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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

화려하고 고요한 감각의 흑백영화

by 아피

필름시간에 보는 영화를 리뷰해 보겠다 했지만 굉장히 오랜만에 필름시간에 본 영화 리뷰를 쓴다. 한동안 시험이니 뭐니 조금 바빴다가 지난번에 본 영화가 꽤나 인상 깊었다. 영어로는 A girl walks home alone at night이고 한국어로는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라는 이란 영화다. 사실 이란 영화는 그다지 익숙지 않아서 처음에는 굉장히 의아한 느낌이 있었는데 나는 지금까지 수업시간에 본 영화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시네마토그래피를 공부하면서 본 영화라 촬영기법이나 조명 구도에 초점을 맞추고 본 영화였는데 흑백영화인데도 굉장히 스타일리시한 면이 있었고 되게 인상 깊었다. 오히려 흑백영화여서 컬러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본적으로 많은 설명을 주고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다 보면 다 이해할 수 있다. 제목은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이지만 주로 아라쉬라는 남자 주인공에게 더 많은 초점이 가 있다. 그래서 왜 소녀를 강조한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 소녀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한다, 아마 이란 사회라서 여자가 받는 억압이나 사회적인 맥락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뱀파이어 소녀는 나쁜 짓을 하는 남자들을 죽이고 다니는데 아라쉬는 죽이지 않는다. 아라쉬가 훔친 마약을 팔고 물건을 훔쳤음에도 죽이지 않는다. 그래서 교수님이 그런 윤리적인 기준이 어떻게 다르게 적용되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는데 아마 아라쉬를 사랑하기 때문도 있지만 그가 직접적으로 나쁜 행위를 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기억으로는 자신이 직접 본 상황에서만 행동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라쉬의 비 윤리적 행동을 모른 척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가장 좋았던 장면은 아티라는 여성 캐릭터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로 생각하고 춤을 추는 장면이었는데 묘한 해방감이 느껴지면서도 조명과 음악의 사용이 인상 깊었다. 이란 음악은 아예 모르지만 그 장면을 구성하는 조합들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흑백영화여서 내 눈에 보이는 색깔 대신에 세심한 조명이 중요했던 것 같은데 이 장면에서 역광으로 비치는 조명의 사용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그리고 약간의 스포일러지만 아라쉬의 아버지가 살해당한 다음날 아침 아라쉬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카메라 사용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위아래로 뛰듯이 흔들리고 아라쉬의 팔과 그를 이끄는 한 소년만 보이는데 굉장히 당황스럽고 혼란한 감정을 내가 느끼듯이 느낄 수 있었다. 이것 말고도 다른 장면들이 꽤 많은데 보다 보면 굉장히 연출을 잘했다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다.


거의 마지막 부분에 아라쉬가 소녀와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그녀의 정체를 눈치채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의 묘한 긴장감이 굉장히 강렬했다. 그런데 마침 이때 옆 학교에서 비상 사이렌이 울려서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모두들 그 긴장감 속에서 집중하느라고 밖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영화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었지만 무슨 일이라도 있었다면 영화 보다가 큰일 당할 뻔했다.


리뷰가 약간 횡설 수설 한데 너그러이 봐주시길.. 내가 느끼는걸 문자로 옮기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영화나 음악처럼 감정적으로 느끼고 사고로 전환하는 건 더 어렵다. 그렇지만 내가 이야기한 것들을 영화를 보게 된다면 잘 느낄 수 있을 거다. 이제껏 수업 시간에 본 영화 중 가장 추천하는 영화다.


이 사진은 아까 내가 말한 1인칭 시점의 스크린샷이다. 과제할 때 저장해 두었는데 한번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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