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온기로 살아가는 동네 이야기
서울 갔다 돌아오는 길.
우리 동네에 들어섰다는 걸 제일 먼저 알려주는 건 밭과 산, 그리고 나무들이다.
“아, 시골에 왔구나. 서울의 화려함에서 벗어나 다시 우리 집으로 가는구나.”
시댁이 있는 서울에 다녀오는 길마다 신랑이 하는 말이다.
“시골, 시골 하지 마. 그런 시골에 우리가 10년째 살고 있잖아. 이런 동네 또 어딨어. 좋기만 하구만.”
내가 사는 곳은 김해 장유다.
“김해요.” 하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한다.
그래서 꼭 덧붙여야 한다. “부산 옆이에요.”
그만큼 작고 조용한 곳이지만, 이 시골 동네엔 자랑할 게 참 많다.
사계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산들, 봄이면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길,
커피 한잔의 여유를 만끽하며 산책을 할 수 있는 기다란 천,
그 앞엔 우리 ‘똥강아지들 방앗간’이자 도서관까지 — 없는 게 없는 화개장터 같은 동네다.
아침마다 아이들 등원 길에 만나는 경비아저씨는
늘 다정하게 인사하고 아이들의 안부를 챙겨주신다.
멀리 있는 가족보다 우리의 하루를 더 잘 알고 계신 분이다.
조금 더 내려가면 학교 앞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차량 도우미분들이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자리를 지켜주는 분들 덕분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마음이 한결 놓인다.
요가 원으로 향하는 길엔 늘 들르는 과일가게가 있다.
그곳 사장님과는 유머 코드가 찰떡이라, 아침마다 유쾌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한 뒤, 나는 나의 일터, 카페로 향한다.
오늘은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는 나무들에 따뜻한 뜨개 옷을 입히고 있었다.
매년 어떤 카페 회원 분들이 직접 뜬 뜨개 옷을 가로수에 입혀준다.
그러면 우리 딸들과 나는 어느 나무가 제일 예쁜지 꼼꼼히 점수를 매긴다.
올해 1등은 꽃무늬 뜨개 옷을 입은 나무였다.
송이송이 매달린 색색의 꽃무늬가 내 취향을 저격했다.
눈부신 가을 햇살을 만끽하며 카페에 들어섰는데,
그제야 핸드폰도 지갑도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
가방을 뒤적이며 어쩔 줄 몰라 하자, 사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이따 주셔도 돼요.”
2025년 가을, 나는 외상으로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앞에 앉아 있다.
그 커피 때문일까, 아니면 이웃들의 온기 때문일까.
속이, 마음이, 참 든든했다.
오전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오후엔 딸과 함께 동네 도서관에 간다.
그곳의 사서 선생님들은 모두 친구 같다.
서로 얼굴을 알고, 예약한 책을 챙겨주시고, 좋은 책을 추천해주시기도 한다.
이벤트가 있을 때면 아이들에게 몰래 선물을 챙겨주시기도 한다.
도시에 살 땐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몰랐다.
삶은 늘 바빴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여유는 없었다.
윗집의 발소리가 거슬렸고, 옆집의 다툼 소리를 견뎌야 했다.
그저 ‘고객’이었고, ‘손님’이었을 뿐, 그 관계는 얇고 차가웠다.
그런 내가 변하기 시작한 건, 아이들 덕분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먼저 인사하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좋은 건 좋다고 말하자 싶었다.
그렇게 한 마디씩 건네다 보니, 우리 동네는 점점 더 따뜻해졌다.
자주 가는 밥집에 리뷰를 정성껏 쓴 적이 있다.
무료 음료 쿠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리뷰 덕분일까, 그 뒤로는 사장님은 아이들 음료까지 빼놓지 않고 챙겨주셨다.
드시던 과일을 맛보라며 건네주시기도 했다.
한 번은 친절한 경비아저씨들께 붕어빵을 사다 드린 적이 있다.
단돈 4,000원의 행복이었다.
“이렇게 특별한 붕어빵은 처음이에요.”
아저씨들은 사이좋게 하나씩 나눠 드셨고,
그 따뜻한 마음은 5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감사를 표현하는 일은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였다.
돈이 드는 일도, 거창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느낀 마음을 말로 전하면 되는 일이었다.
내가 베풀었다 생각했는데 더 많은 것을 받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그들의 행복한 얼굴은 내 하루를 더 빛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그것을 자연스레 배우길 바란다.
삶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걸,
오늘의 나는 이웃들의 손길로 만들어졌다는 걸,
그리고 그들의 따뜻한 눈빛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는 걸.
나는 김해 장유에 사는 내가 참 좋다.
참고로, 김해는 부산 바로 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