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야란즈포스와 스코가포스로 폭포는 충분하다. 디르홀레이에 잠시 멈춰서 검은모래 해변과 해안의 절경도 봤다. 비크에서 먹은 블랙크러스트피자는 예상 외로 아주 맛있었다. https://brunch.co.kr/@ea77230899864d4/37 여기까지도 엄청난 풍경이지만 어찌 보면 제주도의 확장판, 업그레이드판 같기도 했다. 자,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 빙하를 보러 가자.
비크를 출발해서 1번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두 시간쯤 달리면 왼쪽으로 산등성이를 뒤덮은 거대한 빙하가 나타난다. 레이캬비크에서 출발하면 장장 편도 400km 정도 되는 길이다. 검색해보면 아이슬란드관광청에서는 최소 이틀 정도는 투자해서 이 구간을 여행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둘러볼 게 워낙 많아서. 하지만 우린 일정을 길게 잡을 수 없으니 하루에 뽀갠다.
바트나이외쿠틀국립공원. 바트나요쿨과 요쿨살론을 포함한 주변 지역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크반나달스흐누퀴르 산에서 빙하가 여러 방향으로 흘러내리는데 방향에 따라 여러 이름들이 있다. 스비나펠스 빙하, 미르달스 빙하를 지나면 왼쪽으로 요쿨살론이 나타난다.
주차장은 유료다. 간단히 컨택트리스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요쿨살론에서 결제하면 1번도로 바로 건너편인 다이아몬드비치 주차장에도 세울 수 있다. 주차장 입구에 차단봉은 없었던 것 같지만 대신 카메라가 설치되어서 아마 드나드는 차량을 모두 기록하는 것 같다. 주차요금을 혹시 정산 안/못 하고 튀어도 나중에 청구되지 않을까?
차창을 내리면 거대한 얼음덩어리인 빙하에서 흘러나온 냉기가 훅 끼친다. 우리가 갔을 때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눈이 내려야 마땅한 곳에 비가 내리다니... 이러니 빙하가 남아나겠나 싶다.
요쿨은 빙하, 살론은 호수를 뜻한다. 바트나 빙하가 녹은 물이 고이는 호수, 빙하호가 요쿨살론이다. 빙하가 녹으면서 빙하의 끝은 점점 산 정상 쪽으로 물러나고 있다. 당연히 빙하호는 점점 자란다. 실제로 이 호수는 1930년대 들어 처음 생겼는데, 1970년대 이후로 이미 4배 넘게 커졌다고 한다. 앞으로는 더 빠른 속도로 몸집이 불겠지. 1930년대 이전에는 빙하가 바다로 직접 흘러드는 장관이 펼쳐졌겠다.
빙산 사이사이 물개가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도 쉽게 눈에 띈다. 호숫가에서는 얼음조각이 발에 채인다. 거대한 빙산 사이를 헤치고 수륙양용선박/차량이 관광객들을 태우고 운항한다. 이 지역 경제를 위해 관광 자체를 포기하랄 수야 없겠으나 저게 환경친화적일까 싶다.
망연히 빙산을 바라보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흐른다. 천 년 넘는 시간을 쌓여 있던 얼음이 급속도로 녹고 있다. 떨어져나온 얼음들은 호수를 천천히 떠다니면서 녹다가 바다로 흘러든다. 북대서양의 거친 파도에 떠밀린 얼음조각들은 검은 모래 해변인 브레이다메르퀴르산뒤르로 올라앉는다.
햇볕에 반짝이는 얼음 조각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해변의 별명이 다이아몬드비치다. 아내와 장모님은 위로 활짝 연 차 트렁크에 앉아서 쉬며 경관을 즐기고 딸과 나는 모래밭으로 걸어내려간다. 석양 무렵에 그렇게 예쁘다는데, 당일치기 초치기 중인 우리는 차분히 있을 틈이 없다. 물론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석양 따위는 없는 날이기도 하다.
빙산과 빙하호, 얼음조각은 충분하다. 우린 아직 배고프다. 빙하를 보러 가자. 1번도로를 타고 비크 방향으로 되짚어가다가 빙하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차량이 오프로드용이 아니어서 무리할 수는 없다. 게다가 온 가족을 태우고는 절대 안 될 일이다. 프잘스 빙하는 빙하 위로 올라설 수는 없어도 요쿨살론보다는 호수 너머로 건너다보는 거리가 짧은 느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적하다. https://guidetoiceland.is/travel-iceland/drive/fjallsjokull
빙하의 끝부분이 좀더 가깝게 보인다. 사진 왼쪽 산등성이에 선명한 하트가 자꾸 눈에 걸렸다. 누가 일부러 그려뒀다 해도 믿길 하트. 그저 얼음이 녹다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겠으나 뭔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낮이 매우 긴 아이슬란드의 여름이어서 가능한 일정이었다. 이 사진을 찍은 시간은 저녁 7시가 다 된 때였다. 400킬로미터를 다시 달려서 숙소로 가야 한다. 하이브리드여서 연비가 좋겠거니 했으나 생각보다 기름도 꽤 닳았다. 중간에 주유소를 찾는 것도 일이었다. 아이슬란드 렌터카 여행을 한다면 중간에 주유소가 보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기름을 채우시길 권한다. 우리 가족처럼 고생하지 않으려면.
가족들은 모두 지쳐 잠들었고, 나는 홀로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숙소로 돌아간다. 진한 유황(?)냄새가 기다리는 숙소로.
10살 아이가 내 나이가 될 때쯤 아이슬란드 풍경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남극의 거대 빙붕이 녹아 사라지는 판국이라는데. 올해 한국의 여름 더위도 참 지독했다는데. 우리 앞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빙산의 그 푸른빛이, 산등성이에 선명하던 하트가, 여전히, 눈에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