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다 더 강했던 이름, 엄마
엄마의 첫 번째 암, 그리고 완치. 그것이 끝이라고만 믿었다.
그렇게 몇 년을 엄마와 함께 지냈다. 나는 독립했고, 결혼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는 여전히 스스로 장만한 집에서 살아가셨다. 왕래는 있었지만 잦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갔다.
엄마는 자주 아프셨다. 다리도, 허리도, 안 아픈 곳을 찾기가 더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일을 쉬지 않았다. “쉬면 더 아파. 일을 못 하면 더 죽겠어.”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이었다.
“아프면 좀 쉬어. 계속 일하지 말고. 벌어서 뭐 할 거야? 죽을 때 싸 가려고 그래? 쓰지도 않는 사람이 뭐 하러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 그러면 엄마는 늘 웃으며 대답하셨다.
“돈이 좋아.”
그렇게 열심히 벌어 자식들에게 맛있는 것을 후하게 사줄 수 있어 좋다고 하셨다. 비싼 소고기도 마음껏 먹었다. 자식 입에 맛있는 것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느 부모에게나 행복한 일이겠지. 우리 엄마도 그런 보통의 엄마들처럼, 우리가 먹는 것을 좋아하셨다. “이제 그만 먹어야지. 다이어트해야 해.” 그러면 엄마는 꼭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건 살 안 쪄. 더 먹어.”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정아, 엄마 자궁경부암이래.” 엄마의 첫 암이었다. 병원에 자주 입원해야 했고, 요양병원에 오래 머물러야 했다. “이렇게 병원에 있으니까 보험료가 나와서 좋아. 아파도 좋은 거였네.” 돈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던 엄마의 말이었다. 엄마는 열심히 치료했고, 완치되었다며 좋아하셨다. “이제 괜찮대. 이제 괜찮대.” 그런 줄로만 알았다. 진실로, 진실로.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두 번째 암이 찾아왔다. 폐암이었다. 조선소에서 사용한 독한 약품들 탓이었다. 그래서 마스크를 꼭 써야 했던 것이었다. 고작 한 달에 300만 원, 그게 엄마의 목숨 값이었다니.
하지만 우리 엄마니까, 이번에도 이겨낼 거라 믿었다. 엄마는 항암 치료를 받으며, 또다시 보험료 이야기를 하며 웃으셨다. 자주 입원하셨지만, 이전에도 결국 괜찮아졌으니까. 나는 내 일상을 살았고, 엄마는 혼자 병과 싸우고 있었다.
“이거, 마약 성분 있는 거래. 이거 붙이면 하나도 안 아파.” 결코 알지 못했던 엄마의 고통. 그 패치를 며칠이고 붙이고 있었다. 머리가 아프면 머리에, 배가 아프면 배에. 약효도 다 떨어지고, 끈끈이도 잘 붙지 않는 그 패치를 엄마는 보물처럼 챙겼다. 그렇게 엄마는, 내가 모르는 사이 아프고 또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