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같이 놀자.

그 말이 사라지기 전에

by 주현정


어제의 소음이 오늘은 음악이 되고,


귀찮기만 하던 아이의 “엄마!”가 어느새 선물이 된다.


지나가고 나서야 알게 되는, 육아라는 기적의 시간들.


길어야 몇 년이지만, 평생 남는 바로 그 짧디 짧은 몇 년.




요가원에 가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정수기 위에 놓인 작은 달력의 날짜를 맞추는 것이다.


좋은 글귀가 적힌 달력인데,


내가 하도 열심히 읽어대니 원장님이 “이제 달력 담당하세요.” 하고 웃으셨다.


그 말이 벌써 1년 전이다.


나는 1년 동안 그 달력에서 하루 한 문장을 가슴에 새겼다.




그 달력에는 김종원 작가의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 이 적혀 있다.


짧은 글귀 하나를 읽으며


나는 하루를 감동 속에서, 때로는 후회 속에서 시작하곤 했다.


그 많은 문장 중에서도 어제의 글은 유독 잊히지 않는다.



“이유식을 만들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도 길어야 3년이고,


궁금한 것을 묻고 또 묻는 아이의 질문에 답해주는 것도 길어야 5년이지만,


그 모든 것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후회는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매일


“엄마, 놀아줘요”,


“엄마, 안아줘요”,


“엄마 나 사랑해?”


하고 묻는 그 순간 속에서,


나는 어떤 부모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짧은 문장은 내게 오래 남는 질문을 던졌다.


육아가 어떤 것인지,


육아 선배들이 이런 말을 남긴 이유가 무엇인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저 앞서 걸어간 이들의 말을 귀동냥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또 살아갈 뿐이다.


둘째가 두 돌 즈음이었을 때, 나는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모든 것이 무기력했고,


아이들을 등원시키면 그 순간 하루가 끝난 것만 같았다.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핸드폰만 들여다보던 시절.


집은 늘 엉망이었고,


“아, 제발 오늘은 아이들이 빨리 잠들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 아닌 기도를 하며 버티던 날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마시던 술,


그 시절의 나는 항상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결국 지나갔다.


아이들은 어느새 혼자 화장실에 가고, 각자의 방에서 잠들며,


옷도 밥도 스스로 해결할 만큼 자랐다.


큰아이는 혼자 샤워를 하고 학원도 오간다.


이유식 만들고 기저귀 갈아주던 시간은 이미 지나버렸고,


지금 나는 호기심 폭발기의 질문 세례를 받는 중이다.


우리 집의 ‘오디오’는 단 1분도 쉬지 않는다.


잠깐의 침묵은 곧 큰 사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주 짧은 침묵조차 허락되지 않는 집,


그게 지금 우리 집의 풍경이다.


지난 주말, 남편과 안방에서


거실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아이들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참 좋다.


하지만 언젠가 멈춰버릴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가장 감미로운 음악—내 아이들의 웃음.


세월이 흘러 이 소리가 우리 집에서 들리지 않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 생각이 스치자 모든 소리가 더 소중해졌다.


소음처럼 느껴지던 말들이


귓속에서 사탕처럼 달콤하게 녹아들었다.


변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내 마음 한 조각이었다.


아이들의 질문이 귀찮게 느껴지고,


“엄마, 같이 놀자”라는 말이 여전히 무겁게 들릴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는 후회와 자책을


평생 감당하며 살아갈 용기는…


나는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김밥놀이를 할 생각이다.


이불을 펼쳐놓고 스스로 햄이 되기도, 단무지가 되기도 하는


우리 딸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 우리랑 놀아요!” 하고 달려올 두 딸을 위해


지금부터 무엇을 하고 놀아줄지 생각해 본다.


기꺼이, 오늘을 즐겨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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