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료 250만원

저작권의 무게

by 주현정

첫 주문에 눈물 나게 기뻤고, 합의금 250만 원에 또 다시 눈물을 흘려야 했다.


“나도 남들 다 하는 온라인 쇼핑몰, 한번 해보겠어.” 월 천도 쉽게 번다는 유튜버들이 넘치던 시절, 나도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그러나 컴퓨터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 막혀 결심만으로 2년이 흘렀다.


‘정말 월천 벌 수 있을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면 뭘 팔아야 하지?’

수십 가지 고민을 하며 시간만 흘러갔다.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나에겐 여유로운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막상 시간이 생기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들이 하원하기 전까지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남편 월급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당당하게 돈을 벌고 싶었다. 나도 월급 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시작하는지도 몰랐기에, 일단 배우기로 했다. ‘10분이면 사업자 내고, 쇼핑몰 주인 된다’는 영상들 수십 개를 돌려봤다. '한글로 설명해 주는데 왜 나는 못 알아듣는 걸까? 너무 부족한 걸까? 나는 못하는 사람일까?’ 유투브를 보면 볼수록 자신감은 바닥으로 치닫았다.


10분이면 된다던 사업자를 내는 데 두 달이 걸렸다. 내 눈높이에 맞는, 진짜 친절한 유튜버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겨우 사업자를 냈고, 나도 사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그날은 마치 내가 CEO가 된 날 같았다. 온 동네에 자랑하고 싶을 만큼 고무적인 날이었다. 그렇게 내 디지털 노마드의 꿈은 시작됐다.


이제부터는 제품을 어떻게 올리는지를 공부해야 했다. 도매몰에서 가져온 상품을 내 쇼핑몰에 올리면 된다고 했다. 쉽다고들 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몰에는 하나둘씩 상품이 쌓이기 시작했다. 주문은 없었지만, 컴퓨터로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뿌듯했다.


드디어, 첫 주문이 들어왔다. 무슨 첫사랑보다 애틋했던 고객. 마진은 500원도 안 되는 상품이었지만, 그날 나는 남편에게 밥을 샀다. 마치 몇 백만 원을 번 기분이었다. 그 후로 주문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더 많은 도매몰을 뒤졌고, 팔릴 만한 물건은 모두 내 페이지에 올렸다. 카테고리도 없었다. 말 그대로 ‘잡화점 쇼핑몰’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나는 평소처럼 카페에서 새 상품을 올리고 있었다. 새로운 도매몰을 발견한 기쁨에 설레고 있었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왠지 모르게, 받아야 할 것 같은 전화였다. “서부경찰서 형사계입니다. 저작권 위반으로 접수가 돼서 조사받으셔야겠습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일하던 노트북을 카페에 그대로 두고, 그 길로 경찰서로 향했다.


형사계.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압도적인 공포감이 몰려왔다. 조사실에는 형사와 나, 단둘뿐이었다. 형사는 접수된 내용을 읽어주었고 나는 그제야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도매몰에서 별 의심 없이 가져온 상품 중 하나가 문제였다. 그 상품의 주인은 내게 판매 허락을 한 적이 없었고, 저작권 침해로 나를 고소한 것이었다. 형사가 조용히 귀띔해 주었다. “합의금을 노리는 경우도 많아요.” 나는 재수 없게 걸려든 기분이었다. 하지만 명백한 나의 잘못임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합의하면 사건은 끝납니다. 아니면 민사로 넘어가서 장기 싸움이 됩니다.” 대화가 끝나고, 의자에서 일어나려는데 다리가 풀렸다. 어떻게 다시 카페로 돌아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카페로 돌아와, 떨리는 손으로 고소인의 번호를 눌렀다. 부슬비가 내리던 거리에서,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무언가가 내 뺨에 흘렀다. 억울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상대는 차가웠고, 단호했다.


합의금은 250만 원. '마진 몇백 원짜리 상품, 몇 개 팔아본 게 다인데 지금 당장 어디서 그런 큰돈을 마련하나' 하늘이 노랬다. 돈이 벌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는데 시작과 동시에 이렇게 큰 수업료를 내라니...


한껏 상기된 내 얼굴을 보고 남편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야?” 사실을 들은 남편은 예상 밖의 말을 건넸다. “그 정도 돈으로 배웠다 생각하자. 그 정도면 우리 통장에 있어. 그냥 주고 말자. 더 큰돈 들인 것도 아니고, 여보는 잘하고 있어. 그 돈으로 배웠으면 된 거야.” 순간,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편이 있다는 것이 든든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울면서 고소인에게 전화하지 않았을 걸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다시 전화를 했다. 합의금을 조금이라도 깎고 싶었다. 나이 든 아줌마가 호소하면 조금의 선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단호했다. 그렇게 나는 250만 원짜리 수업을 받았다. ‘형사계’라는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이벤트와 함께.


그날 이후, 나는 훨씬 신중해졌다. 상품 하나를 올릴 때에도, 저작권과 출처를 먼저 확인한다. 함부로 ‘남들도 한다니까’라는 말에 휩쓸리지 않는다. 250만 원은 비쌌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중요한 것을 배웠다. ‘나는 못해’라고만 생각하던 나도 할 수 있었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처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직도 내 쇼핑몰은 작고 느리지만, 그 안엔 내 시간과 노력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내가 스스로 증명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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