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좋은 일보다, 끝이 좋은 일을 하기를.
좋아하는 일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하지만 그날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내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나는 요가를 참 좋아한다.
하지만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다.
60분의 시간이 행복할 때도 있지만, 꾸역꾸역 버텨내는 날도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생리 이틀 차.
이도 저도 하기 싫은 상태.
그냥 배 깔고 누워 있고 싶은 강한 욕구만 남아 있었다.
‘가지 말까? 오늘은 그냥 좀 잘까?’
아이를 등원 차량에 태우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오늘을 이렇게 흘려보내면
하루 전체가 무너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요가를 안 가면 카페에도 안 가게 될 것이고,
그러면 글도 쓰지 않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내 루틴이 연쇄적으로 깨질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밤이 되어 감사 일기를 쓸 때,
오늘 적을 만한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그게 싫었다.
“어차피 오늘은 흘러갈 거잖아. 대충이라도 해보자.”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요가원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하기 싫은 마음은 금세 몸으로 번졌다.
집중이 안 되니 중심이 흔들리고, 시선도 부산해졌다.
동작 하나 끝날 때마다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더디게, 더디게 흘렀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왕 할 거라면, 제대로 해보자.’
호흡부터 다잡고 오롯이 동작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시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금세 한 시간이 지나 있었고,
나는 뿌듯함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그냥 대충 했어도 시간은 흘렀을 것이다.
하지만 하기 싫다는 마음으로 버텼다면,
그 시간은 훨씬 더 길고 괴로웠을 것이다.
이건 요가뿐만이 아니다.
학원 강사 시절, 한 달에 한 번 있는 교사 교육 시간에도 그랬다.
야행성이었던 나를 이른 아침부터 불러 앉혀 놓고
끝도 없는 강의를 들으라 하니 잠이 쏟아졌다.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고,
그저 그런 시간을 억지로 흘려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이 강의를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들을 방법이 없을까?’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입장을 바꿔보았다.
강사의 입장이 되어 보니, 잠을 잘래야 잘 수가 없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했을까 싶으니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이 속에서도 배울 게 있겠지.’
그 마음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어떤 강의도 더 이상 지루하지 않았다.
좋은 강사에게서는 노하우를,
좋지 않은 강사에게서는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로 나는 ‘몹시 하기 싫은 일’을 만날 때마다
그 속에서 작은 배움 하나라도 건지려 했다.
유독 시간이 빨리 가는 일이 있다.
친구와의 수다, 아이들과의 놀이, 그리고 주말.
그건 내 마음이 그 시간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늘 그렇듯, 오늘의 요가도 몹시 힘들었다.
그럴수록 더 집중해야 한다는 걸 안다.
집중하면, 힘든 시간도 금세 흘러가니까.
집중은 결국, 싫은 일을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선물’로 바꿔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