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딸

by 혜진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당신이 뭘 알아! 내가 알아서 해!”


치과에 간다고 나간 남편이 서울에 올라와 지하철을 탔다며, 전화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는 끊어버렸다. 최근에 분명, 읍내 치과에 잘 적응해서 치료를 받는 가 싶었는데, 농사일이 없어 한가한 요즘, 남편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심정으로 서울길에 오른 듯했다.


젊은 시절부터, 충치 치료-신경치료-레진-크라운-임플란트까지 각종 치료의 진화를 경험하면서, 병원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평생 술을 달고 산 그는 술을 끊지는 않으면서도 치과는 꾸준히 다니며 돈을 치과에 쏟아부었다. 다니던 치과를 또 바꾸고 싶다고 할 때마다, 한 군데에서 꾸준히 치료받는 게 어떻겠냐고 한마디라도 하면, 그 치과 의사와 바람이 났냐는 의심을 받아야 했고, 치과에 돈 쓰는 게 아까워서 그런 것이냐면서, 돈 아끼려 다가 본인의 이빨과 잇몸이 이 모양이 됐다고 날 탓하곤 했다.


저녁에 가게 문을 닫다가 한바탕 했는데, 술 한잔하고 간다고 해서 먼저 와버린 저녁, 오늘은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매일 아침 들르는 경동 시장, 추석 대목을 앞두고 물건을 평소보다 많이 가져왔다. 그때부터 남편은 툴툴대기 시작했다. 적당히 물건을 들여오고, 빨리 팔아 치운 다음에 연휴에 맞춰서 시댁에 가길 원했던 모양이다. 남편은 늘 적당히 하고, 적당히 쉬기를 원한다. 하지만 장사에 적당히는 없다. 하루 쉬면 그만큼 남은 물건은 상하고, 하루 매출은 포기해야 한다. 우리 같은 과일가게는 쉴 수가 없다. 게다가 대목에 매출이 두 배로 오르는 데, 대목 장사를 포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런 문제로 남편과 평생을 싸우고 있다. 내가 물건을 조금이라도 많이 떼어오거나, 남자 도매상인과 말 몇 마디라도 섞거나, 남편이 손님에게 많이 퍼주는 것을 제지라도 하면, 그날은 술을 왕창 마시고 와서 어기장을 놓기 시작한다. 내가 말이라도 더 보태거나, 대들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물건을 부수기 시작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 숨어있길 수 십 번, 이제 더는 도망가지 않는다. 맞서 싸우는 것도 자주 하다 보니, 이젠 이런 소모적인 것은 딸이 나와 한 번 말려주면 그것으로 그냥 끝내 버리는 것이 되길 바라본다. 내일 또 물건을 떼어와서 장사는 해야 하니까.


평생 립스틱 하나를, 로션 하나를 사지 않았다. 옷은 5000원 넘는 것을 사 본 적이 없으며, 결혼식 때문에 동대문에서 산 재킷 하나로 10년을 버티고 있다. 이 재킷도 깎느라 옷 가게 주인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 옷을 살 때면 항상 가게 사장과 부딪힌다. 같이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깎는 것을 너무 하다 할 수 있지만, 장사를 하니까 이게 비싼 것인지, 아닌지 눈에 훤히 보인다. 남편처럼 헬스장을 다녀 본 적도 없고, 병원에 갈 일도 없다. 병원에 안 가면 그만 인 것이다. 최근에 처음으로 대장 내시경을 받았는데, 돈이 아까워서 수면제를 투여하지 않고 했다가, 눈물, 콧물을 쏙 빼는 일이 있었다. 다음엔 꼭 수면으로 해야겠다고 다짐한 혹독한 경험이었다. 물론,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사람은 없다. 남편도 이렇게 억척스럽게 사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수영장이며, 헬스장, 미장원 등 남편은 내가 그런 데 다니면서 관리하길 바라지만, 난 그런 곳에 쓰는 돈이 제일 아깝다.


빈손으로 시작한 결혼, 뚝방에 위치한 방 한 칸 자리 집에서 아이 둘을 낳아 길렀다. 제대로 된 산후조리 한 번 못 해봤고, 아이 낳고 얼마 안 돼서 사과 궤짝을 나르다가 허리가 안 좋아졌지만, 지금까지 치료 한 번을 안 했다. 뚝방에 집을 얻은 탓에 4살 자리 둘째가 벌써 몇 번을 개울가로 굴러 떨어져 응급실에 들락날락한 이후로, 안 되겠다 싶어 아파트 청약 적금을 붓기 시작했다. 아직 당첨도 되기 전인데, 8살인 첫째는 도면을 보면서 벌써 자기 방에 놓을 침대와 책상의 위치를 고민하고 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장사를 하며 모은 돈은 시동생 사업 자금, 남동생 서울 정착 자금 등으로 이미 많이 소진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열심히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극성맞게 장사를 하는 모습이 그만큼 현금을 많이 버는 것으로 보이나 보다. 지금껏 그 누구도 금전적인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았고, 나 역시 바라지 않았다. 이렇게 뚝방에 사는 것조차 부러워하는 그저 나보다 상황이 여의치 않은 시동생들과 남동생들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것도 내 천성이며, 내가 더욱 극성맞아지는 좋은 계기가 되어 왔다.


첫째가 시집을 갔다. 내 하나뿐인 딸이 시집을 갔다. 더는 남편과 내가 싸우는 소리를 딸이 듣지 않아도 돼서 좋다. 지방으로 물건을 떼러 가기라도 하는 날엔 초등학생인 어린 딸에게 4살 터울의 둘째를 맡기는 날도 많았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어린것에게 더 어린것을 맡기고 지방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 어린것이 마루에 나와 허공을 바라보며 엉엉 울고 있던 것이 생각난다. 비가 와서 엄마아빠가 오다 사고가 날까 걱정이 돼서 울었다고 했던 날이었던 것 같다. 또 어느 날은 생두부를 잘라서 오목하게 접시 가운데 모아 두고, 그 주변을 당근, 오이와 같은 색색의 채소를 둘러내고는 엄마 아빠를 위해 준비했다고 뿌듯해하던 딸이 모습도 불현듯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담 하나를 같이 사용하던 옆집 할머니에게 애들을 부탁하곤 했으나, 서로 바쁜 처지여서 우리 아이들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었다. 내 핏덩이이자, 내 어여쁜 분신인, 딸이 드디어 분가를 했다.


사위는 게임회사에 다닌다. 술과 담배도 하지 않고, 절약정신이 투철하며, 집과 일 밖에 모르는 건실한 청년인 것 같다. 넉살이 있다 거나 융통성이 있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친해지기 쉽진 않지만, 성실한 것 하나로도 됐다 싶다. 남자가 성실하고, 능력이 있으면 그만 아닌가? 사위에게 내 가정사를 최대한 보이지 않는 것이 내 딸이 잘 사는 길이라 믿고 있다.


딸이 두 달 만에 방문했다. 혼자 오는 일 없이 늘 사위와 함께 온다. 오늘도 밥을 깨작거리면서 먹는 딸을 향해, 그렇게 먹을 거면 먹지 말라고 소리를 쳤다. 아무거나 먹음직스럽게 잘 먹는 사위를 보다가 딸을 보면 속이 터질 것 같다. 잠깐 화는 났지만, 딸이 내 옆에 있어서 좋다. 내 딸에게 밥을 해 먹일 수 있어서 좋다. 좀 잘 먹었으면 좋겠지만, 잠시나마 내 옆에 있어주는 것이 감사하다. 남편은 동네 이장집에 트랙터를 빌리러 나갔다. 딸과 사위와 밥 먹고 믹스커피 한 잔을 하다가 남편이 얼마 전부터 매매로 나온 땅을 사겠다고 어기장을 놓고, 트랙터도 빌리는 것이 너무 불편하여 사달라고 한 적이 있는 것을 털어놓았다. 이제는 농사일도 기계를 만지는 일도 좀 줄였으면 하는데, 남편에게 농사일은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이 되어 버려서, 말려도 듣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어떤 농부도 해가 중천에 뜬 낮에는 일하지 않지만, 남편을 말릴 수가 없다. 돈을 갖다 쓰기 바쁜 남편이 원망스러워 없는 틈을 타서 남편이야기로 시간을 보내 던 중, 딸이 말했다.


“엄마, 나 유방암 이래.”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누가?”

“나 유방암 이래.”

“네가 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 딸이 왜?’ 멀쩡해 보였던 내 딸의 모습은 암이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 얼굴의 낯빛이 너무 어두워 보였고, 심지어는 살도 많이 빠져 있었다. 실제로도 5kg이 빠졌다고 했을 때는 그때는 이미 나는 너무 나쁜 엄마였다. 그날 따라 웃는 것도 어색했던 딸이었다. 살 빠진 것도 알아보지 못하고, 아픈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딸을 오랜만에 만나서 내 얘기를 하기에 바빴던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내 귀한 아가가 암에 걸렸다. 나 보다 먼저 죽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암’과 ‘죽음’이라는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 난 이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수술이 언제 인지, 언제 진단을 받았는지, 병원은 어디 인지, 딸이 말하는 것 같았는데, 들리지 않았다.


새벽인 것 같다.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내일이면 딸은 떠난다. 그래서 더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내가 우는 소리를 들었는지 자다 말고 와서는 아무 말없이 토닥여 준다. 그럴수록 눈물은 더 멈추질 않는다. 내가 어떻게 잠을 이룰 수 있을까?


속절없이 딸은 떠났다. 덩그러니 남편과 나만 남았다.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수술은 다음 달이다. 평생 술을 달고 산 남편은 만일을 위해 금주를 선언했다. 혹시나 수술 중에 뭐라도 이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의심 많은 그에 어울리는 훌륭한 생각이었다. 저번 마을회관에 갔을 때, 이장 아내인 김 씨 아줌마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무작정 이장 네로 찾아가 김 씨 아줌마를 보는 순간, 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딸을 서울로 올려 보내자마자, 찾아간 곳이었다.


주변 지인들을 통해 유방암에 관련한 정보를 취합한 후, 결론을 내렸다. 부분 절제가 아닌, 전절제를 하고, 복원수술을 하지 않게 할 생각이다. 주변에 유방암에 걸렸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부분절제한 사람들 중에 전이된 사람이 많았고, 그런 사람들은 수술을 두 번씩 해서 후회를 많이 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30대 후반인 딸이 복원 수술을 해서 여자로서의 삶에 불편함이 없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내 딸은 이미 신장병을 가지고 있고, 염증을 달고 산다. 복원 수술까지 하다가 수술시간이 너무 길어져 혹시나 잘못될 수 있을 가능성을 줄이고 싶다. 아무리 의료기술이 좋아졌다 한들, 그게 내 딸 몸에 맞을지 전혀 알 수 없다. 생사를 두고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딸의 수술 날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요즘 난 딸과 사위가 싸우는 꿈을 꾼다. 몇 시간째 딸이 전화를 받지 않아 몹시 신경이 쓰인다. 전절제를 하게 한 것이 딸과 사위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에서 그런 꿈을 꾸는 것 같다. 나와 사위의 생각이 다르면 어떡하지? 다르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사위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우리 딸 밖에 모르던 사위에게 참으로 미안하다.


수술은 잘 끝났다. 딸은 잘 살아 돌아왔다. 수술은 예상 시간 보다도 더 일찍 끝났고, 대한민국 대학 병원의 의료기술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딸은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제정신이 아닌 듯, 나와 남편, 사위를 향해 이런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다고 울더니, 이내 모든 것을 받아들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딸에게 어떤 말을 해 줘야 할까? 위로를 해주는 것이 맞을까? 사위에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내가 말할 자격이 있을까?


딸이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지 못하고 담아두는 성격인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암까지 걸린 것을 보면 정상의 컨디션인 적이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편안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저렇게까지 되지 않았을까? 암 수술을 받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딸이 어디가 또 아프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다시 일을 한다고 해도 스트레스로 다시 암에 걸릴까 걱정이고, 저렇게 몇 년째 집 안에 있는 것 또한 신경이 쓰인다. 답답하고, 우울할 텐데… 괜찮다고 하지만, 정말 괜찮은 건지 늘 걱정이다.


이웃인 최 씨가 며칠 전 남편이 일 손을 도운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소고기와 수박 한 통을 사 왔다. 그렇게 마루에 눌러앉아 자신이 사 온 수박 한 조각을 베어 물더니, 근처에 좋은 땅이 매물로 나왔는데, 가 보지 않겠냐고 남편을 꼬시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땅 사겠다는 걸 말렸더니, 또 어디 싸구려 땅이 나왔는지 가만 보면, 못 쓰는 시골 땅을 넘기려고, 땅 부자가 되겠네, 어쩌네 하면서 남편을 추켜 세우는 것 같았다. 귀가 솔깃한 남편은 곧 어디인지 한 번 가보자고 일어섰고, 나는 가지 말라고 말렸다. 대충 위치를 들어서는 집에서도 멀고, 농사를 가서 짓기도 불편하고, 농사를 짓기에도 좋은 땅은 아닌 것 같다고 뜯어말렸다. 남편은 왜 사사건건 내가 하는 일에 간섭이냐며, 최 씨가 보는 앞에서 소리쳤고, 그렇게 나를 집에 남긴 채 둘은 봉고를 타고 유유히 떠났다.


눈앞에 양주가 보였다. 몇 년 전 딸이 해외여행을 갔다가 사 온 것이다. 워낙 비싼 것인 걸 알고 아껴 두고 있었는데, 오늘은 저 양주를 까야할 것 같다. 난 양주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모른다. 먹는 방법 따위 알고 싶지도 않다. 수박 한 조각 먹은 빈 속인데 괜찮겠지? 얼마나 마셨을까? 난 뭐가 많이 서러워 전화기를 붙들고 울고 있었다. 나중에 기억도 못 할 말들을 꼬인 혀로 해대며 전화기를 붙들고 울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을 놓은 것 같다. 잠에서 깨었을 땐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있었고,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두 명이 남편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남편은 당황해하며, 연신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전화기를 보니, 딸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네가 경찰에 신고한 거야?”

“왜 일을 크게 만들어?”

“네 아빠 또 경찰 가고 나면 난리 치는 거 아닐까 모르겠다.”

딸은 내 말을 들은 건지, 안 들은 건지, 한마디 말만 하고 끊었다.


“살아있으면 됐어.”


통화를 끊은 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휴대폰을 확인했다.

100건이 넘는 부재중 통화가 와 있었다. 모두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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