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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백수 Sep 30. 2024

아이 앞에서 눈물이 났다

"내가 아빠 눈물을 다 보네?" 짐짓 쾌활하게 휴지를 꺼내주던 아이는 아빠 눈에 인공눈물을 넣어줬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잠든 아이의 얼굴을 가만가만 쓸어본다. 주로 엄마를 닮고 나는 조금만 닮아서 다행이다. 혼자 샤워를 하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바르고 잠옷을 입고 야무지게 패딩조끼까지 껴입고, 아기 시절부터 끼고 산 곰돌이 인형을 안고 자는 아이. 친구네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생일파티에 초대 받았다가 오는 길에 가져온 강아지 침대에서 자는 내 강아지. 몸은 자랐으되 마음은 더디 큰다. 오늘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런던으로 건너온지 만 9개월이 지났다. 한국에서의 삶에 월급 말고는 어떤 미련도 없는 상태로 넘어왔다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고향집에서 외롭게 늙어가는 부모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마음이 아린다.


아버지는 퇴원했다가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셨다. 3주 입원 뒤 퇴원이라 많이 기다리셨던지라 실망이 크다고 했다. 


젊은 시절 교통사고로 무릎 연골이 사라진 상태로 평생 농사 지은 분이다. 오른 무릎은 인공관절삽입술을 받았지만 왼 다리는 아픈 그대로다. 그나마 건강하던 시절에는 자전거를 타고 산에 오르며 관리한 덕분에, 또 고된 노동 덕분에 근육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점점 누워 있는 날이 길어지면서 근육이 줄었고, 결국 탈이 났다. 왼쪽 다리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걸으실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단다.


88세. 무릎 만이 아니라 이제 모든 장기가 돌아가며 비명을 지르는 연세다.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을 돕는 심장 박동기 삽입술을 받으셨다. 서서히 폐 기능이 떨어지는 만성 폐쇄성 폐 질환을 앓고 계시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소식이 들릴 때마다, 또 환절기마다 마음을 졸인다. 밭은 기침은 오래된 고약한 친구다.


중증 당뇨를 오래 앓아 왔으니 피부 가려움증으로 신장 기능 저하로 온갖 합병이 나타난다. 주사제와 먹는 약을 적절하게 칵테일하고, 식이 조절을 제대로 하는 병원 입원 기간에는 혈당이 잡히지만 퇴원하면 도루묵이다. 식이 조절이 전혀 되지 않는 탓이다. 평생을 몸에 익은 대로 식재료를 골라서 다루고, 차려 내고, 드시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자식이 곁에서 하나하나 챙기거나 전문 인력이 붙으면 모를까. 


입맛이 없다며 식사를 거의 못 하시는 상태다. 밥은커녕 죽조차도 좀체 넘기질 못한다. 견과류와 달걀을 꼬박꼬박 챙겨드시고 단백질 음료도 곧잘 드시더니 이젠 다 소용 없다. 통증으로 밤에는 편하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낮에는 종일 꾸벅꾸벅 졸게 된다. 


내 천성이 비관적인 탓만은 아닐 것이다. 끝이 다가온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모든 신호가 좋지 않다. 


설명하자면 긴 여러 복잡한 계기로 오늘은 슬로언스퀘어에 있는 영국성공회 성당 예배를 지켜봤다. https://maps.app.goo.gl/xTqHWJ5XCUWemjTP9 종교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지라 내내 별 느낌이 없었다. 심지어 영어로 진행되는지라 감흥이 있기가 더 여러웠다. 결국 참지 못하고 중간에 도망 나와서 20분 정도 주변을 걸었을 지경이다. 성당 바로 옆에는 익숙한 카도간 홀이 있어서 반가웠다. 미사가 끝나고 나니 이 교회는 티타임을 가졌다. 지극히 영국 식으로, 차와 커피를 한 잔씩 나눠 들었다. 쿠키는 세 종류가 있었던가.

이 성당의 백미는 동쪽 창을 장식한 스테인드 글라스다. 종교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예술적 가치가 크다.

하여튼 다 별 흥미가 없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주교의 지팡이였다. 올해 87세라는, 공교롭게도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인 마이클 주교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진료를 받았고 10월 8일에 인공관절치환술을 받을 거라 했다. 그 나이에 수술을 해도 괜찮겠다는 판단을 받은 게 기적이라고도 했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 생각이 났다. 마이클 주교처럼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늙고 병든 몸으로 고향 동네 병원의 허술한 입원실에 누워 계신 아버지.


아내가 위그모어홀에 피아노 리사이틀을 보러 간 사이, 아이와 저녁을 먹었다. 돼지 갈비에 바비큐 소스를 발라 오븐에 구운 걸 하나하나 발라주던 중이었다. 맥락은 모르겠다. 아무튼 할아버지 얘기가 나왔고 어느 순간 내 목소리가 떨렸다. 와인 두 잔에 내가 취했던가.


아빠의 눈물을 본 아이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끝이 있다"는 말이 아이에게 어떻게 닿았을까. 이러나 저러나 유한한 삶. 아이가 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랄 뿐이다. 아버지도 덜 외롭고 덜 고통 받으시기를.


귀국은 1월 중순이다. 서울의 회사 생활에는 어떤 기대도 미련도 없다. 다만, 고향에 가야겠다. 아버지가 잘 버텨주시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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