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롤 속에 갇힌 아이들, 그리고 우리.

스마트폰 중독

by 주현정

한 유튜버가 인공지능에게 물었다.

“네가 만약 악마라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니?”

AI는 대답했다.

“아이들이 생각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글을 읽기도 전에 스크롤을 내리는 것을 훈련시키겠습니다.

그걸 자유라 믿게 만들고, 감히 의심조차 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흘렀다.

그리고 곧, 내 머릿속에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카페에서였다. 네 살쯤 된 남자아이와 젊은 부부가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자리에 앉기도 전부터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고, 아이는 고개를 들어 부모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이는 조용히 케이크를 먹었다. 불편해 보이지도, 속상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익숙한 듯한 표정이었다. 마치 ‘부모란 원래 저런 존재’라 믿는 듯, 의심 없는 얼굴로.

그 부부는 분명 아이를 사랑할 것이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카페에 왔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스마트폰에 얼마나 중독되었는지는, 아마 인식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주말이니까, 쉬고 싶었을 테니까. 얼핏 엿본 그들의 폰 화면엔 SNS와 게임이 열려 있었다. 아이보다 중요하진 않지만, 너무 익숙해져 버린 습관처럼. 그들의 시선은 단 한 번도 아이의 눈을 오래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도, 부부도 마음이 아팠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왜 모두가 스크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까?

왜 그것을 ‘자유’라 믿게 되었을까?


AI는 알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콘텐츠에 오래 머무는지. 그에 맞춰 나에게 딱 맞는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던져준다. 섬뜩하리만큼 예리하게,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그리고 내 손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이거 하나만 더.” 그렇게 시작된 영상은 곧 더 자극적인 영상들로 이어지고, 나는 또 그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그 안에서 지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고 착각한다. 자유로웠노라 믿으며.


나는 자주 본다. 한 손엔 아이의 손을, 다른 손엔 휴대폰을 든 부모들. 눈은 아이가 아닌 화면에 고정되어 있다. 카페에서도,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화면 속을 바라보며, 서로의 얼굴은 잊는다. 사진을 찍고, 더 예쁘게 보정해서 업로드하기 바쁘다. 지금의 나를 자랑하고 싶어서. 더 많은 ‘좋아요’를 받고 싶어서. 우리는 더 큰 눈, 더 작은 얼굴, 더 날씬한 몸을 좇는다. 그렇게 필터 속 이미지가 ‘진짜의 나’가 되고, 거울 속 나는 점점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자존감은 조금씩, 조용히 무너져간다.


내가 중심이 아닌 삶. 누군가의 시선을 따라가는 삶. 더 예쁜 누군가, 더 완벽한 누군가를 흉내 내며 살아가는 삶. 이런 삶이 정말 나의 것일까?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냥 따라가면 되는 걸까? 감히, 의심조차 하지 못한 채.


기술의 발달은 분명 많은 편리함을 안겨주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도, 내 아이들도 그 영향 안에 있다. 학교에선 태블릿으로 수업을 하고, 내 딸들조차 스마트폰을 ‘갖고 싶은 로망’으로 여긴다. 나는 이 흐름을 온전히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 흐름에 휩쓸려 가장 소중한 것들까지 놓칠 순 없다.


생각을 멈춘 채, 습관처럼 스크롤을 내리는 삶 속에서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잃고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지만 확실하다. 적어도 내 아이들만큼은 이 속도전 속에서 지켜내는 것. 눈을 맞추고, 말을 걸고, 함께 걷고 웃는 것. ‘진짜의 나’로 살아가는 모습을, 나부터 보여주는 것. 그 작은 노력이 핸드폰 속이 아닌, 생각할 수 있는 삶으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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