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이, 나쁜 아이는 없다
"매일같이 터지는 잔소리 폭탄. 하지만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왜였을까?"
혼내도 소용없던 아이들이 어느 날 달라졌다.
그 시작은 ‘기다림’과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학기 초가 되면 어김없이 선생님들 사이에 눈치 전쟁이 벌어졌다. 조금이라도 괜찮은 반을 맡기 위한, 조용한 신경전이었다. "그 반은 말썽쟁이 반이라 힘들어요. 두 반 연속으로 그런 반을 맡을 순 없어요." 회의 시간마다 심심찮게 들리는 불만에 원장은 늘 난감해했다.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도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 반이 하고 싶었다. 이른바 '골통'들을 길들이는 건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
집중 못하는 아이, 숙제 안 해오는 아이, 노력은 보이는데 성적은 안 나오는 아이, 다양한 아이들이 있었지만, 학원조차 포기한, 진짜 골칫덩이들은 속이 타들어갈 만큼 힘들었다. 학기 초마다 그런 반이 걸리지 않기를 간절히 빌곤 했다.
새 학기엔 선생님들만 긴장하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 역시 어떤 선생님이 걸릴지 촉각을 곤두 세웠다. 좋아하는 선생님이 걸리길 바라며 조용히 기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운명이 나뉘고, 새 학기가 시작됐다. 내 손에 들어온 명단을 확인한 순간, 나는 탄식했다. "이번 해는 망했구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20년쯤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좋은 반, 나쁜 반은 없다는 것. 나와 잘 맞는 아이, 아닌 아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어떤 반이든 꼭 말썽쟁이는 있었고, 평범한 아이들이 대다수였고, 아주 뛰어난 아이들은 소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무리 문제아라도 우리 반이 걸리면 몇 달간은 조용했다. 키 큰 여자 선생님, 숙제 안 해오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무서운 선생님이라는 소문이 이미 퍼져 있었던 덕이었다. 그 소문은 나를 한동안 편안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아이들은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말썽쟁이들. 초보 시절엔 벌도 세워보고, 원장실에 보내보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어떤 방법으로도 통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었다. 사춘기의 아이, 엄마도 포기한 아이. 학원 전기세 내주러 오는 아이. 학원이라는 곳은, 정말이지 세상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었다.
중2 반 수업 중이었다. 한 아이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해 시험지를 구겨 바닥으로 던졌다. “다시 주워.” 조용히 말했지만, 아이는 완강했다. 실랑이는 길어졌고, 교실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수업은 엉망이 되었고, 결국 원장이 교실까지 오게 되었다. 그 아이는 끌려가다시피 교실을 나갔다. 하지만 이제 그만 집에 가라는 말에도 고집을 피우며 서있었다. 1시간을 넘게 고집을 피우던 아이 덕분에 결국 엄마까지 호출되었고, 몇 시간 실랑이 끝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 아이는 엄마도, 원장도, 나도 두 손 두 발 들게 한 첫 번째 학생이었다.
그렇게, 힘과 권위로 아이들을 통제하려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단 하나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 20년 동안 꾸지람으로 변한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기에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이 변한 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비결은 아주 단순했다. 학기 초 명단을 보고 자리 배치를 하면서 가장 힘든 아이들을 내 시선이 가장 잘 닿는 곳에 앉혔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집중했다. 그 아이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책을 구겨서라도 가져오면, 과제를 미흡하게라도 해오면, 엉망인 자세를 잠시라도 고치면, 나는 그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노력해 줘서 고마워. 글씨는 진짜 예쁘다. “ 작은 칭찬과 고마움의 표현은 그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렇게 ‘골통’은 어느새 ‘내 편’이 되어 있었다.
전업주부가 된 지금, 딸들을 키우며 그 시절을 종종 떠올린다. 잔소리하고 혼내야 할 상황이 넘쳐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꾸지람으로 변하지 않았다. 작은 행동도 놓치지 않고 칭찬해 주는 것. 그것이 아이를 바꾸는 유일한 무기였다. 애정과 관심이 있는지를, 아이들은 늘 확인하고 있었고, 그 확인이 끝나면 비로소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결국 아이들이 바라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가 바라는 건 같았다.
잔소리보다 기다림, 벌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
그 작은 따뜻한 관심이 아이를 바꿨다.
좋은 아이, 나쁜 아이는 없었다. 다만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길이 필요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