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으로 만난 친구
“언니, 저 너무 힘들어서… 센터에 전화했어요.”
놀이터에서 마주치던 그녀가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놓은 날이었다.
웃는 눈으로 가볍게 건넨 고백, 하지만 그 웃음 뒤에 있는 무게는 무거웠다.
그날 밤, 우리는 맥주를 들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육아’라는 이름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엄마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아파트로 이사 온 뒤, 가장 자주 왕래하게 된 친구가 생겼다.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던 딸을 둔 그녀와의 첫 만남은 놀이터였다. 처음엔 그냥 오가며 인사만 나누는 얼굴이었지만, 아이들이 노는 사이 자연스럽게 육아의 고충을 나누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조용히 고백했다.
“언니, 저 너무 힘들어서… 센터에 전화까지 했어요.”
웃는 눈으로 건넨 그 말이 어쩐지 슬펐다.
남편은 출장 잦은 직업이라 몇 주, 길게는 몇 달씩 집을 비운다 했다. 그 시간 동안 그녀는 혼자서 두 아이를 돌봤다고 했다. 손 많이 가는 돌쟁이 둘째와 큰딸.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무게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었다. 나 역시 우울감에 시달린 적 있었지만, 그녀 앞에서는 명함조차 내밀 수 없었다. 도움이 너무 간절해 상담센터에 전화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흘러가질 못했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운 뒤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난 육퇴했는데, 우리 집 잠깐 올래요? 신랑 있으니까 아이들 자는 것만 보면 와요.”
우리는 편의점에서 맥주와 안주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함께 아파해주고 싶었다.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식탁에 앉아 캔맥주를 딴 순간,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힘듦을 알아준다는 사실만으로, 위로가 되었던 걸까. 혼자 두 아이를 돌보며 얼마나 버거웠을까.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종종 서로의 집을 오갔고, 놀이터에서도 자주 마주쳤다. 그녀가 마음속 무거움을 조금씩이라도 덜어낼 수 있기를 바랐다.
센터에서는 산책을 추천했다 했다. 좋은 조언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치이고 나면 걷고 싶다는 생각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무기력함은 그렇게, 더 깊은 곳으로 그녀를 끌고 들어갔을 것이다. 다행히,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이면 그녀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참 다행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제법 자랐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여전히 예쁜 눈으로 웃고 있었다. 산발적으로 연락하는 나의 전화도 반갑게 받아주는 그녀. 항상 고맙고 따뜻한 사람이다. 우리는 아파트 상가에 있는 작은 편의점, 우리의 아지트로 갔다. 그곳에서 점보커피를 들고 끝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힘들었던 하루, 사소한 에피소드, 지금의 마음 상태까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무게들을 그렇게 나누었다.
아이 키우는 건 여전히 힘들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기 위해 달력에 체크를 한다고 했다. “언니, 오늘로 화 안 낸 지 3일째예요.” 그 말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어느 날, 그녀의 큰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했다. “엄마, 나 계속 여섯 살이고 싶어. 지금 엄마가 너무 좋아서. 내가 자라면 엄마도 할머니가 되고, 그러면 죽을까 봐 무서워.” 이보다 더 가슴 벅찬 찬사가 있을까. 엄마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말이었다. 그녀의 사랑과 노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바로 아이들이었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한마디가, 외로움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녀를 통해 배웠다.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육아는 끝이 없다. 하지만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다시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는다. 그녀도, 나도, 아이들의 ‘지금’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