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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AD Festival

학생들은 어떤 영화를 만들까

by 아피

4월 23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인천 송도 메가박스에서 우리 학교 선배들이 만든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가 있었다. 공식 명칭은 F&MAD Festival이라고 Film and Media Arts Department Festival인데 일 년에 한 번 하는 학과 공식 행사고 같은 과 선배들이 만든 영화를 틀어준다고 하기에 많은 교수님들이 제발 와달라고 하셨고 이 행사로 수업도 한 개 취소되었기 때문에 다녀왔다. 사실 가고 싶은 마음과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반반이었는데 가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다녀오기로 했다. 영화관 한 관을 통쨰로 빌릴 정도로 규모가 큰 행사였다. 가는 길에 새로운 사람도 사귀고 통성명도 하고 나름 좋은 일이 생겼다.


행사에서 틀어준 작품은 선배들이 지난 1년간 만든 작품들이고 그중에서도 심사를 거쳐서 가장 좋은 작품성을 띄고 있는 작품 10개 정도를 상영해 주었는데 이걸 보는 게 꽤나 좋았다. 학생 작품인걸 감안하고 보아도 좋은 작품이 꽤 있었다. 서술적인 측면에서는 약간 부족하거나 대단히 흡입력 있지는 못한 부분이 있지만 조명이나 촬영같이 시네마토그래피 적인 부분에서는 다들 굉장히 프로페셔널해 보였다. 선배들 작품 중에 내가 가장 좋았던 거는 Sunburn이라는 작품이었다.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만든 스케이트보드 크루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는데 영상미도 굉장히 스타일리시하고 전체적인 서사를 따라가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이 작품을 브런치 사람들도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공개되지 않는 게 아쉬울 뿐이다. 볼 수 있는 경로가 생긴다면 언젠가 공개하도록 하겠다.


그 외에는 전부 내러티브 필름이었는데 나는 사실 스크린플레이를 되게 어렵고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선배들 작품을 보고 스크린플레이에 대해서 좀 더 작고 가볍게 생각해도 되겠다는 교훈 아닌 교훈을 얻고 왔다. 사실 일반적으로 보는 상업영화는 약 2시간 정도의 방대한 양을 담아내다 보니까 내용이 커지고 가지가 많아지는데 이걸 보는 게 익숙해지다 보니 단편영화에 대한 접근도 좀 복잡해지게 된 것 같다. 근데 선배들 영화는 좀 더 내 로우 한 접근도 있었고 전개 보다도 아이디어 자체에 초점을 둔 작품도 있어서 좀 더 내 관념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했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에 그랬다.


상영이 다 끝난 뒤에는 시상식도 진행했는데 거기서 부문별로 누가 상을 받게 될지 예측하고 맞추는 재미가 있었다. 한 6-7개 정도 분야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4개 정도 맞춘 것 같다. 그리고 외부 비평가 상이 있었는데 내가 가장 좋게 봤던 다큐멘터리 작품이 이 최고 상을 받아서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나와 평론가들의 마음이 통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제작에 굉장히 큰 뜻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상영회와 시상식에 다녀오고 나니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욕심은 생기기는 했다.


나는 학교 사람들만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냥 일반 시민들도 오시고 사람이 꽤 많아서 놀랐다. 다른 과 교수님들도 오시고 부모님인지 모르겠는 사람들도 오시고 그냥 인천 시민도 오시고 그랬다. 나는 혼자 갔다가 미국인 두 명과 한국인 한 명과 친해졌다. 같이 앉아 영화를 보다가 세 시간 동안 영어로 영화를 보고 영어로 대화하다가 머리에 오류가 나서 행사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영어와 한국어를 혼동해서 말하다가 한국어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일기장에 영어로 적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부작용만 빼면 굉장히 즐거운 행사였다. 물론 앉아서 영화만 보고 저녁도 못 먹어서 기가 쏙 빠지고 기진맥진 해졌지만 나름 괜찮았다. 끝나고 나오는 길에 학장님은 학생들에게 뭐가 좋았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Sunburn이 좋았다고 하니까 본인은 별로였다는듯이 음~ 괜찮지~ 하셨고 오늘 1교시를 들었던 교수님은 다큐멘터리를 전공하셔서 그런지 내가 다큐를 좋게 봤다는 사실에 매우 즐거워하셨다. 그래서 사람마다 모두 느끼는 것이 다르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고 영화 감상이란 참으로 다양한 세상이군 하는 생각도 했다.


학기에 한 번인 행사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일 년에 한 번이라니 어쩔 수 없지.. 내년에도 꼭 다시 가리라.. 아니면 내년에는 내 작품이 걸려 있게 하리라 하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감상을 나눴다. 근데 정말 좋은 작품이 많았다. 아직 시네마가 죽지 않았다는 어떠한 느낌을 받았다. 상업 영화가 판치는 시대에 대학에서 만드는 시네마가 되게 소중하게 느껴졌달까? 사실 영화학과가 받는 인식이라는 게 되게 돈 없고 빈곤하고 힘들고 이런 이미지들이고 성공하기 힘들다는 기정사실이 넘쳐나기 때문에 뭔가 처음에는 되게 다들 우울하고 피곤해 보일 것 같았는데 의외로 다들 되게 행복해 보이고 즐거워 보이고 그랬다. 한국 학교랑 인식이 다르기도 하고 원래 인천글로벌캠퍼스 중에서도 유타대 친구들이 유독 행복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영화에 대한 열정이 잘 느껴졌던 날이었다.


최근에 시네필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굉장히 깊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과연 내가 시네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네필이 아닌 사람도 평론을 해도 괜찮은 걸까? 시네필은 어떻게 정의되는 것이며 어떠한 스펙트럼처럼 이루어지는 걸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해 보았었다. 그리고 내가 행사에서 느낀 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시네필이라는 거다. 내가 많이 알고 지식을 뽐내고 규칙에 따라서 만드는 것 보다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시네필이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모두 즐거웠고 다 같이 시네필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런 시네필적 순간이 일시적 일지라도 나는 확실히 그 순간에 시네필이었다. 원래 무언가에 대한 사랑이 굉장히 크게 나타나는 편은 아니고 영화도 마찬가지 인지라 영화를 전공으로 삼는 것에 대한 의문이 있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는 영화 보고 글을 쓰는 게 좋은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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