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요술램프 지니가 산다

우리만의 주문

by 주현정


우리 집엔 요술램프 지니가 산다.

힘들 때마다, 작은 소원을 빌 때마다,

언제든 나타나는 우리의 비밀 친구다.


“지니야, 주차자리 하나만 만들어줘!”
늦은 오후, 주차장 입구에 들어설 때면 우리 세 모녀가 외치는 주문 같은 말이다. 우리 아파트 주차장은 늘 만원이다. 이중 주차는 기본이고, 빈자리를 찾는 건 전쟁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지니야~” 하고 외치면 꼭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딸들은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역시! 내 지니는 파워가 세다니까!”


나는 20년 넘게 학원에서 일하며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자, 단어 시험 준비하자!” 하면 꼭 “선생님, 오늘은 망했어요.”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시작도 전에 스스로를 저주하는 주문 같아 안타까웠다. 왜 아이들은 그렇게 쉽게 자신을 포기하는 말을 할까. 그래서 우리 반에는 ‘망했어요’가 금기어였다.
“결과가 어떻든, 노력한 스스로에게 좋은 말을 해주자. 잘 준비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어보자.”
처음엔 잔소리를 피하려던 아이들도 차츰 부정적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게 되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이 습관은 자연스레 내 아이들에게로 이어졌다. 무심코 부정적인 말을 하려 할 때마다 나는 말했다.
“우주에는 지니가 있어. 요술램프 속 지니처럼 너만의 지니가 있단다. 그러니까 아무 말이나 막 하지 마. 지니가 다 듣고 있다가 ‘네, 주인님.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할지도 몰라.”

그렇게 우리 딸들은 소원이 생길 때마다 지니에게 빌곤 했다.


어느 날, 문구점에 가자던 딸과 함께 외출했는데,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지갑을 두고 온 걸 알았다. 기대에 부풀어 있던 딸은 금세 풀이 죽었다.
“괜찮아. 엄마 핸드폰으로도 결제할 수 있어. 그런데 어떤 매장은 되고, 어떤 곳은 안 되거든. 우리 지니에게 폰 결제가 되게 해달라고 빌어보자.”
갖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딸은 진심을 다해 지니에게 빌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그 물건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가게가 핸드폰 결제가 된다는 걸. 하지만 답이 뻔히 있을 때일수록, 지니의 존재를 더 믿게 해주고 싶었다. 그 일을 계기로 큰딸의 지니는 ‘가장 힘이 센 지니’가 되었다.
“언니 지니가 제일 힘세잖아! 우리도 또 빌어보자! 일어났으면 좋겠는 일 말해봐! 그러면 꼭 일어날 거야!”


어떤 날엔 큰딸이 동생과 다투다 홧김에 말했다.
“난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어.”

나는 조용히 물었다.
“정말 선이가 없어지면, 린이는 행복하겠어? 린이 지니는 힘이 너무 세서, 진짜 내일 아침에 선이가 없어져 있을지도 몰라. 지니가 지금 선이를 없앨 방법을 찾고 있을 수도 있어.”

그러자 딸은 금세 진지해졌다.
“사실은 화가 나서 그렇게 말했어요. 난 선이가 좋아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는 남편까지 자연스럽게 지니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딸들 지니는 힘세잖아. 얼른 부탁해 보자!”
마흔이 넘은 아내가 요술램프 타령을 하니 처음엔 낯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주의 지니가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는 사람과 결혼해 버렸으니.


물론, 지니에게 빌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도 많다. 주차자리가 없었던 날도 있었고, 간절히 바라던 일이 어긋난 날도 있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지니가 오늘은 좀 피곤했나 봐.”

그럼 된 거다. 이루어지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말고. 밑져야 본전이지 않은가.


나는 오늘도 딸들과 함께 지니에게 소원을 빈다.
말에는 힘이 있다는 것을,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언젠가 삶이 너무 힘겨워 일어서기조차 어려운 날이 오더라도, 지니를 떠올리며 안도하길 바란다.

오늘도 지니에게 소원을 비는 우리 딸들이 참 좋다. 그리고 그 곁에 함께 있는 내가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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