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제일 좋아요 라는 말의 유통기한

매일 들여다보는 사진첩의 한 장이 될 오늘

by 주현정

“난 아빠랑 결혼할 거야.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이 말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안 순간, 우리 부부는 오늘을 미친 듯이 사랑하기로 했다.

아이의 마음에 우리가 가장 큰 존재로 남아 있는 오늘, 이 찬란한 하루를 어떻게든 오래 붙잡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이, 우리 아이 마음에 우리가 가장 큰 날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자립을 배우고, 친구와 연인,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아이의 마음속에 우리의 자리는 점점 작아질 것이다. 그래서 바로 오늘이,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다. 지금 이 찰나의 순간이 가장 행복한 날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주말. 하지만 우리는 별 계획이 없었다. 10년 가까이 아이들과 주말마다 어딘가를 가며 놀았더니, 더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뭐 할까? 서로 눈치만 보며 일단, 차에 올랐다. 날은 덥고, 마땅한 곳도 없고,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은 말했다. “오늘은 우리 뭐 해요?” 그래서 또 백화점으로 향했다. 에어컨이 시원하고, 깨끗한 화장실에, 먹을 것도 있고, 간단한 놀이공간도 있는 우리의 안정적인 피난처. 그렇게 평범한 하루가 시작됐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오늘이, 우리 아이들 마음에서 우리 자리가 가장 큰 날일 거야. 엄청난 날이지.”

“엄청난 날? 그냥 할 일 없어서 백화점 가는 날인데?” 나는 웃으며 반문했지만,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우리는 아이가 아기였을 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시기만 지나면 좀 편해질 거야.” 하지만 육아는 항상 다음 단계의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춘기를 겪는 부모들은 더 고통스럽다고 말했고, 우리는 그렇게 또다시 “이 또한 지나가리”를 되뇌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들여다보는 사진첩. 작고 귀여운 그 모습이 벌써 그립다. 그런데 왜 깨닫지 못했을까? 사진 속 그 오늘이, 엄청난 날이었음을.


지금, 우리 아이들의 마음엔 부모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매 순간 우리를 찾고, 기대고, 사랑을 말해준다. 그러나 곧 그 마음속엔 다른 이들이 하나둘 방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주말이 부담스럽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한때는 주말이 오롯이 나를 위한 날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해야 하는 날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제 이런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니. 생각만으로도 벌써 마음 한켠이 쓸쓸해졌다.


길에서 어른들을 만나면 항상 같은 말을 듣는다. “지금이 제일 좋을 때야.” 그 말이 들릴 땐, 막상 눈앞의 고단함 때문에 잘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은 벌써 친구, 친구를 입에 달고 산다. 이제 아이들과 보내는 이런 주말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괜스레 센치해졌다.


‘그럼 그때 우리는 뭐 하지?’ 아이들이 친구를 만나러 간 사이, 우리 둘이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 내 걱정에 남편이 웃으며 말한다. “우리 둘이 놀면 되지 뭐. 걱정 마.”

하지만 걱정스러웠다. 우리의 거의 모든 대화가 아이들 이야기고, 대부분의 시간이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니, 그들이 없는 시간의 공허함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아이들은 오늘도 세상모르고 신이 났다. 편의점 가자는 말에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제일 좋아!” 외쳤다. 편의점만으로도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는데. 이 말에 정말 유통기한이 있다니, 먹먹한 마음을 감출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다짐했다. 기한이 끝나기 전까지, 이 소중한 말들을 있는 힘껏 즐기기로. 아이들이 우리를 원할 때, 마음껏 안아주고, 마음껏 뽀뽀해 주고, 마음껏 사랑을 나누기로.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이 말,


“엄마, 아빠가 제일 좋아요.”

그 말의 유통기한이 끝나기 전에, 실컷 누려보자.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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