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소모시키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기술

내 인생의 ‘필터링’이 필요했던 순간

by 주현정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울 때가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로움이 아니라 회복이었다는 걸, 이제야 배운다.
누가 나를 찾아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내 주변 사람 다섯 명의 평균이 나라고 했다.
근묵자흑,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일까. 딸이 학교에 입학할 때 나는 몇 번이고, 신신당부하듯 말해주었다.
“친구 잘 사귀어야 해. 좋은 친구를 만나야 네가 더 행복해져.”


나이가 든다는 건 예고 없이 새로운 사건이 찾아오는 일의 연속이었다.
결혼 전엔 몰랐던 시댁과의 일,
아이를 낳기 전엔 알 수 없던 부모로서의 고됨,
그리고 자꾸 고장 나는 나와 남편의 몸까지.
상상조차 못 한 일들이 늘 새롭고, 때로는 버겁게 찾아왔다.


삶이 이렇게 고달픈 거라면,
그 혼란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앞으로 닥칠 폭풍은 예측도, 막을 수도 없지만
내가 다스릴 수 있는 작은 영역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내 주위 사람들’.
가족이나 직장 동료처럼 피할 수 없는 관계가 아닌,
내가 온전히 선택할 수 있는 관계들.
슬금슬금 시간을 빼앗고,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게 하고,
만났다가 돌아오면 괜히 마음이 번잡해지는 관계들을
나는 조용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딸 또래 아이들을 보면
어릴 적 내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여럿이 모여 노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늘 잘 섞이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리더가 되는 아이, 끌려다니는 아이, 억지로 웃는 아이.
나는 늘 눈치를 보며 끼어 있던 아이였다.

‘같이 놀자’는 말이 고마워서
나와 맞지 않는 친구들과도 억지로 어울렸다.
즐겁지 않아도,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내 감정을 꾹 눌러 외로움을 견디려 했다.
주변에 누군가 있어야 외롭지 않다고 믿었다.


어른이 된 뒤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불러주면 반가웠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작은 소외감쯤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날 찾는 사람이 있잖아.”
그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아니,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기록하듯 글을 쓰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이
비로소 ‘내 시간’이 되어감을 느꼈다.
작가들은 어떤 친구의 조언보다 현명했고,
위로가 필요할 때면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선택한 관계,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 관계였다.


그제야 알았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는 걸.
오히려 그 시간이 더 충만하다는 걸.


물론 함께 있으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배려가 담겨 있는 사람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관계.
이제 나는 그런 사람들만 남기고 싶다.


어느 날, 잠들기 전 딸이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세연이가 나 안 좋아하는 것 같아.
다른 친구한테는 잘해주는데 나한테만 화내고 짜증 내.”

나는 딸에게 말했다.
“선아야, 선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친구는
진짜 선이를 좋아하는 친구가 아닐 수도 있어.
자꾸 가시에 찔리면 아프잖아.
뾰족한 말을 계속하는 친구는 멀리하는 게 좋아.

대신 선이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이 있잖아.
그 친구들과 있을 때 네가 더 행복하잖아.
그래도 그 친구와 꼭 친해지고 싶다면
‘그 말이 슬펐어. 그렇게 말하지 말아 줘.’
라고 네 마음을 솔직히 말해봐.
그 말이 통한다면, 그게 진짜 친구가 될 수도 있어.”


나 역시 이제 그런 관계를 선택한다.
내가 좋아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있을 때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관계들.
외로움 대신 따뜻함을 주는 관계들.

오늘도 나는 두세 명뿐인 절친들에게 연락을 해볼까 한다.
그들과의 시간은 언제나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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