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들이 고마운 이유’

by 박대영

산을 넘어온 바람이 반가워 앞산의 자작나무들이 자지러지게 웃던 날…. 날씨가 너무나 좋아서, 그 시리도록 청명한 하늘이 못내 아파서 눈물짓는 누군가가 있다. 그는 나일 수도, 너일 수도 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특별한 시간에 자신만의 상처를 끌어안고 몸부림칠 때, 그것은 바람이었던가, 아니면 자작나무의 하얀 웃음이었던가, 그렇게 누군가가 다가와 나, 또는 너에게 손을 내밀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너무 아파하지 말라고, 힘내라고….’

사실 고통과 눈물은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이다. 같은 일을 겪어도 느끼는 감정과 아픔의 크기, 상처의 깊이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의 상처는 오롯이 나의 것이고, 나의 아픔 역시 타인의 것이 아닌 오직 나만이 짊어져야 할 내 몫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의 고통에 함께하려 하고, 내게 웃음을 주려 하고, 내 눈물을 닦아주려고 노력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가슴 뭉클하면서도 벅찬 일일 것인가. 비 맞은 새가 날아든 따스한 둥지의 안온한 위로처럼, 그들이 진정 고마운 이유는 나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노력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누군가 이혼을 하고, 실직을 하면 연민의 얼굴로 찾아와 위로를 건네지만, 그들이 돌아갈 때 그나마 자신들은 직장과 가정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속물적인 모습, 그것이 보통의 우리네 인간들이 지닌 어쩔 수 없는 속성이니 말이다.

이 어쩔 수 없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라는 테두리 안의 배타적인 거리, 그 미묘한 간극들이 불현듯,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이 되어 우리의 주위를 맴돈다.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고립무원의 기분, 내가 겪는 감정의 무게를 온전히 혼자서만 감당해야 한다는 막막함, 뭐 그런 거….


이 필연적인 고독과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이 바로 비록 자신만의 처지와 상황 안에서만이라도 나(또는 너)에게 위로와 공감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그들의 마음과 노력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 마음, 그 노력을 기억하는 방법이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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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들이 나를, 또 너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서로 맞잡을 수 있는 손이기 때문이다. 그 손이 건네는 작은 위로가 삶을 계속하게 하고, 또 웃게 만드는 이유였으니 이를 어쩔 것인가. 그것이 또 사랑인 것을 어쩌랴.


누군가 나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은 그의 잘못도 아니고, 또 그것이 그가 내 곁에 머물지 말아야 할 이유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 나의 슬픔을 다 알지는 못해도 나의 곁을 지키려고 하는 그 마음을 간직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마도 충분할 것이다. 그 마음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가슴 저리는 일이란 말인가.


어쩌면 사랑은 완벽한 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이해 속에서도 함께 하려는 의지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랑의 본질은 이해가 아닌 공감이고, 이해하려는 노력 그 자체일 것이다.

함께, 더불어 걷는 일은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때 우리는 그 눈물의 기원에 대해 다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지만 나는, 너는 누군가가 곁에 머물러준다는 것만으로도, 내밀어준 손 하나에도 살아갈 이유와 힘을 얻는다.

신영복 선생은 ‘돕는 것은 우산을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 했었다. 설사 같이 비를 맞지는 못할지라도 우산을 나눠 쓰고, 우산 밖으로 밀려난 서로의 한쪽 어깨가 젖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뿌듯하고 기분 좋은 일이더란 말인가. 그러니 더 욕심낼 일도 아니다. 나의 슬픔 앞에서 함께 울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우리가 겪는 고통을 없앨 수는 없지만, 그 무게를 나눈다면 조금은 덜 아픈 채로, 묵묵히 견디며, 비록 늦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뜨겁게 사랑하자. 네가 있고, 그가 있어서, 그들과 나눠 마시는 숨이 우리를 연결되게 하고,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존재의 이유 앞에서 우리가 주저할 이유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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