까이 접근하지도 않았는데 홀딱 젖을 정도였다. 덕분에 한여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시원함을 맛 봤다.
인근에는 게스트하우스와 호텔, 음식점은 물론 캠핑장도 마련되어 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하루이틀 묵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도를 보면 전망대 뒤쪽으로는 트레일이 죽 연결되어 있다. 화산지대를 보며 걷다가 어느 온천에서 몸을 풀고 하는 날이 있을까?
1번 도로를 타고 죽 달리다가 우리는 돌연 해안의 절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자꾸 이러면 지체될 수밖에 없지만 방법이 없다. 마음 가는 대로 헤매는 맛도 괜찮다. 218번 도로로 빠져서 디르홀레이로 들어선다.
https://maps.app.goo.gl/ZpqGLPZnxwmd7t5V7
동굴과 기암괴석이 점점이 있는 해안은 막막하게 아름다웠다. 해안에는 흘러내린 용암이 바닷물에 닿으면서 빠르게 식을 때 나타나는 주상절리도 볼 수 있다. 지질학에 관심 많은 분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울 스팟이다. 특히 시커먼 모래에 부서지는 흰 파도는 아무리 오래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았다. 매번 다른 그림, 수묵화를 그려내는 자연.
다시 1번 도로로 올라서서 동쪽으로 달려 비크로 간다. 마음 같아선 여기서 하룻밤을 묵고 싶었다. 이미 운전 3시간이 넘었다. 하지만 오늘 우린 빙하를 봐야 한다. 화산지대의 검은 모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블랙크러스트피자는 기대보다 훨씬 훌륭했다. 빙하 투어 상품도 이 집에서 예약할 수 있다. https://maps.app.goo.gl/5P1hBaRG9SUWTunh8
좋은 휴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