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열면 멈출 수 없어.
“여보, 핸드폰이 진짜 내 마음을 읽는 것 같아.
내가 오전에 요가할 때 안 된다던 자세 있잖아.
그런데 그 자세가 오늘 핸드폰에 뜨는 거야.
한 번도 안 보이던 자세인데, 내가 궁금해하니까 폰이 띄워주는 거 있지. 무서워.
진짜 내 생각을 읽나 봐.”
“폰이 듣는 거래.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이걸 궁금해하네?’ 싶으면 띄워주는 거야. 얼마나 영리한데.”
“정말?”
믿기 어려운 남편의 말.
그래서 나는 AI에게 직접 물었다.
“정말 우리 대화를 듣고 알고리즘을 만드는 거예요?”
AI는 차분히 대답했다.
“아니에요. 최근 검색 기록, 시청 영상, 쇼핑몰 방문 이력, 주변 사람들의 관심사 같은 데이터를 종합해 추천해 드릴 뿐이에요.”
그런데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내가 정확히 궁금해하던 그 자세를 어떻게 아는 걸까?
결국 나는 신랑의 말에 더 신빙성을 부여했다.
아무래도 진짜 듣는 게 분명하다.
결국 나는 또 내 스타일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AI, 너는 대체 어디까지 굉장해질 거니?”
“엄마, 폰 어디 있어요?”
“어딨긴, 신발장 안에 있지.”
내 폰의 집은 신발장이다.
그곳에 숨겨둬야만, 내 눈에 띄지 않아야만 내가 덜 쓴다는 걸 요즘 실감한다.
프링글스 뚜껑을 한 번이라도 열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멈출 수 없다는 것을.
폰이 딱 그렇다.
‘딱 10분만 해야지’라는 다짐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
열지 않을 결심이 필요할 뿐이다.
한번 열면 끝이다.
그렇게 뚜껑을 무심코 열어버린 날, 딸에게 들켰다.
“엄마, 폰 하고 있었어요?”
“아니, 잠깐 카톡 확인하는 거야.”
당황하며 핑계를 대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우스웠다.
신발장 앞에 멈춰 선 채 몇 십 분을 보냈다.
빨리 꺼야 하는 걸 알면서도, 다음 영상이 또 나를 끌어당겼다.
그럴수록 딸은 내 말을 흉내 냈다.
“엄마도 중독이에요?”
반박할 수 없는 사건 현장에서 현행범의 심정이었다.
아, 정말 자식 앞에서 냉수도 제대로 못 마신다더니.
이젠 폰도 몰래 못 본다.
요즘은 딸들이 엄마에게 예의 바르지 못하게 대할 때마다 괜히 서운하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엄마가 살아계실 땐 ‘우리 엄마 왜 저럴까’ 하다가,
돌아가시고 나니 ‘우리 딸들은 왜 저럴까’ 하는 나.
참 간사하다.
얼마 전 본 그림 한 장이 잊히지 않는다.
엄마의 가슴에 칼이 꽂혀 있고, 그 칼은 딸의 입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엄마에게 함부로 던진 말들이 고스란히 상처가 되는 그림.
그제야 깨달았다.
역지사지란 말, 너무 늦게 배웠다.
무서운 AI는 딸들에게 서운해하는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그래서 요즘 나는 프링글스 통을 열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것만 안 해도 내 하루가 풍요롭다.
책 읽을 시간이 생기고,
운동도 할 수 있고,
딸들과 놀아줄 시간도 늘어난다.
집은 더 깨끗해지고,
밥상은 더 풍성해지고,
가족과 대화가 많아진다.
그놈의 프링글스 통만 안 열면 말이다.
그러면, 나는 부자다.
시간 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