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OFF, 가족 ON

우리집은 디지털 디톡스 중이다.

by 주현정

하루에도 수십 번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내 모습을, 내 아이가 보고 있었다.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의 일상.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 화면을 찾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를 위해 또다시 핸드폰을 내미는 나.

그렇게 시작된 작은 결심, 디지털 디톡스.

화면을 끄자, 얼굴이 보이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가장 단순한 변화가 우리 가족을 조금씩 따뜻하게 바꿔놓기 시작했다.

얼마 전, 우연히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습관처럼 화면을 넘기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자연스럽게 따라 하는 아이들. 문득, 우리가 얼마나 미디어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디지털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많은 것을 편리하게 누리고 있지만, 그만큼 잃어버리는 것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이 낯설면서도 절실하게 다가왔다. 잠시라도 화면에서 눈을 떼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 어쩌면 지금 우리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싶었다.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핸드폰을 사 달라고 졸라댔다. 반 친구들 대부분이 핸드폰을 갖고 있었고, 친구들과 번호를 교환하며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했다. “넌 학교 마치면 항상 엄마랑 같이 있잖아. 그러니까 엄마 번호 알려주면 돼. 엄마랑 핸드폰 같이 쓰자. 엄마는 잘 보지도 않잖아.” 그래서 내 핸드폰에는 딸 친구들의 전화번호와 톡이 가득하다.

아이를 키우며 ‘핸드폰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이유 없이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내가 쓸 수 있었던 최고의 무기는 유튜브였다. “울지 마, 뽀로로 보여줄게.” 그 한마디로 우리는 외식도 할 수 있었고, 카페에도 갈 수 있었다. 식당에서는 밥을 먹기 위해 아이를 멈춰야 했고, 카페에서는 시끄럽게 굴까 봐 미리 핸드폰을 쥐어주곤 했다. 그렇게 아이의 뇌를 멈추게 하는 날이 많았다.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기에.


시댁이 인천이라 명절이면 차로 6시간 길게는 9시간을 이동해야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 핸드폰은 필수였다. “엄마도 쉬어야 해.”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또다시 아이의 뇌를 멈추게 하고 있었다. 둘째가 태어난 후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두 아이가 동시에 칭얼대면,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예민해지고 다투기도 했다. ‘이렇게 싸우는 것보단 그냥 보여주는 게 낫겠지.’ 그렇게 또 핸드폰으로 손이 갔다. 알고는 있었지만, 달리 방법을 몰랐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차 안에서 큰딸이 핸드폰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본 지인이 말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영상 보는 건 시력에 안 좋아.” 나는 아이의 시력이 나를 닮은 것 같아 늘 마음이 쓰였다. 그 한마디가 나를 멈추게 했다. 그날부터 차 안 영상 시청은 금지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아이들이 순순히 따라주는 것이었다. “흔들리는 영상은 눈에 안 좋대. 그래서 못 보여줘.” 화도 내지 않았는데, 이유만 설명했을 뿐인데 아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날 이후 영상 보는 시간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식당에서도 말했다. “밥을 먹을 땐, 가족이랑 얼굴 보면서 먹는 거야.” 아이들은 따라주었다. 여전히 소란스럽고 돌아다닐 때도 있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카페에서도 종이와 색연필만 있으면 두 딸은 잘 논다. “사람 많은 곳에서는 조용조용히 말하는 거야.” 아빠의 말에 아이들은 귀 기울여 들었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가장 손쉬운 방법만 고수했던 내 지난날이 미안했다. 아이들은 이해가 되면, 스스로 멈출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조금만 심심해도 큰일이 나는 줄 알고, “그럼 이거 하나 보자.” 아무렇지도 않게 태블릿을 틀어주었다.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 착각했다. 그렇게 우리 딸들은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없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는 걸, 나는 몰랐다.

우리 집엔 TV가 없다. 대신 태블릿이 있다. 정해진 시간에, 영어 버전으로만 시청할 수 있다. 내가 요리하거나 청소하느라 바쁘면, 아이들은 몸을 배배 꼬며 말한다. “엄마, 심심해. 테블릿 봐도 돼?” 그러면 나는 말해준다. “심심한 시간이 있어야 생각을 할 수 있게 돼. ‘이제 뭐 하지?’ 생각하면서 너희는 더 언니가 되어가는 거야. 심심한 건 좋은 거야.” 그러면 아이들은 뒹굴다가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고, 둘이서 카드놀이를 하기도 한다.


딸들에게 그렇게 말해놓고, 내가 폰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엄마도 하잖아요.”그 말 한마디에, 나도 자동으로 디톡스 중이다.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폰을 확인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고, 우리 부부는 집에 들어오기 전 신발장에 폰을 넣고 들어오기로 했다. 나는 핸드폰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신발장에 넣고 보니 얼마나 자주 폰을 들여다봤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우리 집에서 핸드폰을 두는 곳은 ‘신발장 안’이다. 사용할 일이 생기면 문을 열고 그 앞에서 잠깐 쓰고, 다시 넣는다. 폰을 확인하기위한 절차가 두 단계 더 생겼다. 신발장으로 가야하고, 문을 열어야 한다. 이 사소한 절차는 내가 폰을 궁금해 하는 마음을 확실히 차단해 주었다. 눈앞에 없으니 자연스레 멀어지는 느낌이다.

집에서 ‘뭘 하지?’ 싶은 순간엔, 책에 손이 갔다. 심심해서, 책을 읽게 되었다. 우리 집 거실엔 언제 어디에 앉아도 손닿는 곳에 책들이 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의 목표는,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2G폰을 사주는 것이다. 그 목표를 위해서라도, 나부터 디톡스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디지털 디톡스를 시작한 후, 우리 가족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밥을 먹으며 각자의 화면을 바라보았지만, 이제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학교 어땠어?” “엄마는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 사소한 대화들이 오가며 웃음이 늘어났다. 아이들이 심심해할 때면 ‘생각 중이구나’ 싶어 오히려 흐뭇해진다. 나 역시 심심함 속에서 책을 펼치고,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핸드폰을 단순히 ‘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우리 가족의 삶을 조금 더 깊고 풍성하게 바꿔주었다.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고, 눈을 맞추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 모든 변화가 참 고맙다. 디지털이라는 편리함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따뜻한 일상들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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