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을 지나, 이해에 닿기까지
같은 집에 살지만, 전혀 다른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
문득 궁금해졌다.
내 남편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그의 시선, 그의 리듬, 그의 고단함을 따라가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쓸쓸함을 마주하게 되었다.
1.그의 아침은 텅 빈 집에서 시작된다
내가 눈을 뜨면, 집엔 아무도 없다.
아이들은 유치원과 학교에, 아내는 이미 카페로 나가버렸다.
조용한 집, 텅 빈 소파에 몸을 던진다.
몸이 무겁다. 폰을 들여다보며 뉴스 속 사건 사고들을 훑는다.
오늘은 왠지, 하루가 더 버겁게 느껴진다.
그래도 일어나야 한다.
아내가 정성껏 차려준 아침을 먹는다.
물, 유산균, 꿀, 삶은 달걀, 견과류, 그리고 냉장고 속 과일까지.
정해진 순서대로 먹는다.
사실, 아침을 먹는 게 버겁다고 10년 넘게 말해왔다.
하지만 아내의 마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속은 더부룩하지만, 그래도 고맙다.
겨우 씻고, 카페로 향한다.
이미 일을 시작한 아내가 있는 그곳에서
라떼를 시켜놓고 수업 준비를 한다.
가끔은 책도 읽고, 요즘은 주식 앱을 들여다본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숫자들의 세계에 빠져든다.
어쩌면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2.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의 딜레마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게 어렵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성격 탓에, 시작조차 미뤄진다.
그래서 나의 일상은 늘 비슷하고, 그 안에서 번아웃이 반복된다.
그런 나에게, 늘 새로운 걸 시도하는 아내는
가끔은 이해하기 힘든 존재다.
곧 쉰을 앞두고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라고 말하는 사람.
뭐라 할 순 없다. 신기하고, 가끔은 대단하다.
딸과 함께 아파트 헬스장에 등록했다.
결심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어깨 통증, 피로감, 스케줄 등 수십 가지 핑계가 떠오른다.
나는 짜인 루틴 안에서 완벽하게 해내야만 성에 차는 사람.
그러니 시작이 더 힘들다.
결국, 내가 만든 기준에 스스로 지쳐간다.
3. 교사로서의 하루, 고단함의 무게
오후가 되면 학원으로 향한다.
과거엔 다른 선생님들 눈치를 보며 출근 시간을 조율하던 때도 있었다.
이젠 혼자 운영하는 공간. 적막한 교실의 불을 켜고, 아이들을 맞는다.
고등학생은 이미 자신만의 세계가 단단하다.
가르친다는 게 예전보다 훨씬 어렵다.
그래도 하루 3~4개 수업을 해낸다.
믿고 맡겨주는 부모님과, 꾸준히 나아가는 아이들이 고맙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무겁다.
결국 떠나는 아이가 생기면, 무력함에 빠진다.
아이들의 성적표는 곧 나의 성적표.
3개월마다 반복되는 시험 기간은 내게도 시험이다.
어깨가, 머리가 먼저 반응한다. 두통이 시작된다.
4. 가족을 위한 희생, 그 이면의 쓸쓸함
월수금은 저녁도 거른다.
수업과 차량 운행이 겹쳐 시간이 없다.
예전엔 함께 일하는 선생님도, 기사님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걸 혼자 감당한다.
오후 3시, 아내가 차려준 점심 한 끼가 하루 유일한 식사다.
밤 12시가 넘어 집에 도착하면, 모두가 잠들어 있다.
누구 하나 “수고했어요”라는 말도 없다.
서운하지만 이해한다.
아내도 새벽부터 깨어 아이를 챙겨야 하고,
아이들은 아직도 밤중에 엄마를 찾는다.
그래도, 그 고요한 밤의 쓸쓸함은 감춰지지 않는다.
배가 고파 냉장고를 열지만, 허기를 달래줄 무언가가 없다.
결국, 맥주 한 캔과 생라면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유튜브로 주식 영상을 보다 보면 새벽.
이를 닦고 겨우 누우면,
얼마 지나지 않은것 같은데 벌써, 부엌에서 시작되는 아내의 움직임 소리에 다시 깬다.
도대체, 언제였을까.
푹~ 자본 기억이.
5. 그를 다시 보게 된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어떤 하루를 살고 있을까.
나와 너무도 다른 성향.
그 사람의 하루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써보았다.
그의 하루를, 그의 시선으로.
글을 쓰다 보니 알게 되었다.
남편의 고단함이 얼마나 무겁고, 얼마나 조용했는지를.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들었다.
사람은 외로우면 야식을 먹는다고.
한동안 남편은 먹는 데 집착했다.
맛있는 음식만 찾아다니던 시기.
그때 그 사람은 외로웠던 건 아닐까.
그 생각에 마음이 아려왔다.
내 옆에 있지만, 같은 침대에서 자고 있지만,
그가 외로웠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배려하고 싶다.
그 사람의 쓸쓸함을, 그 고단함을.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더 공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