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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백수 Aug 20. 2024

이 와중에도 아름답구나, 조성진

자발적 한시적 백수의 런던 표류기, 번외편

일단, 긴급 속보. 조성진 님의 에든버러 페스티벌 연주가 한 차례 추가되었다. 당초 19일 오전만 연주하는 일정이었지만 20일 저녁 공연 연주자가 사정상 불참하는 빈자리를 조성진 님이 메우기로 한 모양이다. 영국 시간으로 19일 오후까지는 표가 남았는데 아직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관심 있는 분들은 뒤져보시길. 

https://www.eif.co.uk/book/instance/168201


저녁 8시

Usher Hall

Julia Schröder Director

Seong-Jin Cho Piano

Fanny Mendelssohn Hensel Overture in C
Beethoven Piano Concerto No 4
Emilie Mayer Symphony in F minor


단돈 75파운드로 세 명이 귀호강

조성진 님 연주를 듣기 위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다녀오는 길이다. 9일 런던 로열알버트홀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9 번 E ♭ 장조 연주를 들은 뒤 열흘만에 다시 듣는 연주였다. 런던에 온 보람 중 최고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좋은 공연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을 꼽겠다. 오늘도 그랬다.


관람료는 세 식구가 단돈 75파운드를 냈다. 서울에서라면 비용은 둘째 치고 어디 표를 구할 수나 있는가 말이다. 어제 런던에서 열차를 타고 에든버러로 와서 호텔에서 하루를 묵으며 에든버러를 둘러봤고 지금 다시 열차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이 정도 비용으로, 이 정도 시간과 체력만 들이고도 아름다운 연주에 감동한 하루. 무직 백수라도 좋지 아니한가.


조성진 만의 감성으로 매혹하다

오늘 프로그램은 라벨의 세 곡을 연달아 연주한 뒤 휴식 시간을 갖고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로 이어졌다. 연주 시작 직전에야 겨우 도착해서 헐레벌떡 자리에 앉은 탓에 인터벌 전까지는 음악이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뒤 들은 순례의 해는 때로 강렬한 격정을 불러일으키고 때로 부드럽게 매혹했다.


조성진이 부드럽게 드리웠던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저음 건반을 강하게 칠 때는 피아노 소리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객석 구석구석, 청중들의 마음의 바닥에까지 굵은 물결이 일었다. 곧 다시 부드럽게 건반을 어르만지며 속삭이는 순간에는 조성진 만의 감성으로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 빠른 부분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빠르고 정확하면서도 부드럽게 타건을 하는지. 아내는 "오늘은 2층 객석에 앉아서 조성진 님의 손가락을 봐야 했는데"라고 했다.


리스트의 감각과 인상을 고스란히 재연한 연주

리스트는 이 작품 서문에 "최근에 많은 새로운 나라를 여행하면서 자연 현상과 그에 따른 광경이 내 영혼에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면서 "내 가장 강렬한 감각과 가장 생생한 인상 중 일부를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취지를 적어뒀다고 한다. 


라파엘로의 그림 '성모마리아의 결혼'을 보고,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보고, 단테를 읽고 리스트의 감성이 격발된 결과물들을 조성진은 재해석해 오늘의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단테를 읽고 작곡했다는 지옥의 비명과 천국의 아름다운 정경을 오가는 것 같은 리스트의 감성이 놀라웠다. 동시에 이런 섬세한 감각과 날카로운 이성을 우리 귓가에 들려주는 데 조성진만큼 맞춤한 연주자가 있을 수 있을까?


교회였던 공연장, 퀸즈홀

오늘 공연장은 에든버러 퀸즈홀인데 딱 교회처럼 생긴 실내에, 딱 교회 의자 같은 벤치가 객석으로 깔려 있다. 아니나 다를까 1824년에 호프파크교회로 건축되었으니까 꼭 200년 된 옛 교회다. 


이름이 두 차례 바뀌며 1976년까지는 교회로 계속 이용되었다. 그러다 한동안 방치되었는지 공연장으로 개축되어 새로 문을 연 것은 1979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최대 관객 900명까지 수용하는 공연장으로 활용된다. 에든버러페스티벌은 이 도시 안에 있는 수백 개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공연이 무대에 오르는데 이 공간은 72번 공연장으로 지정되어 있다.


공연장 내부는 지금도 딱 교회 모습 그대로다. 전문 공연장에 가면 볼 수 있는 천장과 벽면의 음향을 반사하고 잡음은 흡수해주는 설비는 없고 그냥 오래된 교회 건물의 빈 공간 그대로라고 보면 된다. 객석도 신도석을 거의 그대로 둔 것 같고 바닥은 낡은 나무 바닥이다. 


주변의 소음과 진동이 거의 걸러지지 않고 주변으로 모두 퍼져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의 무대, 엄청난 조명과 음향 시설, 최대 5300명 가까이 수용하는 전문 공연장 로열알버트홀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극과 극이다. 전문 연주자 입장에서 이런 공연장에서 연주한다는 건 큰 도전일 것 같았다. 에든버러페스티벌이라는 후광효과를 빼고 세계적 수준의 전문 연주자들에게 이 공간을 보여주면 과연 흔쾌히 연주하겠다고 할까?


소음 또 소음...아쉬웠던 객석

그래도 이 공간은 에든버러페스티벌의 주요 공연장 중 하나로 쓰여 왔다. 조성진도 이 무대가 처음이 아닐 터, 적응이 되어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첫 경험이었던 나는 기함했다.


객석에서는 소음이 끊이지 않았다. 기침 소리야 뭐 그렇다 치자. 어쩌겠는가 나오는 기침을. 하지만 쉴새없이 곳곳에서 물건이 떨어지고 누군가 발을 구르는지 앞 의자를 차는지 한동안 퉁퉁퉁거렸고, 급기야 연주 중간에 일어서서 나가려는 청중 한 명에게 옆사람이 큰 소리로 항의하는 소동까지 있었다.


제목을 저렇게 쓴 이유다. 이 와중에도 조성진은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 소음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끝내 아름다웠다.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훨씬 많은 것 같았던 객석에서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조성진은 커튼콜을 세 번 했던가.


무대 위든 거리에서든, 돈이 많든 적든 누구나 다양하게 예술을,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페스티벌이라는 게 본래 가지는 정신이 그렇다고 난 생각한다. 심지어 본행사 말고도 프린지페스티벌이 더 활발한 에딘버러에서는 더더욱 그래야 한다. 부자와 높은 사람들이 잘 차려입고 점잔을 빼며 샴페인을 들고 저들끼리 네트워킹을 하는 게 일상적인 공연장의 모습이더라도. 

축제를 축제 답게 해준 조성진 님. 고마웠어요.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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