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로망
우리 집 티비는 대략 80인치 정도 되는 것 같다. 친구들이 놀러 올 때마다 우리 집 티비의 크기에 감탄하곤 한다. 이렇게 티비가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아빠의 로망 때문이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로망인지는 몰라도 우리 아빠는 큰 화면으로 보는 티비를 원했고 사촌의 집에 큰 화면의 티비가 들여진 것을 보고는 매우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티비를 바꿔버렸고 그렇게 우리 집 티비는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큰 티비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로망이 우리 집에서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많이들 영화관처럼 큰 화면으로 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르다. 나는 작은 화면으로 보는 게 더 좋다. 핸드폰은 너무 작고 아이패드나 노트북 정도의 크기가 딱 적당하다. 지금 쓰는 노트북도 14인치이니까 조금 작은 노트북이기도 하다. 난 영화를 봐도 드라마를 봐도 유튜브를 봐도 작은 화면으로 보는 게 더 좋다.
작은 화면으로 보는 게 더 좋은 이유가 크게 있는 건 아니고 나도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은 화면으로 볼 때 더 집중이 잘 되고 내가 보고 있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영화를 볼 때 화면이 너무 크면 시선이 중심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분산되는데 화면이 작으면 한눈에 모든 곳에 시선을 둘 수 있으니 나에게는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게 더 효율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화면이 작을수록 개인적이게 되니 내가 영화를 보더라도 조용히 감상하고 혼자만의 감상과 평을 남길 수 있다.
한창 영화 분석을 하던 시기에도 아이패드에 영화를 넣어 다니면서 틈틈이 영화를 보았다. 열 번은 족히 봐서 지겨웠지만 집중은 잘 됐다. 그래서인지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게 나에게는 더 잘 맞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기숙사에서도 불 다 꺼진 방에서 추억은 방울방울이라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곤 했는데 그때도 이런 마음이었던 건지 싶다. 나중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영화를 보라고 하면 나는 여전히 아이패드로 영화를 볼 것 같다. 안락하고 포근한 공간에서 남다르게 작은 화면으로 남다른 로망을 실천하는 거다. 작은 화면으로 보는 건 남다른 나만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