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요가 생존기
첫 임신과 함께 요가를 시작한 지도 벌써 아홉 해가 지났다.
서른여섯, ‘노산’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는 컸다.
병원에서 권하는 검사는 모두 받았고, 100만 원이 넘는 검사도 망설임 없이 진행했다.
혹시라도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두려웠다.
그렇게 발을 들인 곳이 임산부 요가였다. 운동이라곤 학창 시절 헬스를 잠깐 해본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할인’이라는 말에 석 달 치 등록해 놓고 며칠 다니다가 그만둔 기억뿐. 당시의 운동은 건강이 아니라 날씬한 몸을 위한 선택이었고, 힘들면 언제든 미룰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내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를 위한 선택이었다.
요가원에 가득한 임산부들 속에서 나는 낯선 위안을 얻었다. 뱃속 아기가 함께 웃고 있는 듯했다.
“할 수 있을 만큼만 하세요.”
선생님은 늘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충실했다. 할 수 있는 동작도 일부러 몸을 사리며 조심스레 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지만,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출산은 의외로 순조로웠다. 다행히, 선배들이 겁주던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오는 고통’은 실감하지 못했다. 2017년 9월 4일, 3.68kg의 건강한 딸을 품에 안았다. 그 순간부터 정신없는 육아가 시작되었고, 요가는 머릿속에서 희미해졌다.
시간이 흘러 둘째가 18개월쯤 되었을 때,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모든 게 무기력했다. 나만 이렇게 힘든 것 같았다. 다른 모든 이들은 행복한 것만 같은 생각, 그 생각은 나를 더 깊은 어둠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남편도 고단했을 것이다. 학원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도 웃으며 반겨주는 이는 없으니.
그 무렵, 남편이 말했다.
“명상 한번 해봐.”
우울한데 무슨 명상이냐 싶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검색창에 ‘명상’을 쳐보았다. 대부분의 명상은 요가와 함께 이루어졌다. 그 길로 둘째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시 요가를 등록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석 달의 벽을 넘지 못했다. 새 요가복도 장만했지만, 첫 수업부터 좌절이 몰려왔다.
‘역시 난 유연하지 않아.’
‘저건 도저히 못 하겠어.’
아침마다 변명거리는 끝없이 떠올랐다. 비가 와서, 어제 술을 마셔서, 남편과 조조 영화를 보고 싶어서… 그렇게 두 번째 요가도 흐지부지 끝났다.
다행히 남편과의 오전 시간이 나를 살렸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이서 부산, 창원, 진해를 돌아다녔다. 맛집을 찾고, 좋은 풍경을 보며 웃었다. 내 우울증은 그렇게 서서히 사라졌다. 남편 덕분인지, 요가 덕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지 않은가. 어쨌든 나는 회복되었다.
그리고 지금, 내 인생 세 번째 요가가 진행 중이다. 출산과 수유, 육아로 망가진 자세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굽은 등, 비틀어진 골반,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사진 속에 담길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50대의 내 모습을 상상하자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래서 다시 등록했다. 이번에는 미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은 요가 2년 차. 아침마다 떠올리던 핑계는 사라졌고, 요가는 내 삶의 중요한 루틴이 되었다.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다.
이 모든 변화는 요가 덕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끝까지 나를 바꿔보겠다고 다짐한 나 자신 덕분이다. 나는 이제 나이 들어감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설렌다. 오십, 육십, 그 이후까지도 건강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준비를 나는, 지금 하고 있다. 요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