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우울, 술로 버틴 나

아이의 말 한마디에 금주

by 주현정

모든 걸 잊기 위해 찾았던 술.

그러나 일곱 살 딸아이의 한마디가 내 삶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2022년,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금주를 선언했다. 20년 지기 친구였던 술과의 이별이었다. 한 잔의 위로보다 더 소중한 것이 내게 생겼기에, 기꺼이 그렇게 했다.

미운 네 살과 더 미운 일곱 살, 두 아이의 주 양육자인 나는 육아 우울증의 초입에 서 있었다. 어떤 방법을 써도 나아지지 않는 무력감에 하루하루 지쳐갔다. 설거지를 하며 울고, 치워도 치워지지 않는 집을 보며 또 울었다.

어느 날, 빨래를 개다가 문득 창밖을 보았다. 한없이 평화로운 하늘과 바람이 부러웠다. 나는 여기서 숨 쉬는 것조차 벅찬데, 저 하늘은 왜 저리도 평온한지. 9층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모든 고통이 끝나지 않을까.” 다행히 겁이 났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위태로운 나날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육퇴 후, 불도 켜지 않고 어스름한 달빛에 기대어 식탁에 앉았다. 냉장고 속, 항상 준비되어 있던 소주 한 병을, 그리고 생라면 하나를 준비했다. 라면을 끓일 힘은 내게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곤 생각을 멈춰줄 핸드폰하나. 마냥 웃을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을 맞추고 한잔 두 잔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병이 두병으로 세병으로 늘었다. 그 시간만이 오롯이 나를 쉬게 해주는 것이라 착각 속에 지냈다.

엄마가 되면서 내 친구들은 하나둘 멀어져 갔다. 대신 ‘누구누구 엄마’가 되어, 아이 친구 엄마들과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딸의 친구가 집으로 초대를 했고, 아이들은 눈밭의 강아지처럼 신나게 뛰어놀았다. 우리는 식탁을 푸짐히 차리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우리의 술자리. 나의 시작은 소맥이었다. 목 넘김이 시원했다.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몇 잔을 연거푸 마셨고, 나는 육아로 쌓인 감정을 쏟아냈다. 서로의 고단함을 나누며 우리는 위로받았다. 그날의 술은 유독 달게 느껴졌다. 그리고, 블랙아웃.

눈을 떴을 때, 큰딸이 나를 쓰다듬고 있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였다. 남편은 얼음보다 차가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날의 기억은 없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서웠다.

딸이 말했다. "엄마가 숨을 쉬는지 몰라서, 계속 코에 손을 대봤어. 자다가도 걱정돼서 자꾸 깼어. “ 해가 뜨는 걸 보고는 아빠에게 달려가 울면서 말했다고 했다. 엄마가 잘 자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작디작은 일곱 살 아이가 밤새 나를 지켰다. 내가 지켜야 할 아이에게 도리어 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숨고 싶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그날, 나는 남편과 아이들 앞에서 진심으로 선언했다.

"엄마, 이제부터 술 끊을 거야.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모습으로 살지 않을 거야."

그날 이후, 나는 아이들이 잠들기만을 기다리는 삶을 멈췄다. 이제는 그 숨결을, 부드러운 볼을, 볼록한 배와 실룩이는 엉덩이를 온전히 느낀다. 냉장고에서 위로를 찾던 나는 이제 없다. 차가운 소주잔 대신, 따뜻한 아이 손을 잡았다. 그 손의 온기가 내 마음을 덮고, 우리 집 공기를 다시 밝혀주었다.

이제 나의 밤은 혼자가 아니다. 아이들의 웃음과 숨결, 온기가 내 마음을 진하게 적신다. 냉장고 속에서 찾던 위안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아이들의 작고 따뜻한 손이 놓였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내 삶을 다시 빛나게 해 주었다.

이제는 안다.

잠시의 위로는 내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진짜 위로는 차가운 술잔이 아니라, 내 곁에서 숨 쉬고 있는 따뜻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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