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가요?
병에 걸린 것 같다. 촉이 왔다. 그것도 아주 몹쓸 병. 이름하여, 지랄병.
머릿속에 비상경보가 울렸다. “별일 아닌데 아이를 너무 쥐 잡듯 잡는 거 아니야? 당신… 그날이야?” 남편의 말에 뜨끔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가장 가까운 가족들은 오죽할까. 갑자기 울적해지고, 작은 일에도 눈물이 터졌다. 또 어느 순간에는 불같이 화를 내는 나. 아, 그날이 다가오고 있구나.
“당신은 감정 진폭이 너무 커서, 아이들이 혹시 상처받을까 봐 겁이 나.” 이런 날은 하루 종일 피곤하고 짜증이 솟구쳤다. 아이들은 밀쳐내면 낼수록, 기가 막히게 그걸 알아채고 더 달라붙었다. 놀아달라는 말이 짐처럼 느껴져, “엄마 피곤해. 엄마 힘들어…”를 연발했다. 그런 나를 10년째 지켜본 남편이 말했다.
“애들이 불안해서 그런 것 같아. 평소에 엄마랑 너무 다르니까. 안정적이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닐까 싶어. 촉은 좋은데 방법은 모르는 아이들이라, 여보한테 더 붙는 것 같아.”
촌철살인이었다.
결혼 5년 차쯤, 남편이 조심스레 건넸던 말이 떠올랐다. “여보, 우리 한 달에 한 번은 진짜 크게 싸우는 거 알아?” 맞는 말이었다. 생리 전 일주일, 나는 호르몬의 노예가 되었다. 몸은 무겁고 기력은 바닥인데,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꾸역꾸역 해내며 울화가 치밀었다.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어?’
‘집은 치워도 치워도 왜 이러니?’
지겹도록 들었던 친정엄마의 말들이 내 입에서 하나둘 흘러나왔다. 마치 ‘엄마 백과사전’이라도 있는 것처럼. 신기할 만큼 똑같은 말들이.
그런 날은 나의 모든 감각이 깨어난다. 평소에도 예민한 후각은, 그날만 되면 더 날카로워진다. 물비린내, 화장실 냄새… 참을 수가 없다. 결국 대청소가 시작된다. 냄새 하나 허락하지 않는 전쟁 같은 청소. 당연히 체력은 바닥이 된다. 그렇게 소파에 나자빠지면, 아이들이 기회를 포착했다. 또 시작되었다, 놀아줘. 놀아줘.
두 아이를 키우는 우리 집은 기본 옵션 값이 지저분한 상태였다. 어떤 날은 눈감고 넘길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 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내 잔소리에 시달렸고, 남편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보, 다 먹은 비닐은 왜 냉장고에 그대로 넣어둬? 그렇게 두면 누가 치워?”
평소엔 무심히 넘기던 일이, 그날만은 용납이 안 됐다. 그렇게 가족들은 어느새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 있었다.
나는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명상도 하고, 감정일기도 쓰고, 마음의 숨구멍을 찾아보려 애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생리가 다가오는 걸 느낄 때마다 다짐했다. 이번엔 다르게, 이번엔 이겨보자. 하지만 번번이 졌다. 그리고 생리가 시작되면 거짓말처럼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았다. 화가 났던 이유도, 울컥했던 순간도 희미해졌다. 그리고 나는 말없이 가족에게 미안해졌다.
“엄마는 우리 딸들 덕분에 이렇게 행복해.”
“여보, 내가 무슨 복에 당신 같은 사람 만나 이렇게 잘 살까?”
이 무슨 롤러코스터 같은 말이란 말인가. 조울증이 이렇게 심할 수도 있을까. 병원에 가봐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다. 그러니 아이들의 불안지수가 높아질 수밖에.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호르몬의 노예가 아니라, 감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기분의 기복에 휩쓸릴 때도 있지만, 그것조차 나의 일부라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당신이 노력하는 게 다 보여. 자려고도 해보고, 글도 쓰고, 책도 보고, 명상도 하잖아. 그래서 뭐라 못하겠어. 조금만 작게 표현해주면 좋겠는데… 그 말을 차마 못하겠어. 당신이 애쓰는 걸 아니까. 사랑은 연약함을 견뎌주는 거래. 부족한 걸 조용히 감내하는 거지.”
그 말에, 또 눈물이 주르륵.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지랄을 했을까?
누구나 흔들릴 때가 있을 것 이다. 이유 없이 날카로워지고, 뜬금없이 슬퍼지기도 한. 그럴 땐 내 감정에 죄책감을 덜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미안해’보다 ‘고마워’를 먼저 떠올려보려 한다. 내 마음을 묵묵히 기다려주는 그들에게 덜 미안하고, 더 고마운 사람이 되고 싶다. 완벽하진 않아도, 내 감정의 진폭까지 껴안으며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