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최고의 영화인가
일반적으로 영화 평론하시는 분들의 평론 별점을 보면 1점에서 10점까지 1점 단위로 점수를 매기는 걸 볼 수 있다. 나도 평론을 연습하고 있는 입장에서 영화를 볼 때마다 별점을 매기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항상 막막 해지는 경우가 있다. 단순히 몇 점이라고 점수를 매기는 것도 고민이지만 만점을 받을만한 영화란 무엇일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내가 너무 어려워하는 수식어인 '인생 OO'도 그렇고 '최고의 영화'같은 것들도 어떤 기준으로 매겨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별점 매기는 연습을 하다 보면 별 5개를 줄 영화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되려 별 4.5개 그러니까 9점 정도의 영화는 정말 잘 떠오른다. 그래서 9점과 10점 사이에서 점수를 부여받지 못한 채로 머물러 있는 영화들이 꽤 있다.
최근에 본 영화는 킬빌 시리즈였는데 난 이 영화가 9점 이상 받을 영화라고 확신하지만 10점을 줄 수 있을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 영화적으로 엄청난 완성도를 자랑하고 정말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10점을 주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선뜻 10점을 주기에는 지금보다도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듣고 10점 영화의 기준이 킬빌이나 10점을 준 다른 영화에 맞춰지게 되나? 혹은 이 영화가 완벽한가? 하는 의문도 든다.
누군가가 원래 평론가들이 9점을 주는 영화가 가장 볼만하고 잘 만든 영화이고 10점을 준 영화는 너무 개인적 취향을 타기 때문에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이야기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 마음에 든 영화에도 10점을 주지 않았다. 최근에 내가 보았던 영화들에 대해서 복기해 보고 그중 좋았던 것을 생각해 보았는데 과연 10점을 주어도 되는건가 싶었다.
새로운 학교에서 계속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는데 사실 난 그런 게 잘 없어서 그냥 좋은 별점을 준 영화를 기준으로 이야기하는데 말할 때마다 스스로도 의구심을 품게 된다. 좋은 점수를 줬다고 가장 좋아하는 게 될 수 있나? 다른 학생들은 잘만 말하는데 나는 정말이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9점 이상 영화 리스트 안에서 내가 이야기하는 건 지난번에 언급했던 가타카,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이터널 선샤인, 에브리띵 에브리웨얼 올 앳 원스, 에이아이 정도의 영화가 있다. 뭔가 대중적이고 객관적으로 좋은 영화라는 평을 받고 있지만 이게 나의 제일 좋아하는 (Favorite)에 부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저기 있는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이기에 말하는 거지만 내가 가장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대중적인 선택인 것 같기도 하다.
평론가로 가장 유명하신 분 중에 박평식 평론가라고 유명한 분이 한분 계시는데 이분은 그동안 주었던 평론 중에 10점 영화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9점을 만점으로 해석해 평론을 구경한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는 오호라~ 하기도 했다. 만점을 아예 주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겠다 싶었다.
사실 평론이라는 건 굉장히 개인적인 영역이고 누군가는 1점을 줘도 누군가는 10점을 줄 수 있는 게 영화의 영역이기에 만점이니 뭐니 하는 건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영화를 전공으로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는 주문을 받는 입장에서는 항상 좋고 나쁨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매주 한편씩 영화를 보고도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답도 요구하기는 하지만 어떤 장면이 좋았고 이 영화의 어떤 면이 인상 깊었는지 그 이유를 잘 설명해야 한다. 그런 걸 생각하고 있으면 자연히 영화를 면면히 살펴보아야 하고 그러면 대략적인 점수가 떠오른다. 그중에 10점이다! 하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작품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인지 여전히 10점짜리 영화에 대한 고민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