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라는 이름의 안식처
불행이라 믿었던 어린 시절.
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나는 그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건 결국, 나의 시작이자 돌아갈 곳이기에.
“엄마는 다시 태어난다면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산책길에서 큰딸이 물었다.
망설임 없이 내 입에서 답이 흘러나왔다.
“엄마는 언니가 좋아. 다시 태어나도 주현진 언니 동생, 주현정으로 태어날래. 그게 참 좋았거든.”
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나도 주현정 엄마 할래요. 다시 태어나도, 주현정 엄마를 또 만날래요.”
짧고도 굵었던 그 대화가, 나를 오래도록 생각에 잠기게 했다.
어린 시절, 언니와 비교되던 나는 늘 부족함을 느끼며 오빠를 꿈꿨다.
그땐 단연코 ‘오빠’였다.
드라마 속 다정한 오빠가 늘 부러웠다.
언니와는 자주 다투었고, 늘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다.
언니는 모든 걸 가진 것 같았고, 나는 언제나 부족해 보였다.
아마 내 딸도 첫째가 가진 무게를 조금씩 느끼는 걸까.
그래서 자신만의 ‘언니’나 ‘오빠’를 상상하며 그 무게를 나누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상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말이다.
“여보, 아까 산책할 때 린이가 ‘다시 태어나면 언니가 좋겠냐, 오빠가 좋겠냐’고 묻더라.
근데 나도 모르게 ‘언니’라고 대답했어. 그것도 ‘주현진 언니’라고.
그런 생각을 한 지도 오래됐는데, 내가 언니를 참 많이 좋아하나 봐.”
나는 저녁 식탁에서 신랑에게 말했다.
“그렇지?”
다시 태어난다면…
어린 시절, 불행하다고 여겼던 그 시절에 수없이 했던 상상이었다.
부잣집 외동딸로 태어나고 싶었다.
지금의 부모 밑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이건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현실의 무게를 버텼다.
우등생이던 언니와의 비교,
물려 입던 후줄근한 옷,
6년을 입어야 했던, 내 몸에 맞지 않던 교복.
그 모든 게 싫었었다.
그런데 마흔의 중턱에 선 나는,
그 시절의 모든 것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때, 참 행복했었다고.
“여보, 근데 있잖아.”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나 다시 태어나면, 지금 내 부모 밑에 둘째로 태어나면 좋겠어.
주현진 언니, 주현제 동생, 주종경 아빠, 성인자 엄마 사이의 둘째 딸로.
그게 제일 좋은 것 같아.”
과거는 힘들었지만, 그까짓 것 한 번쯤 더 힘들면 되지 뭐.
중학교 입학식 날,
같은 학교 3학년이던 언니가 위층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우리 삼 형제가 원룸에서 살아야 했을 때도,
언니가 있었기에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부모의 부재를 느낄 틈도 없었다.
그보다 더 든든한 ‘언니’가 있었으니까.
그 모든 두려움은 아마 언니의 몫이었으리라.
어쩌면 나는 다시 태어나도, 그 무거운 짐을 감히 짊어질 용기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에도, 지금처럼 천지 분간 잘 못하는 둘째로 태어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렇게 안전한 둥지의 역할은 언니에게 맡기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아기를 낳았을 때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언니였다.
내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사람.
세상 누구보다 먼저 보고 싶었던 사람.
그건 여전히, 내 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