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아 더 아픈 아이.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모습이, 여섯 살 딸의 얼굴 위로 겹쳐졌다.
동네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유치원도 빠지고 참석한 자리에서, 나는 속으로 울어야 했다.
억수같이 퍼붓는 비조차 얄미웠다. 그 엄마의 그 딸.
아파트로 이사 온 후 처음 사귄 친구였다. 같은 유치원이지만 다른 반. 친구 엄마는 나와 코드가 잘 맞았고, 우리는 종종 서로의 집을 오가며 아이들을 함께 놀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엄마가 생일 초대를 했다. 유치원을 빼고, 큰 키즈카페를 빌려 프라이빗 파티를 열 거라며 꼭 와달라고 했다. 딸에게 물었더니,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유치원도 빠지며 가는 생일 파티에 얼마나 기대가 컸을까?
파티 당일, 우산도 소용없는 폭우가 쏟아졌다. 무료 주차가 두 대뿐이라는 말에 괜히 우리가 걸어갈게요라는 오지랖을 떨어, 홀딱 젖은 채 도착했다. 수많은 새로운 엄마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나는, 그렇게 미련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같은 반 친구들이 우글우글한 그 공간에서, 우리 딸은 외로워 보였다. 혼자 다른 반이었던 딸은 ‘끼리끼리’ 속에 끼지 못했다. 자리를 마련한 친구 엄마만 아는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 우리 딸 좀 챙겨줬으면 했지만, 여섯 살 아이들에게 그런 배려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괜히 혼자 잘 놀고 있는 딸에게 가서, “같이 놀자고 해봐” 하고 독촉했다. 정작 어른인 나조차도 그 엄마 무리 속에 섞이지 못하고 있었으면서.
자기와 죽이 잘 맞는 아이들과만 삼삼오오 모여 놀 뿐, 우리 딸에게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딸은 구석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신경이 쓰여 엄마들과의 대화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딸에게 다가가 우리는 둘이서 미용실 놀이를 시작했다. 우리의 웃음소리에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하나둘 몰려들었고, 잠시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했다. 슬쩍 빠져나오면, 또다시 우르르 흩어졌다. 다시, 나와 딸 둘만의 파티.
그만 나올까 싶어 딸에게 물었다. “그냥 집에 갈까? 우리 둘이 카페 갈까?” 딸은 고개를 저었다. “싫어.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 하지만 선뜻 다가서긴 어려워 보였다. 딸은 특별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고 했다. 같은 반은 아니지만 종종 만나 놀았기에 친하다고. “그럼 같이 가서 놀자고 해봐.” 딸은 그 아이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다른 친구랑 잘 놀고 있잖아. 끼기 힘들어...” 그 말에 마음이 아팠다. 함께 시켜 먹은 점심은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 역시 그 많은 엄마들 사이에 어울리지 못한 채, 파티는 그렇게 끝났다.
돌아오는 길, 조심스레 물었다. “재미있었어?” 딸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응, 엄마. 엄청 재미있었어.” 그 웃음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아— 친구 관계까지 내가 어찌해줄 수 없는 일이구나. 나도 그 엄마들 속에서 아웃사이더였던 걸. 그 엄마에 그 딸이구나. 그날 밤, 속상한 마음을 신랑에게 오래도록 털어놓았다. 내 마음을 유일하게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남편에게.
큰딸과의 모든 것이 어려웠다. 친구들도, 그 친구들의 엄마들도, 관계 하나하나가 모두 부담스러웠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탓일까. 내가 뭔가를 실수하면, 그 이미지가 딸에게도 덧씌워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나는 방법을 몰랐다. 아주 어색하게, 내가 아닌 모습으로 억지로 이어가던 관계들. 딸이 힘들지 않도록 내가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딸이 고민하지 않도록, 어려운 상황을 겪지 않도록. 하지만 그것은 결국, 딸에게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딸을 마치 로봇처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온실 속의 화초는 약하다. 바람을 맞지 못해 뿌리를 튼튼히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바람은 꽃을 흔들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뿌리는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그래서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딸에게 부는 산들바람조차 막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 내 딸은 더 연약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바람을 맞고 흔들리는 딸을, 담담히 안아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엄마가 아니라, 딸이 스스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엄마.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그 곁에, 든든히 서 있는 엄마이고 싶다.
그 엄마의 그 딸. 그래, 닮아서 더 아픈 우리였지만, 그래서 더 이해하고, 더 단단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