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이란 이름아래
좋아하는 엄마, 언니와 같은 안경을 쓰게 된 둘째는 그저 행복해 보였다.
단순한 도구일 뿐인 안경, 그런데 왜 엄마의 마음에는 미안함과 눈물이 겹겹이 쌓이는 걸까?
둘째가 안경을 쓰게 되었다. 이제 우리 집에는 안경 낀 딸이 두 명이다. 내 시력을 꼭 빼닮은 것 같아 마음이 쓰라렸다. 맑고 빛나던 아이들의 두 눈이 ‘엄마의 유전’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듯해 괜스레 눈물이 고였다.
아빠와 함께 안경을 맞추고 돌아온 둘째는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
“엄마, 나 어때요?”
품에 안겨드는 아이를 껴안으며 웃어야 했다. 나는 엄마니까. 하지만 어딘가 낯설었다. 두꺼운 렌즈 때문일까,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모습 때문일까. 남편이 “볼록렌즈라서 눈이 더 커 보여”라고 말했을 때,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학창 시절, 안경을 벗은 얼굴을 감추려 애쓰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혹시 우리 딸도 그렇게 느끼게 될까 봐 벌써부터 마음이 저려왔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도 비슷한 불안이 있었다.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말했다.
“왼쪽 네 번째 발가락이 안 보여요.”
그 한마디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매운 음식을 먹어서? 인스턴트 때문일까? 노산 탓일까? 후회의 조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행히 발가락은 세 번째 발가락 아래 접혀 있었을 뿐, 아이의 걸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첫 번째 걱정은 지나갔다.
그러나 첫째가 네 살 무렵, 시력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날도 참 많이 울었다. 남편은 시력이 좋았기에 안경은 분명 나의 유전자였다. 첫째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안경을 써야 했고, 나는 등원길마다 당부했다.
“친구들한테 안경은 절대 만지면 안 된다고 꼭 말해 줘야 해.”
둘째가 태어났을 때, 시력이 정상이란 말에 크게 안도했다. 아빠를 닮았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여섯 해를 편안히 지냈다. 하지만 작년 건강검진에서 의사의 말투가 심상치 않았다.
“좀 더 지켜보죠.”
그 말에 희망을 걸었지만, 결과는 오히려 더 나빴다. 첫째보다 더 두꺼운 안경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아이들 앞에서 울 수 없었기에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삼키고 또 삼켰다.
“요즘 기술 좋은데, 나중에 수술하면 되지.”
남편은 가볍게 말했지만, 내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엄마란 존재는 왜 이토록 모든 걸 자기 탓으로 여기는 걸까. 아이들의 안경 너머로 내 유전자가 비쳐 보일 때마다 미안함이 따라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안경 트리오’가 되었다.
내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아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는 것을 알기에 더 조심해야 했다. 걱정 섞인 표정 하나가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우리 천사들, 안경 쓰니까 꼭 똘똘이 스머프 같아. 진짜 반장 느낌 난다.”
“엄마, 나 그렇게 똑똑해 보여요?”
둘째의 해맑은 물음에 또 한 번 마음을 쓸어내렸다. 얼마나 똑똑해지려고 벌써부터 안경을 쓰는 걸까. 바람 많은 날에는 꽃가루를 막아주고, 먼지 많은 날에는 눈을 지켜주는 안경. 그 착한 도구가 이제는 우리 가족의 특별한 공통점이 되었다. 오늘도 우리‘안경 트리오’는 거울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