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가는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
흰머리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내 모습.
변해가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오늘도 나는 거울 앞에서 조용히 연습한다.
“그래도, 괜찮아.”
흰머리를 괴롭히지 않을 용기가, 아직은 내게 없다.
거울 앞에 비친 희끗희끗한 녀석들을 애써 모른 척하고 지나갈 담대함이 생기지 않는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10년 전, 더 이상 렌즈를 끼지 못한다는 안과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는 오랜 동반자였던 서클렌즈와 작별해야 했다.
대학 때부터 나의 ‘눈’을 만들어주던 소중한 렌즈.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으니 뭐 어떠냐며 스스로를 달랬지만
하루아침에 손절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익숙함이 힘이 되었다.
서클렌즈 없는 내 눈에도 적응했고, ‘괜찮다’는 마음이 서서히 올라왔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흰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번엔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었다.
혼자 뽑기 힘든 자리까지 억지로 찾아가며
검정머리까지 함께 뽑아버리기 일쑤였다.
하나가 보이면 그날은 거울 앞에서 수십 분을 뒤적여야 했다.
나는 자연스러운 내 머리색을 좋아한다.
그래서 염색을 하지 않은 지 수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염색약이 시력에도 안 좋다는 말을 들으니
염색조차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받아들임이 버거운데
어떤 사람들은 세월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중후한 멋을 낸다.
“여보, 저 사람들은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걸까?
어떻게 저렇게 흰머리를 그냥 둘 수가 있지?”
그러면 남편은 태연하게 말한다.
“그냥 흰머리에 예민하지 않은 거지. 크게 생각 안 하는 거야.”
하지만 내 눈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자존감 높은 사람으로만 보였다.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삶.
그대로의 나를 허락하는 용기.
그게 얼마나 멋있는가.
신랑과 나는 원숭이 부부처럼
주기적으로 서로의 흰머리를 뽑아준다.
예전 엄마 머리를 뽑아주던 시절엔 한 올에 100원이었는데
지금 우리의 흰머리는 이미 계산할 수가 없다.
단골 미용실 원장님의 말도 오래 남았다.
“저는 흰머리도 아까워서 못 뽑아요.
계속 뽑으면 그 자리에 머리가 안 날 수도 있어요.”
생각해 보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얼마 전 남편은 머리가 휑한 대머리가 되는 꿈을 꿨다며
영 찝찝해했다.
요즘 머리카락이 얇아지고
정수리가 살짝 비는 것 같다며 걱정하더니
그 염려가 결국 꿈으로까지 찾아온 모양이었다.
나는 “당신은 대머리가 되어도 멋질 거야”라고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정말 괜찮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몸은 예전 같지 않다.
모든 것이 변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세월을 그대로 사랑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 아닐까?
누군가의 사랑을 구하는 일은 어렵지만
나 스스로를 사랑해 주는 일은
조금 더 쉬워야 하지 않을까.
탱탱함은 사라지고
흰 뿌리들은 올라오고
피부는 처지고
근육은 빠지고
머리는 둔해지고…
이 모든 변화를 언젠가
담담히 받아들일 날이 내게도 올까.
이효리가 자신의 주름을 받아들인다며 말하던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멋지다 칭찬했다.
나 또한 그녀의 태도,
자신을 사랑하는 단단함이 몹시 부러웠다.
언젠가 나도
진심으로 내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말해본다.
“그래도, 괜찮아.”
세월이 내게 남긴 흔적들.
삶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음을 증명하듯
작게 새겨진 훈장들.
나는 그 훈장을
조금씩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