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해피엔드

뭔가 크게 달라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by 아피

해피엔드는 부산국제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고 해서 개봉하기 전부터 엄청 기대하고 매우 매우 보고 싶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개봉한 지 이틀차였던 5월 1일에 바로 보고 왔다. 내가 지내는 지역에는 아침 7시 45분에 딱 한번 틀어주길래 새벽같이 일어나 조조 영화로 보고 왔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보지 말까 했는데 송도에서 일산으로 건너오니 일산에는 아예 상영관이 없어서 송도에서 보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너무너무 좋았다. 별 5개를 기꺼이 내어 주었다. 최근에 왓차 피디아 리뷰를 시작했는데 내 별 5개 영화 목록에 기꺼이 넣어 줄 만큼 나는 이 영화가 좋았다. 그래서 벅차오르는 마음에 바로 리뷰를 쓰지 못하고 며칠 이 마음을 묵혀 두었다가 글로 써내어 본다.


내용적인 면에서 인상은 슬픈 영화인 점이다. 제목인 해피엔드와 다르게 영화를 다 보고 결말부에 다다르면 매우 슬퍼진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지만 주인공 유타와 코우의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모두 보고 결말부를 보면 대단히 슬퍼지는데 그 느낌이 노르웨이의 숲을 다 읽었을 때와 비슷했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정치적 요소가 굉장히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게 했는데 지난번에 미키 17도 그렇고 해피엔드도 그렇고 자꾸 누군가와 한국의 상황이 떠오르는 것은 우리가 겪었던 상황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심각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해 줬다. 영화를 보는데 혹시라도 스포일러가 될까 봐 조심스러워지기 때문에 내용은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냥 보았으면 한다.


영화를 볼 때 뭐 하나라도 배운 걸 깨달으면 잘 봤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깨달은 점이 몇 가지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다. 카메라 기법 중 줌인(Zoom-in) 기법은 영화적으로 중요한 것을 부각할 때에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매우 드물게 그리고 중요한 상황에서만 희소하게 사용되는 기법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나는 그걸 배웠기 때문에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영화를 볼 때 그런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피엔드에서 등장하는 단 한 번의 줌인으로 나는 줌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유타와 코우의 대화에서 등장하는 한 번의 줌인이 엄청난 몰입감을 가져오면서 카메라 테크닉에 대해서 약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편집 기법 중 프리즈 프레임 (freeze frame) 즉 프레임을 잠시 멈추는 편집 기법이 있는데 이 편집 기법도 매우 인상 깊었다. 영화에서는 오프닝과 클로징에 두 번에 프리즈 프레임을 사용하는데 두 장면의 인상이 매우 다르다. 첫 번째 프리즈 프레임은 청춘의 한 장면과 우정, 즐거움을 담고 있다면 클로징의 프리즈 프레임은 모든 것을 겪고 난 이후 상실감과 슬픈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같은 편집 기법을 수미상관으로 사용하고 변주된 음악을 삽입함으로써 비슷하게 구성하지만 느껴지는 느낌 자체가 매우 달라서 되게 인상 깊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운드트랙도 되게 좋았는데 음악이 다양하지는 않은데 같은 음악 몇 개 안에서 변주를 이루면서 계속 등장한다. 그래서 음악이 다 비슷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영화를 다 보고 사운드 트랙을 듣고 있으면 눈물도 나고 영화 장면도 스쳐 지나가고 그런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아들이 이 영화의 감독이기 때문에 음악을 사용하는 점을 굉장히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영화 음악의 작곡가가 류이치 사카모토는 아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을 뽑아보자면 유타와 코우가 서브우퍼를 훔치며 싸우는 장면이 있는데 동일한 장소에서 카메라 구성과 위치가 변화했다는 점이다. 이게 이상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지만 샷 사이즈와 장소가 같은데 갑자기 카메라 위치만 바뀌니 장면이 튀는 느낌이 들어서 그 점은 약간 아쉽게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롱샷과 풀샷이 많은 영화인데 이런 점에서는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설정이 근미래라지만 외국인들이 일본의 일반 학교에 너무 많은 것이 약간 이상하게 느껴졌고 사용되는 소품들이 오히려 현재보다도 더 옛날 느낌이 나는 것들이 있어서 그런 점은 조금 의아했다. 예를 들자면 핸드폰이 지금 것 보다 좀 더 버전이 낮아 보이는 아이폰이다.. 사용된 소품 중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면 2042라고 적혀있기 때문에 거의 그 정도의 근미래 일 텐데 사용되는 것들은 지금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이 일본 특유의 아날로그함과 회귀본능인지 아니면 그냥 그런 소품을 사용하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근미래라는 설정이 영화에서 대단히 크게 느껴지는 점은 아니었다.


원래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이 큰 법인데 이 영화는 너무 좋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상영관이 적어서 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일단 내가 사는 곳에서는 보려면 30분 정도 이동해야 하고 학교가 있는 곳에서 보려면 새벽같이 일어나 보는 방법밖에 없다. 한번 더 보고 싶지만 보러 가기 힘들다. 포스터를 받고 싶어 상영관을 뒤져 보았지만 서울이 아니면 받을 수 없어 중고로 사야 하나 고민도 하고 있다. 나는 그 정도로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본인을 관통하는 무언가를 느낀 기분이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5점을 주었는데 어떤 코멘트를 남겨야 할지 정리 중이다. 왓챠 피디아를 시작했는데 브런치 프로필에 링크를 붙여 두었다. 아직 별건 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F&MAD Festiv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